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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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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山君日記 30卷, 演算 4年 7月 17日 신해 2番째記事 1498年 名 紅치(弘治) 11年

金馹孫의 史草에 실린 金宗直의 弔義帝文에 對한 王의 傳敎와 臣下들의 論議

前知하기를,

" 김종직 은 初夜의 微賤한 선비로 세조조 에 科擧에 合格했고, 成宗朝에 이르러서는 拔擢하여 競演(經筵)에 두어 오래도록 始終(侍從)의 자리에 있었고, 鐘磬에는 刑曹 判書(刑曹判書)까지 이르러 恩寵이 온 調整을 傾倒하였다. 병들어 물러가게 되자 成宗 께서 所在地의 守令으로 하여금 特別히 米穀(米穀)을 내려주어 그 名을 마치게 하였다. 只今 그 弟子 김일손(金馹孫) 이 撰修한 史草(史草) 內에 不渡(不道)韓 말로 先王朝의 일을 터무니없이 記錄하고 또 그 스승 宗職 의 弔義帝文을 실었다. 그 말에 이르기를,

‘丁丑 10月 어느 날에 나는 밀성(密城) 으로부터 慶山(京山) 으로 向하여 踏啓驛(踏溪驛) 에서 자는데, 꿈에 神(神)李 漆匠(七章)의 衣服을 입고 헌칠한 模樣으로 와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初(楚)나라 회왕(懷王) 의 孫子 審(心)인데, 瑞草 霸王(西楚?王) 067) 에게 殺害 되어 빈江(?江) 에 잠겼다.」 하고 문득 보이지 아니하였다. 나는 꿈을 깨어 놀라며 생각하기를 「 회왕(懷王) 南草(南楚) 사람이요, 나는 東이(東夷) 사람으로 地域의 거리가 萬餘 里가 될 뿐이 아니며, 世代의 先後도 亦是 千 年이 휠씬 넘는데, 꿈속에 와서 感應하니, 이것이 무슨 上서일까? 또 歷史를 相考해 보아도 江에 잠겼다는 말은 없으니, 丁寧 項羽(項羽) 가 사람을 시켜서 祕密裏에 쳐 죽이고 그 屍體를 물에 던진 것일까? 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고, 드디어 門(文)을 지어 弔問한다.

하늘이 法則을 마련하여 사람에게 주었으니, 어느 누가 事大(四大) 五常(五常) 068) 높일 줄 모르리오. 中和라서 豐富하고 移籍이라서 吝嗇한 바 아니거늘, 어찌 옛적에만 있고 只今은 없을손가. 그러기에 나는 異人(夷人) 이요 또 千 年을 뒤졌건만, 삼가 初 회왕 을 조문하노라. 옛날 조룡(祖龍) 069) 이 亞角(牙角)을 弄(弄)하니, 死海(四海)의 물결이 붉어 피가 되었네. 비록 專有(??), 秋애(??)라도 어찌 保全할손가. 그물을 벗어나기에 汲汲했느니, 當時 六國(六國)의 後孫들은 숨고 도망가서 겨우 便猛(編氓)가 짝이 되었다오. 桁楊(項梁) 은 南쪽 나라의 章宗(將種)으로, 魚虎(魚狐)를 種달아서 일을 일으켰네. 王位를 얻되 百姓의 所望에 따름이여! 끊어졌던 웅驛(熊繹) 070) 의 祭祀를 保存하였네. 健夫(乾符) 071) 를 쥐고 南面(南面)을 함이여! 天下엔 眞實로 미씨(?氏) 072) 보다 큰 것이 없도다. 長子(長者)를 보내어 觀衆(關中)에 들어가게 함이여! 또는 족히 그 仁義(仁義)를 보겠도다. 양흔 狼貪(羊?狼貪) 073) 官軍(冠軍) 074) 을 마음대로 軸임이여!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 075) 에 기름漆 아니했는고. 아아, 形勢가 너무도 그렇지 아니함에 있어, 나는 王을 위해 더욱 두렵게 여겼네. 反噬(反?)를 當하여 解釋(??) 076) 이 됨이여, 果然 하늘의 運數가 正常이 아니었구려. 빈의 産銀 우뚝하여 하늘을 솟음이야! 그림자가 해를 가리어 저녁에 가깝고. 빈의 물은 밤낮으로 흐름이여! 물결이 넘실거려 돌아올 줄 모르도다. 天地도 장구(長久)한들 限이 어찌 다하리 넋은 只今도 飄蕩(瓢蕩)하도다. 내 마음이 金石(金石)을 꿰뚫음이여! 왕이 문득 꿈속에 臨하였네. 紫陽(紫陽) 의 老筆(老筆)을 따라가자니, 생각이 진돈(??) 077) 하여 흠흠(欽欽)하도다. 술盞을 들어 땅에 訃音이어! 바라건대 英靈은 와서 흠항하소서.’

