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 (李哲, 1948年 3月 18日 ~ )은 大韓民國 의 第12代, 第13代, 第14代 國會議員을 지낸 政治人 이다.
경기고등학교 를 卒業하고 서울大學校 社會學科 在學 中 學生運動에 參與하였다가 民靑學聯 事件 으로 死刑宣告를 받은 바 있다.
1985年 宸翰민주당 公薦으로 서울 城北區 選擧區에 出馬하여 第12代 國會議員에 當選됨으로써, "宸翰민주당 突風"의 主役이 되었다. 1987年 에는 金永三 , 金大中 兩金氏의 野圈 候補 單一化를 要求하는 데 앞장섰고, 1988年 統一民主黨 과 平和민주당 兩쪽의 公薦을 모두 받지 않고 無所屬으로 出馬하여 第13代 國會議員에 再選되었다. 3黨 合黨 以後 이기택 , 盧武鉉 等의 統一민주당 殘留派에 合流하여 民主黨 을 創黨하였고, 1992年 第14代 國會議員에 當選되었다.
1996年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 創黨에 反對하여 民主黨 에 殘留하였고, 第15代 國會議員 選擧에서는 落選하였다. 以後 盧武鉉 等과 함께 國民統合推進會議(統推)에서 活動하다가 1997年 第15代 大統領 選擧를 앞두고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合黨에 參與하여 한나라黨 所屬이 되었다.
以後 한 때 한나라당이 再補闕 選擧를 치를 때 遊說現場에 同參하였으나, 2000年 總選을 앞두고 自身의 性向과 맞지 않는다는 理由로 한나라당을 脫黨해 政界를 떠났다. 그러나 2002年 第16代 大統領 選擧 때 鄭夢準 의 國民統合21 에 參與하면서 政界에 復歸하였고, 以後 2004年 第17代 國會議員 總選擧에서 열린우리당 公薦으로 정형근 에 맞서 釜山 北區·강서구 甲 選擧區에 出馬했으나 落選하였다.
2005年 6月 30日 부터 2008年 1月 21日 까지 韓國鐵道公社 2代 社長을 歷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