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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年 11月
)
|
阪神
(韓信,
1922年
12月 27日
~
1996年
5月 6日
)은 大韓民國의
軍人
·
政治가
·
企業家
이다. 內務部 長官, 監査院 院長, 合同參謀總長, 아시아自動車 名譽會長 等을 지냈다.
그는
최영희
(1961年 大韓民國 陸軍 中將 豫編)·
김종오
(1965年 大韓民國 陸軍 大將 豫編) 等의 軍人들처럼 學徒兵 出身으로
大韓民國 陸軍
少尉로 任官하여 1975年 大韓民國 陸軍
大將
으로 豫編하였다.
生涯 初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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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鏡南道
永興郡
에서 태어났다.
日本
으로 건너가
주오 大學校
法學科를 나온 뒤, 歸國하여 辯護士로 活動하려다가
1944年
太平洋 戰爭
에서 日本의 敗北가 臨迫하자, 學徒兵으로 强制徵集되어 日本 本土와 南太平洋에서 參戰하였다. 이것을 契機로 大韓民國 陸軍에 入隊하였다.
解放 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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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光復 後에는 1945年 9月 20日을 期하여 이름을
한원극
(韓元極)에서
阪神
(韓信)으로 改名하였으며
大韓民國 陸軍
將校 活動하다가
韓國 戰爭
이 勃發하자 聯隊長 身分으로 여러 戰鬪에 參戰하였다. 韓國 戰爭 當時 그의 階級은
大領
이었다. 이 때,
白善燁
과
송요찬
의 信賴를 얻게 되었고 特히나 그의 청렴함과 部下들에 對한 각별함이 그가
李鍾贊
처럼 참軍人으로 部下 將校와 將兵들에게 尊敬 받게 되었다.
生涯 後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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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正熙가 5.16 軍事 政變을 일으키자 軍事革命委員會(國家再建最高會議)에 依하여 內務部 長官에 任命되었다. 當時의 한神은 이종찬과 달리 軍人이 나라를 위해 힘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 이를 기탄없이 受諾하였고 以後 國防大學院 卒業,
대한중석
(現 大邱텍) 社長,
아시아自動車
(現 起亞自動車) 會長 等을 歷任하였다.
- 1946年: 陸士 2期 任官.
- 1954年: 陸軍 准將 進級.
- 1956年: 陸軍 首都軍團 副軍團長(准將).
- 1961年: 內務部 長官.
- 1962年: 陸軍 所長 進級.
- 1963年: 陸軍 第2軍司令部 副司令官(所長).
- 1963年: 監査院長.
[1]
- 1964年: 陸軍 第6軍團 副軍團長.
- 1968年: 陸軍 第6軍團長.
- 1968年: 陸軍參謀次長(中將).
- 1968年: 陸軍 第2軍司令官.
- 1969年: 陸軍 第1軍司令官.
- 1970年: 陸軍 第1軍司令官 職位 在職 時에 陸軍 大將 進級.
- 1972年: 合同參謀總長.
[2]
- 1975年: 亞細亞自動車株式會社 社長
- 1976年: 亞細亞自動車株式會社 會長(1984年 아시아自動車 名譽會長 離任).
- 1977年: 대한중석 社長(兼職).
- 1981年: 韓國綜合化學工業 社長(兼職).
- 1984年: 아시아自動車 名譽會長.
- 1985年: 대한중석 社長 職位 退任.
- 1986年: 韓國綜合化學工業 社長 職位 退任.
- 1987年: 아시아自動車 名譽會長 職位 退任.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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