하였다. 그 ‘ 조룡(祖龍) 이 亞角(牙角)을 弄(弄)했다.’는 조룡 진 市況(秦始皇) 인데, 宗職 진 市況 世祖 에게 비한 것이요, 그 ‘王位를 얻되 百姓의 所望을 따랐다.’고 한 王은 初 회왕(楚懷王) 의 孫子 審(心) 인데, 처음에 抗量(項梁) 陳(秦) 을 치고 손審 을 찾아서 議題(義帝) 를 삼았으니, 宗職 議題 老産(魯山) 078) 에게 비한 것이다. 그 ‘양흔 狼貪(羊?狼貪)하여 官軍(冠軍)을 함부로 무찔렀다.’고 한 것은, 宗職 이 양흔 狼貪으로 世祖 를 가리키고, 官軍을 함부로 무찌른 것으로 世祖 김종서(金宗瑞) 를 베인 데 비한 것이요. 그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에 기름漆 아니 했느냐.’고 한 것은, 宗職 老産 이 왜 世祖 를 잡아버리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 ‘反噬(反?)를 입어 解釋(??)李 되었다.’는 것은, 宗職 老産 世祖 를 잡아버리지 못하고, 도리어 世祖 에게 죽었느냐 하는 것이요. 그 ‘ 紫陽(紫陽) 은 老筆(老筆)을 따름이여, 생각이 진돈하餘 흠흠하다.’고 한 것은, 宗職 走者(朱子) 를 自處하여 그 마음에 部(賦)를 짓는 것을, 《綱目(綱目)》의 筆(筆)에 非議한 것이다. 그런데 일손 이 그 門(文)에 贊(贊)을 붙이기를 ‘ 로써 充分(忠憤)을 부쳤다.’ 하였다. 생각건대, 우리 世祖 大王 께서 國家가 위의(危疑)한 즈음을 當하여, 奸臣이 亂(亂)을 꾀해 禍(禍)의 기틀이 發作하려는 刹那에 逆賊 무리들을 베어 없앰으로써 宗廟 社稷이 危殆했다가 다시 便安하여 子孫이 서로 繼承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그 功過 業이 높고 커서 德이 百王(百王)의 으뜸이신데, 뜻밖에 宗職 이 그 門徒들과 성덕(聖德)을 欺弄하고 論評하여 일손 으로 하여금 歷史에 무서(誣書)하는 地境에까지 이르렀으니, 이 어찌 一朝一夕의 軟膏이겠느냐. 속으로 不信(不臣)의 마음을 가지고 세 朝廷을 내리 섬겼으니, 나는 이제 생각할 때 두렵고 떨림을 禁치 못한다. 桐·西班(東西班) 3品 以上과 臺諫·弘文館들로 하여금 兄을 議論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정문형(鄭文炯) · 한치례(韓致禮) · 이극균(李克均) · 이세좌(李世佐) · 노공필(盧公弼) · 윤민(尹?) · 안호(安瑚) · 홍자아(洪自阿) · 新婦(申溥) · 이덕영(李德榮) · 김우신(金友臣) · 홍석보(洪碩輔) · 老共有(盧公裕) · 정숙지(鄭叔?) 가 議論드리기를,

"只今 宗職 의 弔義帝文(弔義帝文)을 보오니, 입으로만 읽지 못할 뿐 아니라 눈으로 차마 볼 수 없사옵니다. 宗職 세조조 에 벼슬을 오래瑕疵, 스스로 재주가 한 世上에 뛰어났는데 世祖 에게 받아들임을 보지 못한다 하여, 마침내 鬱憤과 怨望의 뜻을 품고 말을 글에다 依託하여 성덕(聖德)을 欺弄했는데, 그 말이 極히 不渡(不道)합니다. 그 心理를 미루어 보면 丙子年에 難役(亂逆)을 꾀한 臣下들과 무엇이 다르리까. 마땅히 帶域(大逆)의 罪로 論斷하고 副官 參試(剖棺斬屍)해서 그 罪를 銘旌(明正)하여 臣民의 분을 씻는 것이 實로 死體에 合當하옵니다."

