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만   중국   일본 
韓半島의 虎狼이는 왜 사라졌을까? | 世界日報

世界日報

檢索
‘虎狼이의 삶, 人間의 삶’ 主題 國際 學術大會 열려
“朝鮮의 위민除해(爲民除害) 政策으로 韓半島에서 虎狼이 個體數가 急減했고, 日帝 때 朝鮮總督府의 海水救濟(害獸驅除) 政策이 韓半島에서 虎狼이의 命줄을 完全히 끊었다.”(김동진 한국교원대 韓國史 敎授)

“韓半島에서 白頭山 地域의 虎狼이 個體數를 回復시킬 수 있는 마지막 希望은 極東 러시아 아무르 虎狼이에게 닥친 生存 威脅 除去 支援에 있다.”(이향 서울大 獸醫科大學 敎授)

2010年 驚人(庚寅)年 虎狼이해를 앞두고 韓民族과 함께해온 우리 民族의 象徵 動物인 虎狼이가 韓半島에서 어떻게 우리와 關係를 맺어 왔고, 어떻게 滅種됐는지를 살펴보고, 虎狼이 個體數를 살리기 위한 課題를 論議하는 ‘虎狼이의 삶, 人間의 삶’이란 主題의 國際學術大會가 15日 國立民俗博物館에서 開催돼 專門家들의 活潑한 討論이 펼쳐졌다.

◇虎狼이는 高麗時代까지는 人間과 평화로운 共存을 했으나 民本主義를 내세운 朝鮮時代에 들면서 咆號政策이 實施돼 個體數가 急減했다.
國立民俗博物館 提供
學術大會에서 韓國敎員大 김동진 敎授는 ‘百姓을 위해 虎狼이를 잡은 朝鮮’이라는 論文에서 “虎狼이가 韓半島에 살기 始作한 것은 紀元前 1萬年 乃至 9000年頃으로 推定되며, 인도차이나 北部와 中國 南北地域에서 祈願한 虎狼이는 東西洋을 連結하던 沙漠길人 실크로드의 좁은 生態通路를 利用해 中央아시아를 거쳐 러시아 아무르 地域과 中國을 거쳐 韓半島에 定着하게 됐다”고 說明했다.

韓半島에 定着한 虎狼이는 以後 高麗時代까지 大體로 平和關係를 維持해왔는데, 여기에는 殺生을 禁止한 佛敎의 影響이 컸다. 以後 虎狼이와 人間의 共存이 깨지기 始作한 것은 14世紀 무렵이었다. 朝鮮의 性理學者들은 民本主義를 闡明했다. 民本主義는 經濟的인 側面에서 農本主義를 具體化하고 있는데, 農本主義는 百姓들에게 農業을 奬勵해 生業의 터전을 마련해줌으로 써 完結된다고 性理學者들은 믿었다. 따라서 農地 開墾을 위해서는 虎狼이 等 猛獸 捕獲은 當然視됐다.

이에 따라 朝鮮의 國王들은 百姓의 生命을 保護하고 굶주림을 막기 위해 虎狼이를 잡고, 虎狼이의 棲息地를 農耕地로 開墾하는 咆號政策을 實施했다.

當時 이 같은 民本主義 價値觀은 다양한 政治·社會的 現象에도 適用됐다. ‘經國大典’에 虎狼이는 ‘악수(惡獸)’로 規定돼 成宗과 中宗 代에 ‘악수’로 表現하는 事例가 顯著히 增加했으며, 中宗 때는 ‘百姓을 위해 害를 없앤다는 意味의 ‘위민除해’라는 表現이 자주 나올 만큼 虎狼이 捕獲이 盛行했다.

朝鮮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虎狼이를 잡는 것을 激勵하기 위해 褒賞과 虎皮 眞相 制度도 마련했다. 當時 많은 젊은이가 出世를 위해 虎狼이 捕獲에 나서기도 했으며, 虎狼이를 잡아 出世한 이에 對한 記錄도 있다. 虎皮 眞相은 官吏들의 出世에도 影響을 끼쳤다. 觀察使와 節度使는 王에게 捕獲한 虎狼이 가죽을 進上했으며, 많은 虎狼이를 잡은 守令은 昇進 機會를 얻기도 했다.

