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만   중국   일본 
田麗玉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田麗玉

大韓民國의 記者 出身 政治家

田麗玉 (田麗玉, 1959年 4月 19日 ~)은 大韓民國 作家 이다. 第17·18 國會議員을 지냈다.

田麗玉
作家 情報
出生 1959年 4月 19日 ( 1959-04-19 ) (65歲)
大韓民國 서울特別市
國籍 大韓民國
學歷 이화여대 大學院
經歷 한나라黨 代辯人
國會 外交通商統一委員會 幹事
한나라黨 最高委員
한나라黨 國際委員長
第2代 韓國女子野球聯盟 會長
한나라黨 戰略企劃本部長
國民생각 代辯人
韓國女子野球聯盟 拷問
서강대학교 兼任敎授
本館 潭陽
宗敎 天主敎 (洗禮名: 클라라)
配偶者 以上만
웹사이트 公式 사이트
田麗玉 블로그
田麗玉 네이버 블로그
田麗玉 트위터

學歷 編輯

經歷 編輯

  • 1981~1994年 8月 KBS 報道本部記者, 東京特派員
  • 2004年 3月~2005年 11月 한나라당 代辯人
  • 2004年 5月~2008年 5月 第17代 國會議員(한나라당)
  • 2008年 5月~2012年 5月 第18代 國會議員(서울 영등포구甲 / 한나라당→無所屬→國民생각)

生涯 編輯

1981年 KBS 報道局 에 入社하여 1994年까지 記者로 活動했다. 1991年 1月부터 1993年 8月까지는 도쿄特派員이었다. 特派員時代에 쓴 毒舌的 日本論 《 日本은 없다 》를 냈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 日本은 없다 》의 剽竊疑惑을 提起한 原作가인 유재순 제이피뉴스 發行人 等 5人에 對해서 損害賠償으로 5億원을 請求하였지만, 2012年 5月 18日 大法院 確定判決로 유재순氏의 레포트를 剽竊한 것이 認定되어 敗訴했다. [1] [2] 이에 對해 田麗玉은 '剽竊이 아닌 아이디어 認容'일 뿐이라고 辨明하였다. [3]

2004年 한나라黨 에 入黨했다. 2004年 5月 第17代 國會議員에 比例代表로 當選됐다. 2004年 7月 第17代 大韓民國 國會 統一外交通商委員會 委員으로 活動했다.

2006年 2月 22日 黨內行事에서 김대중 前 大統領을 癡呆老人이라고 卑下하였다. [4]

2006年 7月 11日 한나라黨 第8次 全黨大會에서 4位로 最高委員에 當選됐다. 2006年 12月 19日《暴風前夜》1,2卷 出刊했다. 2007年 4月 한나라당 最高委員職을 辭退했다.

2008年 3月 서울 영등포甲에 出馬했다. 2008年 4月 朴槿惠 의 팬클럽인 박사모는 전여옥의 落選運動을 했다. [5] 4月 6日 박사모 는 전여옥의 落選을 위해 민주당 候補인 金榮珠 를 支持한다는 聲明을 言論에 發表하기도 했다. [6] 2008年 5月 영등포甲 國會議員으로 當選됐다. 2008年 한나라黨 國際委員會 委員長으로 活動했다. 2008年 國會 硏究團體 미디어政治2.0 活動했다. [7] 2008年 12月 國民日報 20周年에 祝辭를 보냈다. [8]

大韓民國 第18代 國會議員 選擧에서 영등포 甲에 出馬해 當選된 以後 統合민주당이 公職選擧法 違反(虛僞 學歷 및 經歷 記載 等)으로 告發했지만 大法院의 原告敗訴 判決로 議員職을 維持할 수 있게 됐다. [9] 第18代 國會 國土海洋委員會 委員으로 活動했다.