하고, 維持(柳?) 는 議論드리기를,

" 宗職 의 不信(不臣)한 그 心理는, 罪가 容納될 수 없사오니 마땅히 極刑에 處하옵소서."

하고, 박안성(朴安性) · 成俔(成俔) · 神俊(申浚) · 정숭조(鄭崇祖) · 이계동(李季仝) · 權健(權健) · 김제신(金悌臣) · 이계남(李季男) · 尹彈(尹坦) · 김극검(金克儉) · 윤은로(尹殷老) · 이집(李?) · 김무(金珷) · 김경조(金敬祖) · 이숙함(李叔?) · 移監(李堪) 은 議論드리기를,

" 宗職 이 妖邪한 꿈에 假託하여 先王을 毁謗(毁謗)하였으니, 帶域 不渡(大逆不道)입니다. 마땅히 極刑에 處해야 하옵니다."

하고, 변종인(卞宗仁) · 박숭질(朴崇質) · 권경우(權景祐) · 採水(蔡壽) · 五旬(吳純) · 안처량(安處良) · 홍흥(洪興) 은 議論드리기를,

" 宗職 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不信(不臣)韓 罪가 이미 甚하온즉, 율(律)에 依하여 處斷하는 것이 便하옵니다."

하고, 이인형(李仁亨) · 표연말(表沿沫) 이 議論드리기를,

" 宗職 의 弔義帝文과 指稱한 뜻을 살펴보니 罪가 베어 마땅하옵니다."

하고, 이극규(李克圭) · 이창신(李昌臣) · 최진(崔璡) · 민사건(閔師蹇) · 洪旱(洪瀚) · 이균(李均) · 김계행(金係行) 이 議論드리기를,

" 宗職 의 犯罪는 차마 말로 못하겠으니, 律文에 依하여 論斷해서 人身(人臣)으로 두 마음 가진 者의 境界가 되도록 하옵소서."

하고, 정성근(鄭誠謹) 이 議論드리기를,

" 宗職 이 音으로 이런 마음을 품고 世祖 를 섬겼으니, 그 凶惡함을 헤아리지 못하온즉 마땅히 中前(重典)에 處해야 하옵니다."

하고, 이복선(李復善) 이 議論드리기를,

" 宗職 이 弔義帝文을 지은 것이 丁丑年(丁丑年) 10月이었으니, 그 不信(不臣)의 마음을 품은 것이 오래이었습니다. 그 弔問(弔文)을 解釋한 말을 살펴보니, 緋緞 귀로 차마 들을 수 없을 뿐 아니라 亦是 눈으로도 차마 보지 못하겠습니다. 그 몸이 비록 죽었을지라도 그 惡을 追罪(追罪)할 수 있사오니, 마땅히 半身(叛臣)의 律에 따라 論斷하소서. 宗職 의 鬼神이 地下에서 반드시 머리를 조아리며 달갑게 服罪(伏罪)할 것입니다."

하고, 李世永(李世英) · 勸酒(權柱) · 남궁찬(南宮璨) · 한형윤(韓亨允) · 성세순(成世純) · 정광필(鄭光弼) · 金勘(金勘) · 移管(李寬) · 이유녕(李幼寧) 이 議論드리기를,

"只今 宗職 의 글을 보오니, 말이 너무도 不渡(不道)하옵니다. 難役(亂逆)으로 論斷하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하고, 이유청(李惟淸) · 민수복(閔壽福) · 유정수(柳廷秀) · 造形(趙珩) · 손원로(孫元老) · 신복의(辛服義) · 안팽수(安彭壽) · 이창윤(李昌胤) · 박권(朴權) 이 議論드리기를,

" 宗職 의 弔義帝文은 말이 많이 不渡(不道)하오니, 罪가 베어도 不足하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이미 죽었으니 爵號(爵號)를 追奪하고 子孫을 廢고(廢錮)하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하였는데, 文型 等의 議論에 따랐다. 어필(御筆)로 집의(執義) 이유청(李惟淸) 等과 사간(司諫) 민수복(閔壽福) 의 論議에 票를 하고, 筆商 等에게 보이며 이르기를,

" 宗職 의 帶域이 이미 나타났는데도 이 무리들이 논을 이렇게 하였으니, 이는 庇護하려는 것이다. 어찌 이와 같이 痛歎스러운 일이 있느냐. 그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가서 잡아다가 刑場 審問을 하라."

