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離於島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離於島

南海의 暗礁

離於島 (離於島), 이어初 (離於礁), 소코트라 暗礁 ( 英語 : Socotra Rock(Reef) ) 或은 쑤옌자오 (小暗礁, 中國語 簡體字 : ?岩礁 , 正體字 : 蘇岩礁 )는 等數心線 50 m를 基準으로 길이는 南北으로 1800 m, 東西로 1400 m, 面積 約 2?km 2 暗礁 로, 東中國海 北쪽에 位置하고 있다. 大韓民國의 馬羅島 에서 南西쪽으로 約 149km 떨어진 地點에 位置한다.

離於島
다른이름: 파랑도, 이어初, 소코트라 暗礁,
쑤옌자오(中華人民共和國 主張)
지리
位置 東中國海 의 北쪽 地域
座標 北緯 32° 07′ 22.63″ 東京 125° 10′ 56.81″ ? / ? 北緯 32.1229528° 東京 125.1824472° ? / 32.1229528; 125.1824472

最高點 海底?4.6 m
實效 支配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領有權 主張
중화인민공화국의 기 中華人民共和國
海底山과 이어初

이 暗礁는 가장 윗部分이 平均 海水面 에서 4.6 m 아래의 바닷 속에 있어서 높이 10 m 以上의 甚한 波濤 가 치지 않는 以上 여간해서는 그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1] [2] 暗礁의 頂上部를 基準으로 東쪽과 南쪽은 急傾斜를 이루고, 西쪽과 北쪽은 緩慢한 傾斜를 이룬다.

이어도 一帶는 約 1萬1000年 前인 氷河期 (glacial age)에는 濟州道 와 連結된 陸地였는데, 現在의 間氷期 (interglacial age)가 되면서 바닷물의 높이가 上昇해 海底 大陸棚 이 되었다. [3]

現在 이 地域은 大韓民國 中華人民共和國 사이에 排他的 經濟 水域의 設定을 둘러싼 葛藤 이 있다.

名稱 編輯

離於島 는 韓國語圈에서 主로 쓰이며, 쑤옌자오 는 最近 中國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1] 英語圈에서는 英國 商船 소코트라(Socotra)號가 1900年에 發見하였다는 것에서 着眼해 船舶의 이름을 따서 소코트라 暗礁 ( 英語 : Socotra Rock(Reef) )라 한다.

位置 編輯

北緯 32° 07′ 22.63″ 東京 125° 10′ 56.81″ ? / ? 北緯 32.1229528° 東京 125.1824472° ? / 32.1229528; 125.1824472 에 位置해 있으며,

說話 및 歷史 編輯

近·현대 以前 記錄 編輯

韓國 編輯

濟州道 사람들은 이 섬을 理想鄕 으로 생각하는 傳說이 있었다. 이 섬은 元來 口傳되는 傳說 에 따르면 바다 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漁夫 들이 가는 섬, 漁夫들이 죽으면 가는 幻想의 섬으로 알려져 왔다. 口傳되는 舌禍 마다 細部事項은 다르지만, 크게 各 說話마다 大略 一致하는 것을 要約하면, "漁夫가 배를 타고 暴雨가 쏟아지는 바다에서 方向을 잃고 처음 보는 작은 섬에 到着했는데, (大略 只今으로 치자면) 初等學校 運動場만하고 자갈과 바위 밖에 없는 섬이 있더라. 그런데 섬 한가운데에 돌을 쌓아 올려 만든 祠堂 같은 게 보여서 가보니, 한칸짜리 祠堂 안에는 밥床이 있고 그 위에 김이 피어오르는 쌀밥 한 그릇이 놓여 있더라. 周圍를 아무리 살펴봐도 사람의 痕跡은 보이지 않고 사람이 숨을 만한 場所도 없는데 막 지어 올린 듯한 쌀밥이 놓여 있으니 섬뜩해져서, 비바람을 무릅쓰고 섬을 떠나 버렸다더라"는 式의 內容이다. [10]

說話에 따라 祠堂 代身 草家집, 쌀밥 代身 보리밥이라 하는 여러 變奏가 나타나지만,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 작은 섬이 나타난다"는 것은 비슷한 說話들의 共通된 內容이다. 1984年 제주대학교 側에서 이 海域을 探査한 뒤 이 暗礁를 파랑도라고 명명하면서, 傳說上의 離於島와 결부시키는 契機가 되었다. 다만, 說話 속의 離於島와 이 섬의 相關關係는 客觀的으로 밝혀진 것이 아니다.

또, 17世紀 後半에 쓰여진 하멜 漂流記 에도 이어도로 推定할 蓋然性이 있는 暗礁가 言及되어 있다는 主張이 있다. [11]

"8月 1日 새벽에 우리는 조그마한 섬 近處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섬 뒤便에 을 내릴 만한 場所를 찾으려고 最善을 다했다. 結局 危險을 무릅쓰고 우리는 닻을 내리는 데 成功했다.

그 섬 바로 뒤便에 큰 暗礁 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닻을 내린 狀態로 있어야만 했으며 바다는 더욱더 거세어졌다."

中國 編輯

中國의 古代 地理書이자 各種 神話 · 傳說 들을 記錄한 山海經 (山海經, B.C. 475年 ~ B.C. 221年 警)에는 다음과 같은 句節이 있다. [12]

『 東海之外、………、大荒之中、有山名曰?天蘇山 』

"東海( 東中國海 ) 밖 胎黃 가운데 山이 있으니 이름하여 義天所産(蘇山, 쑤옌 )이라 한다."