2008年 5月 8日 촛불 示威 에 對해 '惡靈이 出沒하는 社會'( 칼 세이건 의 文句)로 比喩, 示威隊를 非難하는 論評을 냈다. [10]

民家協의 集團 暴行 事件 編輯

2009年 2月 27日 大韓民國 國會 本館 1層 複道에서 同意大學校 事件 에 起因한 그의 '民主化 運動 關聯者 名譽 回復 및 補償 等에 關한 法律' 改正 推進으로 抗議次 國會를 訪問한 釜山 民家協 代表 李 某 할머니에게 暴行당했다. [11] 當時 國會는 國會 事務總長 박계동 이 國會 本廳 出入制限措置를 한 時點이었다. [12] 暴行 以後 田麗玉은 쓰러졌고 病院으로 移送됐다. 田麗玉 議員側에서는 "集團에게 暴行당했다"고 主張했으며, 釋放對策위 側에서는 "事件은 不過 20秒 동안 일어났으며 集團暴行은 없었다"고 主張했다. [11] 加害者 李某氏는 밀쳤지만 때리지는 않았다며 嫌疑 事實을 全面 否認했고, 民主化運動精神 繼承 國民連帶(國民連帶)도 28日 聲明書를 통해 全 議員이 事件을 歪曲하고 있다며 警察이 確保한 CCTV 公開를 要求했다. [12]

전여옥이 民家協 側에게 구타당할 當時 目擊者들이 있었으나 말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3] 當時 國會에 見學온 한 高等學生이 事件 場面을 핸드폰으로 撮影한 動映像이 있다고 알려진 뒤, 動映像이 搜査機關에 確保되어 警察이 分析中에 있다. [14] 서울 순천향병원에서는 한겨레 等 言論社와의 記者會見에서 전여옥이 全治 8週의 傷害를 입었다고 밝혔다.(최초3주진단 1週日後 8株로 變更됨) [15]

또한 같은 날 民家協 等에서 加害者들에 對한 拘束이 不當하다며 提起했던 拘束適否審은 棄却됐다. [16] 또한 警察은 田麗玉 暴行 容疑者 4名에 對해 10日까지 警察에 出席하도록 通報했다. 앞서 5日에 容疑者 中 한 名이었던 裵氏(34, 與)는 嫌疑點을 찾지 못해 歸家 措置된 바 있었다. [17] 一部 네티즌들은 田麗玉 暴行事件에 對해 "'前置 8주지만 負傷은 輕微하다'고 밝힌 醫療陣의 發表를 理解할 수 없다", "70代 할머니가 全治 8週의 傷害를 입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等의 疑惑을 提起했다. [18] 釋放對策위 側에서는 警察에 國會 CCTV 畵面 公開를 要求했으나, 警察側에서는 CCTV 畵面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對해 對策委 等에서는 "警察이 客觀的 證據도 내놓지 못하면서 前議員 主張만 따른다"고 批判했다. [12] [19] 田麗玉은 바로 病院으로 入院했다.

한便 한나라당 공성진 議員이 이 事件을 "國會議員의 公務執行을 妨害한 테러"라고 規定했다. 反面 創造韓國當 유원일 議員이 龍山慘事 眞相調査中 暴行당한 事件에 對해서는 "警察의 公務執行을 妨害한 것이며, 當時 警察들은 그가 國會議員인지 몰랐다"고 主張했다. 이에 유원일 議員은 眞相調査는 國會議員의 法律上 職務이며, 처음부터 警察에게 國會議員임을 밝혔다며 剛하게 抗議했다. [20] 朝中東 이 이番 事件에 對해 지나치게 偏向的인 報道를 한다는 批判도 提起됐다. [21] 2009年 5月 30日 法院은 田麗玉 議員을 暴行한 民家協 共同代表 李某氏와 조某氏에게 執行猶豫를 宣告했다. 法院은 事案이 무거우나 初犯인 데다 供託金 500萬 원을 맡긴 點, 68歲의 高齡 等을 參酌했다고 밝혔다. [22]

進行 編輯

TV 編輯

라디오 編輯

批判과 論難 編輯

剽竊 書籍 出版 論難 編輯

田麗玉은 2007年 自身의 代表的인 베스트셀러인 《 日本은 없다 》의 剽竊 疑惑을 提起한 오마이뉴스 記事 [23] 와 關聯하여, 제이피뉴스 發行人 유재순 과 記事를 作成한 오마이뉴스의 박철현 記者, 編輯長 鄭雲鉉 , 오마이뉴스 代表 오연호 , 그리고 인터넷 政治評論 사이트인 서프라이즈 의 論客 김동렬 等 5名을 相對로 낸 5億 원의 損害賠償 名譽毁損 손배請求의 訴를 提起했으나 敗訴했다.

