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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스 粒子

物理散策

힉스 粒子

質量을 附與한다

아름다움을 職業的으로 追求하는 사람을 우리는 藝術家라고 부른다. 그들은 훌륭한 그림으로, 音樂으로, 文章으로, 建築物로, 때로는 춤으로 自己만의 아름다움을 世上에 남긴다. 藝術家가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움에 이끌린다. 아름다움이란 果然 무엇인가를 한마디로 定義하기는 어렵지만 ‘藝術 하는 人間’은 다른 動物과 호모 사피엔스를 區分하는 重要한 基準임에 분명하다.

아름다움을 追求하는 것은 사람의 本性, 科學者들도 아름다움을 追求한다

科學者들도 아름다움을 追求한다고 하면,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이 疑訝해 할 것 같다. 아름답다는 느낌을 일게 하는 美的 基準은 아무래도 主觀的인 反面 科學은 가장 客觀的인 普遍法則을 追求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分明히 科學者들도 아름다움을 追求한다. 이런 面에서 科學者들도 一種의 藝術家라고 할 수 있다. 科學者들이 追求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答하자면 그것은 對稱性 (symmetry)의 아름다움이다. 對稱性이란 ‘變化를 알 수 없는 性質’이라고 할 수 있다. 正六面體나 功은 對稱性이 무척 높다. 이들 物體를 어떻게 돌려놓더라도 그 變化를 알기가 어려운 것은 높은 對稱性 때문이다. 주사위의 各 面에 서로 다른 個數의 눈을 찍어 두지 않으면 어느 面이 어느 面인지 全혀 區分할 수 없다. 撞球공에 별다른 標示가 없다면 그 공이 제자리에서 回轉하고 있는지아닌지 알기 어렵다.

科學者들이 追求하는 아름다움은 對稱性이다

自然의 對稱性

科學者들이 觀察하는 自然에는 눈에 띄는 對稱性이 많다. 사람을 비롯한 많은 動植物은 左右對稱 或은 放射對稱이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地球나 生命의 根源인 太陽은 거의 完璧한 求刑이다. 그러나 科學者들이 重要하게 생각하는 對稱性은 外面的인 對稱性이 아니라 自然의 法則 自體가 가지고 있는 對稱性이다. 宇宙의 根本 原理에 對한 現在 人類의 模範答案이라고 할 수 있는 粒子物理學의 標準模型 도 對稱性의 原理에 기초해 있다. 標準模型이 담고 있는 對稱性은 게이지(gauge) 對稱性이라고 불린다. 게이지라는 말은 尺度를 意味한다. 따라서 게이지 對稱性 이라는 것은 우리가 自然을 바라보는 尺度를 변화시켜도 變化된 尺度에 따라서 自然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意味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當然하다. 自然을 바라보는 尺度에 따라서 自然이 바뀐다는 것이 異常하니까.

自然을 바라보는 尺度는 自然의 性質과는 無關하다

量子力學 이 發展된 以後 物理理論은 波動 을 통해서 記述된다. 이 때 우리가 波動을 記述하는 座標系를 바꾸면 波動의 位相 도 함께 바뀐다. 이렇듯 波動의 位相은 우리가 任意로 定한 基準點에 따라 變하는 量이므로 物理的인 實體가 없다. 따라서 座標系가 바뀌어서 波動의 位相에 變化가 오더라도 自然을 記述하는 物理 理論은 全혀 變化가 없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을 게이지 對稱性이라고 한다. 物理 理論이 게이지 對稱性을 만족시키려면 우리가 任意로 波動의 位相을 변화시켜 줄 때마다 變化된 位相을 自動的으로 相殺시켜 주는 무엇인가가 理論上 必要하다. 이 任務를 遂行하기 위해 科學者들은 새로운 粒子 槪念을 導入하였는데, 이를 게이지 粒子 (gauge particle)라고 부른다.

波動을 보여주는 그래프

古典的인 電磁氣學에서는 빛(卽, 光子)李 바로 게이지 粒子에 該當한다. 弱한 核力과 電磁氣力이 統合된 理論에서는 W와 Z粒子가 게이지 粒子가 된다. 强한 核力에 關한 게이지 粒子는 接着子(gluon)이다. 이런 게이지 粒子들은 모두 힘을 媒介하는 粒子들이다. 이 粒子들은 實際로도 存在한다.

