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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의 勝負師' 박정진, 2019年까지 雇傭保障 - 오마이스타
한화 이글스는 조원우와 김민재(以上 롯데 자이언츠), 최영필 (kt 위즈) 等 只今은 各 球團에서 指導者 生活을 하는 選手들이 活躍하던 2007年 正規리그 3位에 오른 以後 最近 10年 동안 한 番도 가을野球 舞臺를 밟지 못했다. 이는 LG 트윈스(2003~2012年)와 함께 KBO리그 歷代 最長期間 포스트시즌 進出 失敗 타이 記錄이다. 가을野球 進出 確率이 50%에 達하는 KBO리그에서 10年 連續 가을野球를 經驗하지 못하는 것은 決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韓華가 가을野球에 가기 위한 努力을 疏忽히 한 것도 아니다. '怪物' 류현진(LA 다저스)이 팀을 떠난 2013年부터 한화는 김응용, 김성근 監督 等 KBO리그 歷史에 한 劃을 그은 名將들을 迎入했고 FA市場에서는 每年 큰 손임을 自處했다. 나이저 모건과 에스밀 로저스(넥센 히어로즈), 알렉시 誤肝도 等 빅리그 出身의 巨物級 外國人 選手 迎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화는 끝내 가을野球라는 目標를 이루지 못했다.

百藥이 無效했던 한화는 2017 시즌이 끝난 後 팀의 基調를 바꿨다. 두산 베어스에서 코치로 在職하던 한용덕 監督을 迎入했고 大魚들이 櫛比했던 FA市場에서도 일찌감치 발을 빼며 無理한 競爭 代身 長期的인 리빌딩을 選擇했다. 하지만 팀을 위해 19年 동안 獻身했던 最高齡 投手에게는 해가 가기 前에 禮遇를 갖췄다. 29日 한화와 2年 7億5000萬 원의 條件에 FA契約을 締結한 '絶對동안' 박정진이 그 主人公이다.

11年의 試鍊 이기고 30代 中盤에 찾아온 제1의 全盛期

淸州에서 태어나 세광고를 卒業한 박정진은 高校 時節 세광고를 大統領杯 4强으로 이끌며 송진우 以後 가장 뛰어난 忠北 出身의 左腕 投手로 이름을 날렸다. 高校 卒業 後 연세대로 進學한 박정진은 大學時節에도 時速 150km를 넘나드는 强速球를 던지며 注目 받았고 큰 異變 없이 1999年 新人 드래프트에서 한화의 1次 指名을 받았다. 當時 韓華 팬들은 宋鎭禹와 구대성,박정진으로 이어지는 左腕 트로이카를 構成할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實際로 박정진이 入團했던 1999年, 한화는 創團 後 처음으로 韓國시리즈 優勝을 차지하는 感激을 누렸다. 하지만 痼疾的인 制球不安에 시달리던 박정진은 한화의 優勝에 아무런 寄與도 하지 못했다. 2001年엔 4勝3敗 平均自責點  4.74, 2003年엔 6勝7敗3세이브11홀드4.31로 宣傳하기도 했지만 워낙 起伏이 甚해 마운드 위에서 安定感을 주지 못했다. 이는 公益勤務要員으로 軍服務를 마치고 돌아온 後에도 全혀 고쳐지지 않았다.

프로 入團 後 11年 동안 14勝, 2005年부터 2009年까지 5年 동안은 單 1勝도 올리지 못한 박정진은 한화에서 放出 當할 危機에 놓였다. 하지만 한화의 새 監督으로 赴任한 限對話 監督이 左腕 불펜 部材를 理由로 박정진을 殘留시켰고 박정진은 30代 中盤이 된 2010年부터 本格的인 全盛期가 찾아왔다. 垂直으로 내리꽂는 박정진만의 獨特한 投球폼이 드디어 자리를 잡은 것이다.

