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3年 當時 덴마크가 잉글랜드를 侵攻하여 王座를 차지하자, 그는 어머니의 故鄕인 노르망디 地方에서 亡命生活을 하였는데 그의 두터운 信仰心을 當時 어머니로부터 傳해진 것이라고 한다. 1042年 그의 吏部(異父)兄弟
하레크누드
가 죽자 推戴를 받아 王位에 오르게 된다. 그는 큰 키에 蒼白할 程度로 흰 皮膚, 銀빛을 띈 金髮을 가지고 있었다.
王位에는 올랐으나 그는 政治에는 全혀 關心이 없었다고 한다. 自然히 政權은 强力한 權力을 차지한 貴族들에 依하여 壟斷되었는데, 그럼에도 不拘하고 그가 王位를 지킬 수 있던 것은 敬虔한 信仰心을 바탕으로 한 前 國民的인 支持德分이었다.
1051年 에드워드는 約 10餘年間 政權을 쥐고 있던 그의 丈人인 고드윈 一派를 몰아내었으나, 當時 功을 세운 노르만人들을 重用하여 當時 主流였던 앵글로 색슨 人들에게 反感을 사게 되었다. 結局 1053年 고드윈이 죽자 그의 아들인 웨식스 백(伯) 해럴드가 아버지를 代身하여 政權을 잡게 된다.
1065年 노섬브리아에서 일어난 叛亂을 鎭壓한 에드워드는 그 다음해 런던에서 世上을 떠났다.
그가 죽자 當時 政權을 쥐고 있던 해럴드가 主要 貴族들의 推戴를 받아 王位에 올라 해럴드 2世로 卽位한다. 하지만 當時 노르망디 共이었던 윌리엄이 이에 反旗를 들고 잉글랜드를 侵攻하여
헤이스팅스 戰鬪
에서 해럴드의 軍隊를 물리치고 새로 '征服王' 윌리엄 1歲로 王座에 앉게된다.
웨스트민스터 寺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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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亡命 途中 그는 하느님에게 自身이 다시 王位를 回復하게 된다면 로마를 巡禮할 것을 盟誓하였다고 한다. 그는 卽位 以後 誓約을 지키기 위하여 로마 巡禮를 推進하였는데 當時 政局이 安定되지 못했음을 들어 大部分의 貴族들이 이를 反對하게 되자 當時
敎皇 레오 9歲
에게 助言을 求하였다. 敎皇은 에드워드에게 로마 巡禮 費用으로 修道院을 짓고 貧民을 救濟하는 것을 勸하였고, 王은 이에 따라 聖堂 附屬으로 있던 修道院을 增築할 것을 指示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웨스트민스터 寺院
이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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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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