게이지 理論, 힘을 媒介하는 粒子들이 存在한다는 事實을 알려 준다

게이지 對稱性을 滿足하는 物理 理論을 게이지 理論 이라고 한다. 이런 게이지 理論이 脚光 받는 理由는 그 理論이 힘을 媒介하는 粒子들이 存在한다는 事實을 說明하기 때문이다. 힘을 媒介하는 粒子, 게이지 粒子들이 없으면 理論의 게이지 對稱性이 있을 수가 없다. 卽 게이지 對稱性이 게이지 粒子의 存在를 ‘要求’하는 셈이다. 게이지 對稱性이 있다면 게이지 粒子는 必然的으로 있어야만 한다. “왜?”라는 質問에 對한 答辯을 주는 것이 科學의 보람이라고 한다면 이와 같은 必然性의 發見은 科學을 하는 最高의 보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科學者들은 게이지 理論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2008年 노벨物理學賞 受賞者 嬾夫 요이치로

그러나, 안타깝게도 게이지 理論에는 致命的인 弱點이 있었다. 게이지 理論에서는 모든 粒子들의 質量이 없다. 質量은 게이지 對稱性을 깨는 性質이 있다. 게이지 對稱性은 서로 ‘區分할 수 없음’을 意味한다. 反面 質量은 素粒子를 區分하는 가장 基本的인 性質이다. 게이지 對稱性은 이 區分을 지우는 對稱性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現實에서는 많은 素粒子가 質量을 가지고 있다. 게이지 理論에서는 이 딜레마를 解決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理由로 이름 높은 科學者들도 처음에는 게이지 理論에 크게 注目하지 않았다. 狀況이 反轉된 것은 自發的 對稱性 깨짐 (spontaneous symmetry breaking, SSB)이라는 槪念이 導入되고 나서였다. ‘自發性 對稱性 깨짐’이라는 것은 理論上에서는 對稱性이 있으나, 그 理論이 現實에 나타날 때는 對稱性의 一部가 깨진다는 것이다. 말장난 같이 느껴질 지는 모르지만, 애初에 對稱性이 아예 없는 것과 있던 對稱性이 깨진 것은 全혀 다르다. 바둑으로 치자면 正말 妙手가 아닐 수 없다. 이 自發性 對稱性 깨짐이라는 槪念을 粒子物理學에 처음으로 導入한 物理學者 嬾夫 요이치로 는 그 功勞로 2008年 노벨 物理學賞을 受賞했다.

힉스粒子, 모든 素粒子에게 質量을 附與한다

그러나, 世上에 空짜는 없다. 自發的 對稱性 깨짐이라는 槪念을 理論에 導入하기 위해서는 理論에 새로운 要素가 들어가야 된다. 그것이 바로 힉스(Higgs) 粒子이다. 힉스 粒子 는 게이지 對稱性을 깨어 素粒子들이 質量을 가질 수 있게 한다. 힉스 粒子의 別名은 神의 粒子이다. 모든 素粒子에게 質量을 附與하는 粒子인 힉스에게 適切한 別名인 듯하다.

演藝人이 거리에 나타났다! 空間의 對稱性이 깨진 瞬間

힉스가 對稱性을 깨면서 素粒子들에게 質量을 附與하는 過程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서울의 鳴動거리는 恒常 사람들로 북적댄다. 그러나 大體로 보면 사람들이 북적대는 程度는 어느 位置, 어느 方向으로나 均一하다. 卽 鳴動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分布에는 一種의 對稱性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사이를 지나가더라도 (사람이 너무 많지만 않다면) 큰 抵抗을 느끼지 않고 願하는 길을 갈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 中에 超特級 演藝人이 普通사람처럼 正體를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커밍아웃을 한다고 해 보자. 周邊에 숨겨둔 카메라도 튀어나오고 그렇게 되면 瞬息間에 鳴動거리는 阿修羅場이 될 것이다. 이 瞬間 鳴動거리의 對稱性은 完全히 깨진다. 그 演藝人을 中心으로 엄청난 人波가 모여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演藝人이 있는 方向으로 움직일 때 큰 抵抗을 느끼게 된다. 對稱性이 깨지면서 뭔가 均一하던 分布에 큰 變化가 생겼기 때문이다. 힉스 粒子가 하는 일이 바로 이와 같다. 우리가 느끼는 抵抗의 程度가 素粒子들이 얻게 되는 質量이라고 볼 수 있다.


發行日

發行日 : 2009. 0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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