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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상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이익상

韓國의 小說家, 言論人 (1895?1935)

이익상 (李益相, 1895年 5月 12日 ~ 1935年 4月 19日 )은 日帝强占期 의 小說家 兼 言論人이다. 號는 성해(星海)로, 이성해 로도 불렸다.

이익상
作家 情報
出生 1895年 5月 12日 ( 1895-05-12 )
全羅北道 全州
死亡 1935年 4月 12日 ( 1935-04-12 ) (39歲)
職業 作家
言論人
장르 小說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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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北道 全州 에서 태어났다. 本名은 이윤상 (李允相)이다. 寶城高等普通學校 와 日本 니혼 大學 新聞科를 卒業한 엘리트였다. 日本 留學 前에 暫時 扶安公立普通學校에서 敎師로 勤務하면서 詩人 신석정 을 文學의 길로 이끈 逸話가 있다. [1] 李益相은 辛夕汀의 四寸 妹夫가 되기도 한다. 니혼 大學에 다니면서 當時 流行하던 社會主義 思想을 接하고 進步的 文藝運動에 뛰어들었다.

1921年 에 《 學之光 》을 통해 作品을 發表하며 小說家로 登壇했다. 1923年 파스큘라 同人으로 參加했으며, 1925年 에는 朝鮮프롤레타리아藝術家同盟 을 勃起했다. 作品 活動은 1920年代 中盤에 主로 集中된다. 短篇 小說인 〈狂亂〉, 〈흙의 洗禮〉, 〈쫓기어 가는 이들〉 等을 發表했다. 作品 傾向은 社會主義에 對한 志向은 분명하지만 殺人이나 放火 等이 登場하지 않아 典型的인 新傾向派 作品과는 差異가 있다. 따라서 李益相은 理想的인 社會主義를 志向한 知識人 作家로 評價된다.

1920年 에 湖南新聞 社會部長을 지내며 言論人으로서의 活動을 始作했다. 1924年 에는 朝鮮日報 學藝部長, 1928年 에는 東亞日報 學藝部長을 거쳤고, 1930年 부터 5年 동안 朝鮮總督府 機關紙인 每日申報 編輯局長 代理로 在職했다. 1935年 持病인 動脈硬化와 高血壓으로 死亡하였다. 民族問題硏究所의 친일인명사전 收錄者 名單 의 言論/出版 部門, 親日反民族行爲眞相糾明委員會 가 發表한 親日反民族行爲 705人 名單 에 包含되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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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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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親日反民族行爲眞相糾明委員會 (2007年 12月). 〈이익상〉 (PDF) . 《2007年度 調査報告書 II - 親日反民族行爲決定理由서》. 서울. 1842~1854쪽쪽. 發刊登錄番號 11-1560010-0000002-10.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 권영민 (2004年 2月 25日). 《韓國現代文學大辭典》.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749-750쪽쪽. ISBN  8952104617 .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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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택근 (2003年 11月 21日). 《신석정 文學 硏究》. 서울: 국학자료원. 26쪽. ISBN  89541013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