裁判部는

全氏는 親하게 지내던 유재순氏 日本에 對한 冊을 出刊하려고 草稿를 作成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柳氏로부터 들은 內容을 無斷으로 使用하거나 引用해 《日本은 없다》의 一部分을 作成했다고 보인다. … 이 같은 結論이 柳氏와 가까운 證人들의 陳述에 根據하기는 하지만 冊이 出刊된 지 10年이 넘어 兪氏의 取材 資料나 超高價 남아 있지 않은 狀況에서 劉氏 側 證據가 全氏 側 것보다 더 信憑性이 있어 보인다. … 오마이뉴스의 記事 및 칼럼은 全體的으로 眞實한 事實로 볼 수 있고 公益性이 認定되므로 全氏의 損害賠償 主張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고 設市하여 전여옥이 他人의 아이디어를 無斷으로 引用했음을 認定했다. [24]

田麗玉은 1審에 不服하여 抗訴했으나, 2010年 1月 13日 다시 敗訴했다. 抗訴審인 서울高等法院 民事13部(部長判事 여상훈)는 13日 前 議員이 <日本은 없다>에 剽竊 疑惑을 提起한 오연호 '오마이뉴스' 代表와 르포作家 유재순 을 相對로 낸 5億원의 損害賠償 請求訴訟에 對해 1審과 같이 原告 敗訴 判決을 내렸다.

裁判部는 判決文을 통해

全氏는 柳氏가 日本 社會에 關한 冊을 出刊할 豫定이라는 事情을 알면서도 그로부터 들은 內容을 素材로 使用, 冊의 一部를 썼다고 볼 수 있다

라고 設市했다. 大法院에서도 敗訴함으로써 田麗玉 作家가 剽竊하여 出版한 責任을 認定했다. [25]

露宿者 整理 波紋 編輯

2008年 3月 27日 18代 國會議員 選擧 遊說 途中 露宿者를 整理하겠다는 發言이 波紋이 되기도 했다. [5] [26] [27] 宗敎團體와 人權團體 等은 露宿者들에게도 人權이 있다 하며 發言 內容을 批判했다. [5] [26] [27] 한便 박사모 代表 정광용 等은 그를 退出시켜야 한다며 批判하기도 했으며, 네티즌들의 非難을 받기도 했다. [27]

學歷 거짓 疑惑 編輯

2008年 4月 민주당 候補者였던 金榮珠 는 전여옥의 虛僞 學歷疑惑을 提起하기도 했다. [28] [29] 김영주는 그가 公式遊說期間동안 使用한 公報物에 虛僞學歷을 記載했다고 主張했고, 事實에 對한 檢察 告發, 當選·選擧訴訟 等 法的으로 保障된 모든 方式으로 18代 總選 영등포甲地域의 選擧 無效와 不當性을 立證할 計劃이라 發表했다. [30]

김영주 等이 主張한 그의 違法事項은 學歷에 對한 虛僞事實 流布, 選擧公報物의 違法, 虛僞經歷에 對한 虛僞事實 流布 等이며 '學歷에 對한 虛僞事實 流布'를 들었다. [30] [31] 이대 政治學科 博士課程은 5學期 異常을 登錄하고 論文資格試驗을 通過해야만 最小 修了가 되는 過程”이라며 [30] [31] “前 議員은 豫備候補者 弘報物과 候補者 公報物을 비롯 홈페이지에 自身의 學歷事項으로 ‘이화여자대학교 大學院 政治學科 博士課程 4學期 마침’으로 表記했다”며 “選菅委의 有權解釋, 法院 判例로 볼 때 이는 明白한 選擧法 違反”이라고 主張했다. [30] [31] 또한 인터넷 홈페이지와 豫備候補者 弘報物, 候補者 公報物, 名銜 等 弘報物에 ‘이명박 大統領 當選人 日本特使’라고 表記한 것 亦是 김영주는 虛僞事實이라 하며 外交通商部가 國會에 提出한 ‘大統領 當選人 特使關聯 資料’ 文書에는 全 當選人은 分明히 이상득 日本 特使의 隨行員으로 記載되어 있다며 虛僞事實 公表한 것으로 公職選擧法 第250條 違反에 該當된다고 主張했다. [31] 하지만 그에 따른 判決은 公職選擧法에 違反되지 않는다는 內容이었다.