이 같은 虎狼이 몰아내기의 結果로 韓半島 大部分 地域에서 棲息하던 虎狼이의 個體數는 急激히 減少했으며 18世紀 中盤을 넘어서면서 韓半島 大部分의 地域에서 最上位 捕食者가 虎狼이에서 늑대로 代替되는 樣相이 展開됐다는 것이다.

엔도 基美好 日本 야조회(野鳥會) 名譽會長은 ‘韓半島의 虎狼이는 왜 사라졌을까’라는 論文에서 “日帝 때 朝鮮總督府는 開發을 名目으로 虎狼이를 妨害되는 動物로 置簿해 警察과 憲兵들이 數千名의 住民을 動員해 虎狼이를 사냥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當時 總督府 資料에 1910年부터 1945年까지 虎狼이 97마리, 豹범 624마리가 捕獲됐다고 적고 있다. 또 當時 狩獵하던 사람은 大多數가 日本人이었으며, 狩獵을 許可받은 朝鮮人 數는 韓日合倂 後 10年 동안 日本人의 10分 1에 미치지 못했다.

엔도 會長은 “韓國의 虎狼이를 調査해보던 中 (咆號政策에 關한) 日帝의 蠻行을 알게 돼 日本人으로서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1922年 慶州 대덕산에 發見돼 射殺된 虎狼이. 이 後 韓半島 어디에서도 虎狼이는 發見되지 않아 韓國의 마지막 虎狼이로 여겨진다.
國立民俗博物館 提供
韓國 虎狼이 專門家인 그에 따르면 韓國의 마지막 虎狼이는 1922年 慶州 대덕산에 捕獲됐다. 山기슭에 살던 住民 김유근氏(當時 26歲)가 山에 나무를 하러 가다가 虎狼이의 攻擊을 받아 傷處를 입고 달아나 當時 警察과 數百名의 몰이꾼들이 虎狼이를 몰아넣고 射殺했다. ‘大德山 虎狼이‘ 以後에는 어디에서도 發見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異鄕 서울大 獸醫大 敎授는 ‘虎狼이의 삶, 人間의 삶’이란 論文에서 러시아에서 生存을 이어가고 있는 아무르 虎狼이 保全에 對한 支援과 關心을 促求했다. 李 敎授는 “南韓에서 虎狼이가 살아남아 있을 可能性은 거의 없지만 現在 極東 러시아 地域에서는 400∼500마리의 아무르 虎狼이가 살고 있는 것으로 推定되는데, 北韓과 直接 國境을 맞대고 있는 南西 沿海州 地域에서도 10餘마리의 虎狼이가 살고 있다. 따라서 이들 中 一部는 中國 훈춘 地域에 出沒하고 이들은 咸鏡北道와 양강도 山岳地域에 出沒할 可能性도 排除할 수 없는 만큼 個體數 保全에 關心을 기울인다면 韓半島에서도 언젠가는 虎狼이를 볼 수 있다는 希望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現實은 虎狼이들이 密獵과 러시아의 産業化로 棲息地가 줄면서 個體數가 急減하고 있다. 事情이 이런 만큼 世界野生動物基金協會(WWF)等과 러시아의 野生動物 保存 關聯團體들이 벌이는 아무르 虎狼이 保護와 保存을 위한 活動에 우리 政府는 勿論 民間 次元에서도 積極 支援해야 한다고 그는 强調한다.

李 敎授는 “虎狼이에게는 國境이 없는 만큼 이들 虎狼이가 將來 白頭山 地域 虎狼이 個體群을 回復할 마지막 希望이자 씨앗일 수 있다”고 强調했다. 그는 이날 韓國의 아무르 虎狼이 및 아무르 豹범 保存團體의 活動과 홈페이지(www.amurleopard.kr 또는 www.amurtiger.org) 紹介도 덧붙였다.

박태해 記者 pth1228@segye.com

[ⓒ 世界日報 & Segye.com, 無斷轉載 및 再配布 禁止]

오피니언

포토

나연 '깜찍한 브이'
  • 나연 '깜찍한 브이'
  • 시그니처 지원 '깜찍하게'
  • 케플러 강예서 '시크한 매력'
  • 솔지 '아름다운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