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억기는 1561年
定宗
의 10째 아들
덕천군
의 後孫인 心柱群(沁州君) 이연손(李連孫)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렸을 때부터 武藝가 뛰어났으며 17歲 때 司僕寺內乘(司僕寺內乘)李 되고 以後 武科에 及第한 後 경흥부사(慶興府使), 溫性府使 等 國防相의 要職을 歷任하여 北方의
女眞族
을 擊退하는 데 큰 功을 세워 武人으로서의 能力을 인정받게 된다.
1592年
壬辰倭亂
때는 전라우도 水軍節度使가 되어 全羅左道 水軍節度使
李舜臣
, 慶尙右道 水軍節度使
元均
과 연합艦隊를 構成한 뒤 日本 艦隊와의 여러 海戰에서 크게 勝利하였다.
1597年
丁酉再亂
때 朝鮮 政府의 無理한 攻擊 命令을 받
最好
와
金完
等과 함께 元均 麾下의 艦隊를 이끌고 日本軍을 攻擊하다가
漆川梁 海戰
에서 敗하여 元均, 最好 等과 함께 戰死하였다.
死後에
宣武功臣
2等이 되어
增
資憲大夫
兵曹
板書
에 追贈되고 완興群(完興君)으로 追封되었다. 義民(毅愍)이라는
시호
가 내려져 醫민공(毅愍公)李 되었다. 1600年 麗水의 충민사(忠愍祠)에
李舜臣
과 함께 祭享되었다. 以後 2000年에 進水된
大韓民國 海軍
의
場보고級 潛水艦
SS 071에 그의 이름이 附與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