朴槿惠와의 訣別 編輯

2007年 4月 "박근혜 代表 周邊사람들은 무슨 宗敎集團같다"고 發言했을 때 그의 變心은 이미 豫告됐었다. 2005年 當時 박근혜 한나라당 代表 時節 代辯人으로 活躍하며 ' 朴槿惠 의 입'이라 불리던 田麗玉 議員은 2012年 1月 出刊된 自身의 自敍傳에서 "大統領이 될 수도 없고 또 되어서도 안되는 候補라고 생각한다”며 박근혜를 詰難했다. [32] 田麗玉은 2007年 7月 12日 汝矣島 黨舍와 李明博 캠프 事務室에서 잇따라 記者會見을 갖고 "李明博 前 市場을 돕는 길만이 政權交替의 지름길이라 確信한다"며 이명박 候補 支持를 公開 宣言했다. 그는 "朴 前 代表와 함께 간다면 便할 수도 있었겠지만 5年 뒤 果然 國民이 어떤 評價를 내릴까를 생각했다"는 말로 朴 前 代表와의 訣別理由를 說明했다. 박사모 에서는 田麗玉 議員을 "剽竊과 背信의 女人"으로 規定한 뒤, "政治人이 背信을 밥 먹듯 하는 것은 自身의 信念에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그 被害는 고스란히 그 사람을 찍어 준 영등포 區民이 입게 된다"며 落選運動을 하면서 當爲性을 主張했다. [33] 言論에서는 萬坪을 통해 田麗玉 議員의 '變節'을 諷刺하고 나섰다. [34]

脫黨, 그리고 落選 編輯

田麗玉은 國民생각 所屬으로 全國區 比例代表로 出馬하여 推薦 1順位의 배번(1番 田麗玉, 2番 김승제, 3番 박재숙, 4番 이명우, 5番 이용환, 6番 엄향희, 7番 홍재범)을 받았으나 國民생각은 全國區 投票에서 得票率이 너무 低調하여 全國區에서 單 한 名도 當選되지 못했다. 또한 地域區에서 亦是 單 名의 國會議員을 排出하지 못한 데다가 2%의 最小支持率마저 채우지 못한 0.73%의 支持率을 얻은 것에 그치는 바람에 田麗玉은 落選되었으며 國民생각은 政黨登錄이 取消되었다.

自私高 '四拜子' 銓衡 子女 入學 編輯

전여옥의 아들은 自私高인 장훈고 志願資格에 未達되는 成跡이었지만 多子女 家庭子女라는 點을 利用해 2010年 四拜子(社會的 配慮 對象者) 典型에 支援했고, 合格했다. 專 前 議員은 選擧에서 이 高等學校를 自私高로 轉換하겠다는 公約을 내걸어 當選됐고, 自私高로 轉換된 첫해에는 入學式에 貴賓으로 參席키도 했다. 自私高에 入學했던 아들은 2012年 學校에 適應하지 못해 自退했다. [35]

歷代 選擧 結果 編輯

實施年度 選擧 臺數 職責 選擧區 正當 得票數 得票率 順位 當落 備考
2004年 總選 17代 國會議員 比例代表 한나라黨 7,613,660 票
35.76%
比例代表 7番   初選
2008年 總選 18代 國會議員 서울 영등포구 甲 한나라黨 35,151 票
43.75%
1位   再選
2012年 總選 19代 國會議員 比例代表 國民생각 156,241 票
1.7%
比例代表 1番 落選

著書 編輯

  • 《日本은 없다》(1995)
  • 《女性이여 테러리스트가 되라》(1995)
  • 《女性이여 느껴라 探險하라》
  • 《懇切히 @ 두려움없이》
  • 《大韓民國은 있다》
  • 《暴風前夜》(1,2卷)
  • 《삿포로에서 麥酒를 마시다》(2003)
  • 《傲慢과 無能 - 굿바이, 朴의 나라》(2016)
  • 《사랑을, 놓다》(2017)
  • 《산다는 것은 1%의 奇跡》(2020)