하였다. 이때 여러 宰相과 臺諫과 홍문 官員이 모두 자리에 있었는데, 갑자기 羅將(羅將) 十餘 人이 鐵鎖(鐵鎖)를 가지고 一時에 달려드니, 宰相 以下가 놀라 일어서지 않는 者가 없었다. 乳淸 等은 刑場 30臺를 받았는데, 모두 다른 情(情)李 없음을 供招하였다.


  • 【太白山史庫本】 8冊 30卷 9張 B면 【국便影印本】 13 冊 318 面
  • 【分類】
    正論-正論(政論) / 王室-國王(國王) / 歷史-便射(編史) / 歷史-考査(故事) / 司法-彈劾(彈劾) / 變亂-政變(政變) / 語文學-文學(文學)

  • [註 067]
    瑞草 霸王(西楚?王) : 項羽(項羽).
  • [註 068]
    事大(四大) 五常(五常) : 事大(四大)는 千臺(天大)·地帶(地大)·도대(道大)·왕대(王大)를 이름이요, 五常(五常)은 五倫(五倫)을 이름.
  • [註 069]
    조룡(祖龍) : 진 市況(秦始皇).
  • [註 070]
    웅驛(熊繹) : 主 聖王(周成王) 때 사람인데 初(楚)의 侍奉兆(始封祖)임.
  • [註 071]
    健夫(乾符) : 天子의 表示로 갖는 部署(符瑞).
  • [註 072]
    미씨(?氏) : 初(楚)나라의 城.
  • [註 073]
    양흔 狼貪(羊?狼貪) : 項羽(項羽)를 比喩함.
  • [註 074]
    官軍(冠軍) : 庚子 官軍(卿子冠軍).
  • [註 075]
    제부(齊斧) : 征伐하는 도끼임. 天下를 整齊한다는 뜻에서 나옴.
  • [註 076]
    解釋(??) : 젓과 抛.
  • [註 077]
    진돈(??) : 衝융(沖瀜)과 같은데, 怖畏(怖畏)의 기운이 넘쳐서 安定하지 못한다는 뜻임.
  • [註 078]
    老産(魯山) : 斷種.

○傳旨曰: " 金宗直 草茅賤士, 世祖 朝登第, 至 成宗 朝, 擢置經筵, 久在侍從之地, 以至刑曹判書, 寵恩傾朝。 及其病退, 成宗 猶使所在官, 特賜米穀, 以終其年。 今其弟子 金馹孫 所修史草內, 以不道之言, 誣錄先王朝事, 又載其師 宗直 《弔義帝文》 。 其辭曰:

丁丑十月日, 余自 密城 京山 , 宿 踏溪驛 , 夢有神披七章之服, ?然而來, 自言: " 楚懷王 孫心 西楚?王 所弑, 沈之 ?江 。" 因忽不見。 余覺之, 愕然曰: " 懷王 南楚 之人也, 余則 東夷 之人也。 地之相距, 不?萬有餘里, 而世之先後, 亦千有餘載。 來感于夢寐, 玆何祥也? 且考之史, 無沈江之語, 豈 使人密擊, 而投其屍于水歟? 是未可知也。" 遂爲文以弔之。 惟天賦物則以予人兮, 孰不知尊四大與五常? 匪 ?而 嗇, 曷古有而今亡? 故吾 夷人 , 又後千載兮, 恭弔 懷王 。 昔 祖龍 之弄牙角兮, 四海之波, 殷爲?。 雖??鰍?, 曷自保兮, 思網漏而營營。 時六國之遺祚兮, 沈淪播越, 僅?夫編氓。 也南國之將種兮, 踵魚狐而起事。 求得王而從民望兮, 存 熊繹 於不祀。 握乾符而面陽兮, 天下固無大於?氏。 遣長者而入關兮, 亦有足覩其仁義。 羊?狼貪, 擅夷冠軍兮, 胡不收而膏齊斧? 嗚呼! 勢有大不然者兮, 吾於王而益懼。 爲??於反?兮, 果天運之蹠?。 ?之山?以觸天兮, 景?愛以向晏。 ?之水流以日夜兮, 波淫?而不返。 天長地久, 恨其可旣兮, 魂至今猶飄蕩。 余之心貫于金石兮, 王忽臨乎夢想。 循 紫陽 之老筆兮, 思??以欽欽。 擧雲?以?地兮, 冀英靈之來歆。