프로 入團 後 11年 동안 21홀드를 記錄했던 박정진은 限對話 監督이 이끌었던 3年 동안 34個의 홀드를 記錄하며 한화 불펜의 核心으로 자리 잡았다. 勿論 한화는 이 期間 동안 두 番이나 最下位에 머물며 本格的인 暗黑期에 突入했지만 박정진은 프로 데뷔 12年 만에 '第1의 全盛期'를 달리며 뒤늦은 꽃길을 걸었다. 實際로 2010年과 2011年 한화의 마운드는 '柳賢振과 박정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고 表現해도 큰 誇張이 아니었다.

하지만 박정진은 生涯 첫 FA를 앞둔 2013年 1勝5敗1세이브6홀드5.82로 不振했고 30代 後半의 高齡이라는 핸디캡이 더해지면서 2年 8億 원이라는 조금 아쉬운 額數에 FA 契約을 締結했다. 當時 內野手 한상훈이 4年13億 원, 이대수(SK 와이번스)가 4年 20億 원의 FA契約을 따낸 것을 考慮하면 累積 活躍에서 決코 뒤지지 않았던 박정진의 契約은 決코 滿足하기 힘들었다.

2018 시즌에도 한화 불펜의 核心으로 活躍할 43歲의 박정진

박정진은 FA 契約 첫 해였던 2014年 4勝4敗9세이브7홀드6.02로 不振하며 隱退가 臨迫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김성근 監督을 만난 2015年, 不惑의 박정진은 76競技에 登板해 96이닝을 던지며 6勝1敗1세이브15홀드 3.09로 華麗하게 復活했다. 10세이브를 따냈던 2010年을 凌駕하는 生涯 最高의 시즌을 40歲의 나이에 作成한 것이다.

박정진은 2016年에도 KBO리그의 '最高齡 奴隸'로 活躍했다. 비록 成跡은 4勝4敗6홀드 5.57로 2015年에 비해 多少 떨어졌지만 송창식, 권혁 等 奴隸生活을 함께 하던 同僚들이 하나, 둘 시즌을 早期 마감하는 사이에도 박정진은 시즌 마지막까지 1군 마운드를 지켰다. 實際로 77競技 登板은 2016年 10個 球團 投手 中 最多 登板 記錄이었다.

한화는 2017 시즌 김성근 監督이 일찌감치 팀을 떠났지만 박정진은 무릎 痛症으로 缺場한 한 달을 除外하면 흔들림 없이 마운드에 올랐다. 비록 成跡은 3勝2敗1세이브7홀드로 平凡했지만 3.94의 平均自責點과 .222의 被安打率은 어디에 내놔도 밀리지 않았다. 올 시즌에도 如前히 한화 불펜의 核心으로 活躍한 박정진은 29日 한화와 2年 7億5000萬원에 FA契約을 締結하면서 오는 2019年, 韓國 나이로 44歲 시즌까지 現役 生活을 保障 받았다.

박정진은 그저 한화에서 오랜 期間 活躍했다가 全盛期가 지난 '저물어 가는 레전드'가 아닌 如前히 한화 불펜에서 核心的인 役割을 擔當하는 '現在進行形 불펜 에이스'다. 2017年 26홀드를 合作한 권혁과 송창식이 나란히 6點臺 平均自責點에 그치며 不振한 가운데 박정진은 마무리 정우람을 除外하면 한화 마운드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불펜 資源이다.

2017 시즌을 끝으로 '國民打者' 이승엽을 비롯해 이호준, 최영필, 조인성 等이 大擧 現役 生活을 마감했다. 이 때문에 猝地에 박정진은 KBO리그 最高齡 選手가 됐다(물론 絶對 동안을 維持하는 얼굴 德分에 最高齡 選手의 威嚴은 찾을 수 없지만). 그리고 다이내믹한 投球폼으로 相對 打者와 正面勝負를 즐기는 '마운드 위의 勝負師' 박정진은 來年에도 禿수리 軍團의 復活을 위해 熱心히 마운드에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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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한화 이글스 박정진 最高齡 選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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