各州 編輯

  1. '剽竊是非' 田麗玉, 言論 相對 損賠訴 大法서 敗訴 뉴시스 2012.5.18
  2. 田麗玉, 剽竊 冊으로 얼마나 벌었나 했더니… 韓國日報 2012.5.18
  3. 田麗玉 “剽竊 아니라 아이디어 引用일 뿐” 미디어오늘 2012.5.18
  4. “전여옥 DJ 發言에 우리 민주당 발끈” . 世界日報. 2006年 2月 24日 . 2006年 2月 24日에 確認함 .  
  5. 노컷뉴스
  6. 박사모 "전여옥 退出 위해 民主黨 支持" - 머니투데이:投資뉴스
  7. 55個 國會議員硏究團體 名單 - 오마이뉴스
  8. [ 깨진 링크 ([https://web.archive.org/web/*/http://www.kukinews.com/news2/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1124081&cp=nv 過去 內容 찾기)] [쿠키뉴스] 갓 구워낸 바삭바삭한 뉴스]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9. " 한나라黨 田麗玉 議員 議員職 維持 " . 法律新聞. 2008年 11月 14日 . 2009年 3月 5日에 確認함 .  
  10. “전여옥,'狂牛病 論難, 惡靈이 出沒하는 世上 ' . 프리존뉴스. 2008年 5月 8日 . 2009年 3月 5日에 確認함 .  
  11. “전여옥, 國會서 暴行 當해” . 오마이뉴스. 2009年 3月 4日 . 2009年 3月 6日에 確認함 .  
  12. 田麗玉 暴行 事件, '진실게임' 樣相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時事이슈 2009年 3月 1日
  13. 田麗玉 暴行事件, 봐도 모른 척? Archived 2009年 3月 5日 - 웨이백 머신 時事人 2009年 3月 4日
  14. “檢察, '國會 暴力事件' 搜査 速度戰‥關聯者 줄召喚” . MBC. 2009年 3月 4日 . 2009年 3月 5日에 確認함 .  
  15. 主治醫 “전여옥 議員 8週 治療 必要…痲痹性 상사시”- 한겨레 2009-03-06
  16. 法院 "民家協 代表, 拘束이 適法하다"- 노컷뉴스 2009-03-06
  17. '전여옥 暴行' 容疑者 再召喚 通報-아시아투데이 2009-03-06
  18. "할머니가 원더우먼이냐?" vs "前議員 테러 當했다" - 노컷뉴스 2009-03-06
  19. "警察, '전여옥 暴行' CCTV 왜 公開 못하나" - 프레시안 2009-03-02
  20. "전여옥 事件은 一般人 테러…유원일 事件은 公務執行妨害"? -프레시안 2009-03-06
  21. “전여옥 暴行事件과 東亞日報” . 京鄕新聞. 2009年 3月 2日.  
  22. [1] [ 깨진 링크 ( [2] 過去 內容 찾기])] 東亞日報
  23. "監獄갈 覺悟로 '剽竊' 眞相 밝혀낼 것" [日本 現地인터뷰] 유재순氏가 밝힌 <日本은 없다> 剽竊疑惑 오마이뉴스 박철현(tetsu) 2004年 6月 17日, 2010年 1月 16日 確認
  24. “`田麗玉 `日本은 없다` 一部 無斷 認容`” . 中央日報. 2007年 7月 12日.  
  25. “`田麗玉, '剽竊 裁判' 抗訴審에서도 敗訴`” . 뷰스앤뉴스. 2010年 1月 13日.  
  26. 프런티어타임스
  27. 示唆1番地 폴리뉴스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28. 金榮珠,'田麗玉 議員의 學歷,經歷事項은 虛僞事實입니다'?:: 네이버 뉴스
  29. 4·9 끝났지만… 告訴·告發 이제부터 始作 (국민일보) (쿠키뉴스) 2008年 04.11日子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30. 田麗玉, 虛僞學歷 記載 論難 增幅 Archived 2021年 9月 23日 - 웨이백 머신 데일리서프 2008-04-11字
  31. 金榮珠 "전여옥 當選 無效다" 뷰스앤뉴스 2008-04-11
  32. 田麗玉 “박근혜, 大統領 될 수도 되어서도 안된다" 한겨레 新聞 2012. 12. 5, 2016. 10. 26 確認
  33. 박사모, '전여옥 落選運動' 本格 突入 뷰스앤뉴스 2008. 4. 5, 2016. 10. 26 確認
  34. '전여옥 變心' 諷刺한 萬坪 洑물 미디어 오늘 2007. 7. 13, 2016. 10. 26 確認
  35. 田麗玉 前 議員 아들도 '四拜子' 銓衡 入學論難 아시아 經濟 2013.3.8

外部 링크 編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