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年
京畿道
金浦郡
양촌면
마산리
(現
京畿道
金浦市
마산동
)에서 6男 2女 中 둘째로 出生하였다. 本貫은
海州
. 高祖父 때부터 가톨릭을 믿어온 집안의 影響으로 自然스럽게 信仰을 接할 수 있었다. 이렇게 熱心한 信者 집안에서 成長한 최기산은 中學校 때 이미 司祭의 길을 가기로 決心했다. 마산리 公所 出身인 그는 어릴 적 미사 參禮를 위해 25里나 되는 거리를 다녀야했지만, 家族과 함께 하는 이 길이 언제나 幸福했다고 回顧하였다.
以後 1967年 小神學校 33回로 卒業한 그는 75年 12月 司祭品을 받고 仁川 富平1洞本堂 補佐神父로 司牧活動을 始作했다. 司祭가 된 後 그는 本堂司牧, 敎區司牧, 海外僑胞司牧 等을 두루 經驗했다. 1987年에는 天主敎 仁川敎區 司牧局長을 歷任했으며, 1990~1995年에는
美國
에서 僑胞 司牧 및 工夫를 하기도 했다. 特히 그는 美國 뉴저지 데마레스트에서 韓人 天主敎 聖堂을 正式으로 設立하고, 當時 55世代이던 信者 家口 數를 240世代까지 끌어올렸다. 後날 최기산은 이때가 美國 僑胞司牧 當時 가장 幸福했던 時期라고 傳했다.
美國 僑胞司牧 後 1996年 2月
仁川가톨릭대學校
敎授로 赴任하였으며, 靈性處長 및 겨레文化硏究所長을 兼任하였다.
1999年 10月 29日
敎皇 요한 바오로 2歲
에 依해 仁川敎區
不敎區長 主敎
로 任命되었으며, 같은해 12月 27日 富川 室內體育館에서 그의 主敎 敍品式이 擧行되었다. 2002年 3月 26日 仁川敎區 初代 敎區長
나길모
主敎가 隱退하면서 敎區長職을 自動 承繼받았다. 敎區長 着座式은 같은해 4月 25日 仁川敎區
답동 主敎座 聖堂
에서 擧行되었다.
[1]
以後 여러 方面에서 司牧活動을 하다 2016年 5月 30日 午前 11時 40分에 心臟痲痹로 갑자기 善終하였다(68살).
[2]
최기산 主敎 文章의 司牧標語는
요한 福音書
14章 6節에서
예수 그리스도
가 스스로를 가리켜 “나는 길이요 眞理요 生命이다(EGO SUM VIA VERITAS ET VITA).”라고 한 말이다. 이는 “聖靈으로 充滿하신 예수 그리스도 홀로 우리의 길이요 眞理요 生命이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人生의 防牌로 삼아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기로 한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최기산 主敎의 司牧意志를 含蓄的으로 드러내고 있다.
文章은 防牌 形象에 길, 眞理를 뜻하는 冊, 生命을 象徵하는 물甁으로 이뤄져 있으며 下段에 崔主敎가 司祭 敍品 때부터 座右銘으로 삼아온 主님의 祈禱 中 한 句節인 `FIAT VOLUNTAS TUA(主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를 라틴語로 적어놓았다.
文章 上段의 純白의 비둘기는
聖靈
을 象徵하며 바로 아랫部分의 성광으로 빛나는 十字架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함과 同時에 그리스도가 十字架를 지듯이 崔 主敎 自身이 主敎職을 謙遜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中央에 位置한 防牌 形象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人生의 防牌로 삼겠다는 意志로 表現됐으며 防牌에 새겨진 길과 冊, 물甁 模樣은 各各 길과 眞理와 生命을 象徵한다.
비둘기 윗部分의 帽子와 防牌 옆 열두 매듭의 裝飾술 그리고 防牌 下段의 지팡이는 主敎의 位階를 表示하며 全體的으로 溫和한 오렌지色 配列은 따뜻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實踐하려는 崔 主敎의 性品과 一致한다. 또한 綠色은 하느님의 種으로 더욱 獻身하겠다는 성실함을, 오렌지色과 綠色의 調和는 모든 이가 一致하여 하느님 나라를 完成하자는 和合과 平和의 意味를 담고 있다.
[1]
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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