其曰: ‘ 祖龍 之弄牙角。’ 者, 祖龍 始皇 也, 宗直 始皇 世廟 。 其曰: ‘求得王而從民望。’ 者, 王, 楚懷王 孫心 , 初 項梁 , 求 孫心 以爲 義帝 , 宗直 義帝 魯山 。 其曰: ‘羊?狼貪, 擅夷冠軍者。’ 宗直 以羊?狼貪指 世廟 , 擅夷冠軍, 指 世廟 金宗瑞 。 其曰: ‘胡不收而膏齊斧?’ 者, 宗直 魯山 胡不收 世廟 。 其曰: ‘爲??於反?。’ 者, 宗直 魯山 不收 世廟 , 反爲 世廟 ??。 其曰: ‘循 紫陽 之老筆, 思??以欽欽。’ 者, 宗直 朱子 自處, 其心作此賦, 以擬 《綱目》 之筆。 馹孫 贊其文曰: ‘以寓忠憤。’ 念我 世祖大王 當國家危疑之際, 姦臣謀亂, 禍機垂發, 誅除逆徒, 宗社危而復安, 子孫相繼, 以至于今, 功業巍巍, 德冠百王。 不意 宗直 與其門徒, 譏議聖德, 至使 馹孫 誣書於史, 此豈一朝一夕之故? 陰蓄不臣之心, 歷事三朝, 余今思之, 不覺慘懼。 其令東西班三品以上, 臺諫、弘文館, 議刑以啓。" 鄭文炯 韓致禮 李克均 李世佐 盧公弼 尹? 安瑚 洪自阿 申溥 李德崇 金友臣 洪碩輔 盧公裕 鄭叔? 議: "今觀 宗直 《弔義帝文》 , 非唯口不可讀, 目不忍視也。 宗直 世祖 朝, 從仕已久, 自謂才高一世, 而不見納於 世廟 , 遂懷憤?之心, 托辭於文, 譏刺聖德, 語極不道。 原其心, 與丙子謀亂之臣何異? 當論以大逆, 剖棺斬屍, 明正其罪, 以雪臣民之憤, 實合事體。" 柳? 議: " 宗直 不臣之心, 罪不容誅, 宜置極刑。" 朴安性 成俔 申浚 鄭崇祖 李季仝 權健 金悌臣 李季男 尹坦 金克儉 尹殷老 李? 金? 金敬祖 李叔? 李堪 議: " 宗直 假托夢妖, ?毁先王, 大逆不道, 宜置極典。" 卞宗仁 朴崇質 權景祐 蔡壽 吳純 安處良 洪興 議: " 宗直 懷二心, 不臣之罪已甚, 依律斷之爲便。" 李仁亨 表沿沫 議: "觀 宗直 《弔義帝文》 及所指之意, 罪不容誅。" 李克圭 李昌臣 崔璡 閔師騫 洪瀚 李均 金係行 議: " 宗直 罪犯, 所不忍言, 依律文論斷, 以戒人臣懷二心者。" 鄭誠謹 議: " 宗直 陰懷是心, 臣事 世廟 , 凶惡不測, 宜置重典。" 李復善 議: " 宗直 《弔義帝文》 , 在丁丑十月, 則蓄不臣之心久矣。 觀解釋弔文之言, 非徒耳不忍聞, 抑亦目不忍見。 其身雖死, 其惡可追, 宜從叛臣之律論斷, 則 宗直 地下之鬼, 必稽首甘心伏辜矣。" 李世英 權柱 南宮璨 韓亨允 成世純 鄭光弼 金勘 李寬 李幼寧 議: "今觀 宗直 文, 語極不道。 論以亂逆何如?" 李惟淸 閔壽福 柳廷秀 趙珩 孫元老 辛服義 安彭壽 李昌胤 朴權 議: " 宗直 《弔義帝文》 , 語多不道, 罪不容誅。 然其人已死, 追奪爵號, 廢錮子孫何如?" 從 文炯 等議。 御筆抹執義 李惟淸 等, 司諫 閔壽福 等議, 以示 弼商 等曰: " 宗直 大逆已著, 而此輩議之如此, 是欲庇之也。 安有如此痛恨之事? 其就所坐處, 拿來刑訊。" 時諸宰及臺諫、弘文館皆在坐, 忽有羅將十餘人持鐵鎖, 一時走入, 宰相以下莫不錯愕起立。 惟淸 等受訊杖三十, 竝供無他情。


  • 【太白山史庫本】 8冊 30卷 9張 B면 【국便影印本】 13 冊 318 面
  • 【分類】
    正論-正論(政論) / 王室-國王(國王) / 歷史-便射(編史) / 歷史-考査(故事) / 司法-彈劾(彈劾) / 變亂-政變(政變) / 語文學-文學(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