怪石(怪石)과 함께
잉어
,
쏘가리
,
붕어
,
메기
,
가자미
,
게
,
새우
等의 어해류(魚蟹類)가 精巧한 筆致와 짙고 옅은 먹의 뛰어난 弄談效果에 依해 매우 事實的으로 描寫되어 있는 그림이다. 10帖 屛風 左右 1帖에 戰서(篆書)로 쓴 跋文(跋文)이 있고, 그림은 8帖에 連捷으로 그려져 있다. 段幅(單幅)에 그려진 魚蟹圖(魚蟹圖)는 많으나 이 그림처럼 8첩 平面 全體에 걸쳐 그린 魚蟹圖는 그리 흔치 않다.
[1]
이 그림에서 畫家는 畫幅 全體를 앞에 두고 畵面의 윗쪽과 왼쪽 下端, 그리고 오른쪽 下段에 怪石을 配置하여 全體的으로 어해(魚蟹)를 감싸듯 하였지만 畵面의 오른쪽 위로는 空間을 열어놓음으로써 답답하지 않은 豪快한 構成의 妙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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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畵面 全體를 舞臺로 하여 잉어, 쏘가리, 붕어, 메기, 가자미, 게, 새우 等 여러 種類의 물고기들이 游泳하고 있는데, 어떤 것은 빙그르르 돌고 있고 어떤 것은 지느러미를 兩
쪽으로 쭉 편 채 아래로 내려꽂듯이 헤엄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조그만 물고기가 큰 물고기를 따라 가고 있는 場面도 있고 서로 랑데부를 하고 있는 물고기의 모습도 그려 넣어 畵面이 生動感 있게 表現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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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 김태석(惺齋 金台錫, 1875年~1953年)李 氣幼年(己酉年, 1909年 推定)에 쓴 跋文(跋文)에는 이한철(李漢喆, 1808年~1893年 以後)李 그린 魚蟹圖라고 적혀 있으나 畵面에는 作家의 關西(款署)나 道人(陶印)이 보이지 않는다. 跋文을 쓴 사람이 김태석人 것은 左側 跋文 末尾에 찍혀있는 ‘태석知人(台錫之印)’이란 百聞邦人(白文方印)과 ‘성재(惺齋)’란 注文房인(朱文方印)으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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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文을 쓴 金台錫은 舊韓末의 書畫家로 戰서(篆書)?예서(?書)?전각(篆刻)에 뛰어났고 舊韓末 文士들과도 넓게 交遊하고 中國에 갔을 때 袁世凱(袁世凱)의 玉璽를 새겼으며 그의 書藝顧問을 지냈을 程度로 著名했을 뿐 아니라 그가 20歲 무렵까지도 이한철은 生存해 있었기 때문
에 作家의 關西(款署)나 道人(圖印)은 없지만 이 作品을 이한철의 作品으로 看做해도 無理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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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略 19世紀末(1879年 警) 製作된 것으로 推定되는 이 그림은 짙은 먹과 옅은 먹의 弄談의 巧妙한 變化와 물고기들의 動作을 통해 畵面 全體에서 리듬감이 演出되어 있는 뛰어난 作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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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 末期 魚蟹圖(魚蟹圖)를 代表할 수 있는 大作으로 屛風의 크기도 제법 커서 展示效果가 좋으며 畫幅의 狀態도 良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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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
다
라
마
바
社
아
서울特別市告示 第2003-255號, 《서울特別市有形文化財및文化財資料指定》, 서울特別市葬, 서울特別市 時報 第2505號, 14面, 2003-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