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源榮
(
1981年
3月 13日
~ )은
大韓民國
의 前
蹴球
選手로 過去 포지션은
守備手
였다. 過去 이름은
이정호
였으며, 예전 安養 LG-浦項에서 뛴 同名異人의 選手가 있어서
[1]
2013年 李源榮으로
改名
하였다.
2000年
高等學校 卒業과 同時에 그는 19歲라는 어린나이에
浦項 스틸러스
에 入團하였다. 그後 그는 十字靭帶무릎 負傷으로 競技에 出戰하지 못하고 結局 이듬해
2001年
警察廳蹴球團에 入所하게 된다
2003年
警察 蹴球團
轉役 後 다시
浦項스틸러스
에 復歸하여 主戰으로 活躍 한 뒤
2007年
全北의 최강희監督의 求愛로
全北 현대 모터스
로 移籍하게 된다 그 後
2008年
트레이드로
濟州 유나이티드
로 移籍 濟州에서 印象的인 活躍을 펼친다. 시즌 後 釜山의
황선홍
監督이 팀의 中心 守備手로 落點 그를 迎入하게 된다.
2009年
釜山 아이파크
에 또 한番 移籍하여 主戰 守備手로 크게 活躍 하였다.
2011年
K리그 勝負造作
에 連累되어 리그에서 除名當한 뒤 그는 끝까지 無罪를 主張하며
2011年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
의
알이티파크
로 移籍하였다. 사우디리그 알이티파크球團은 그의 主張을 믿고 그를 迎入 6個月間 그와 함께 하다 結局 FIFA의 全 世界的 指針으로 인해 그와 中道 契約解止를 하였다.그렇게 그는 韓國으로 돌아와 繼續된 裁判을 하고 結局 無罪宣告를 받았다.
2012年
6月 1日
돈은 받았으나 勝負造作에는 加擔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勝負造作 嫌疑에 對해서는 無罪 判決을 받았다.
[2]
2013年
元 所屬팀 釜山으로 復歸하였고, 이름을 이정호에서 李源榮으로 改名하였다. 李源榮으로 새롭게 始作한 그는
2013年
~
2015年
까지 좋은 活躍을 펴치다
2016年
泰國 리그
파타야 유나이티드
로 移籍乙한다. 그 後 그는 팀을 디비전1에서 타이프리미어 리그로 昇格시키는데 一助한다.그의 記錄을 보면 守備手로서 시즌 10골을 넣는 宏壯한 活躍을 펼쳤다. 시즌 後 그는 다시 釜山의 要請으로
2016年
釜山 아이파크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1年間 그는 이렇다 할 큰 活躍을 펼치지 못하고, 시즌 終了 後
2017年
다시 泰國 프리미어리그 파타야 유나이티드로 再入團한다.
2019年
에는 사뭇 社콘으로 移籍하였다.
그 後 2021年 8月 19日 隱退하였고,
이동국
이 運營하고 있는 仁川 松島에서 蹴球敎室 코치陣에 包含되어있다.
그는 11年 永久除名 後 自身의 無罪를 主張하며 끝까지 抛棄하지 않고 繼續해서 運動을 했다. 그렇게 긴 時間 혼자서 몸을 만들고 維持했던 그는 結局 自身이 主張했던 無罪를 宣告 받아 13年 元 所屬팀인 釜山 아이파크로 復歸 할 수 있었다.
1年 6個月間 팀 없이 혼자서 컨디션을 維持 하기 어려웠을 텐데 그는 復歸 後 全盛期의 技倆 못지 않은 活躍으로 13年度 리그와 컵 大會를 消化하였다.동료들과 後輩들의 이야기를 따르면 그는 팀 內에서 個人管理및 프로精神이 宏壯히 뛰어난 選手로 坪이 나있었다.그렇게 그는 그것을 뒷받침 하듯 팀의 上位 스플릿 進出의 寄與와 또 本人의 最高의 해를 보냈다 해도 過言이 아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