로서, 쑤옌이라는 섬이 있다는 記錄이 있지만 이것이 數中 暗礁人 只今의 이어도를 가리킨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分析된다. [13] [14]

近·現代 記錄 編輯

1900年 英國 商船 소코트라(Socotra)號에 依해 이어도가 犯 國際的( 韓半島 周邊國 外), 公式的으로 發見되었다. [1] 以後 1910年 英國 海軍 測量船 워터位置壕(Waterwitch)에 依해 그 깊이가 5.4m 정도인 暗礁로 測定되었다. [15] 이와는 別個로, 英國 海軍 中將이었던 Archibald Day는 그의 著書 <1795~1919年間의 英國 海軍 本部 水路 측량국(記錄), ( 英語 : The Admiralty Hydrographic Service, 1795~1919 )>에서 該當 測量 調査가 1901年에 行해졌다 主張하기도 하였다. [16]

1938年, 日本 帝國에 依해 海底진선 中繼施設과 燈臺를 設置할 目的으로 直徑 15미터, 水面 위로 35미터에 達하는 콘크리트 人工 構造物을 設置할 計劃이었으나 太平洋 戰爭 의 勃發로 霧散되고 말았다. [15]

1944年 12月 25日 午後 7時 警, 美 海軍 은 美 海軍의 戰艦( 潛水艦 ) Icefish 號를 水面위로 떠오르게 한 뒤, 黃海를 向하여 西쪽으로 進行하다 이윽고 北進하며(각각 馬羅島 -離於島와, 濟州道 - 黑山島 에서 最終的으로 상하이 로 이어지는 經路를 따라가며) [17] , 巡察하던 中 소코트라 暗礁(Socotra rock)를 美 海軍 Icefish 好意 2次世界大戰 2番째 巡察 報告書《USS Icefish, 2nd War Patrol Report-2nd patrol》에 記錄하였다. [18] 1949年 中華人民共和國이 建國되었으나 國共內戰 이 아직 進行中에 있었으므로 저우산度( 中國語 簡體字 : 舟山? ) 近處의 東中國海 一帶는 中華民國 海洋 巡視船 管轄 下에 있었다. 當時 巡視船은 이어도의 正確한 位置를 알아내지는 못하였고, 以後 1950年代에 中華人民共和國 人民解放軍 所屬 東海艦隊 이어도에 對한 調査를 施行하였다.

大韓民國 政府 樹立 以後, 1951年 國土糾明事業을 벌이던 韓國山岳會 大韓民國 海軍 이 共同으로 離於島 探査에 나서 높은 波濤와 싸우다 바다 속의 검은 바위를 눈으로만 確認하고 ‘大韓民國 領土 離於島’라고 새긴 銅版 表紙 를 水面 아래 暗礁에 가라앉히고 돌아왔다. [15] 1952年 李承晩 政府 는 《國務院 告示 第 14號》를 통해, 韓國 隣接海洋에 對한 韓國의 主權 內容을 담고 있는 平和線 을 公式的으로 宣言하여 이어도를 包含한 韓半島 周邊 海域을 領海 와 韓國 管轄 平和線(平和線이란, 現 國際 海洋法 上 排他的 經濟 水域 槪念과 類似하며, 當時 該當 槪念을 慣習的으로 따르는 傾向이 있었으나, 現 排他的 經濟 水域 槪念과의 細部的 差異와 當時 該當 槪念이 法的으로 明文化 돼 있진 않았으므로, 便宜上 直接的으로 排他的 經濟 水域이라 부르는 境遇는 相對的으로 적다.) [19] 內部 水域으로 包含, 明文化시켰다.

1963年 5月 1日 13時 55分頃, 中華人民共和國이 自體 製作한 最初의 遠洋貨物船 "躍進"(Yuejin)號(15,930톤)가, 칭다오 를 거쳐 日本 나고야 로 가기위해 處女航行 中 海水面 및 어떤 物體에 부딪혀 沈沒하였으나, 乘船했던 船員 59名은 附近에서 操業中이던 日本 漁船에 依해 無事히 救助되었다.(5월 2日 19時30分頃 歸還) 事件 初期엔 魚雷 의 攻擊을 받았다고 主張한 船員들의 發言에 依해 國際 紛爭으로 發展할 뻔했으나, 事件이 解明되는 過程에서, 當時 배는 이어도를 向해 가다 부딪친 것으로 밝혀졌고, 魚雷攻擊說은 船員들의 方向 誤判으로 因한 錯覺으로 看做되어 事件이 一段落되었다. [20] 事件이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을때, 韓國과 周邊國들은 큰 反應을 內보이진 않았다. 1963年 5月 1日 - 6月 3日, 상하이海上(水路)管艦隊가 難破船 을 離於島로부터 南西쪽으로 2.8?km 距離만큼 떨어진 곳에서 發見하였다.

1970年, 大韓民國 政府가 이어도 海域을 第4鑛區로 指定한 '海底鑛物資源開發法'을 制定 및 公布하였다. 이에 對해 中華人民共和國은 별다른 公式的 反應을 내놓지 않았다. [21]

그러다가 1984年 韓國海洋少年團聯盟 離於島 探査隊의 水中探査 等을 包含한 調査에 依해 그 正確한 位置가 再確認되었고, 以後 同年 제주대학교 - KBS 의 파랑도 學術探査팀의 調査에 依해 그 正確한 位置가 다시 確認되어 '파랑도'라고 命名되기도 하였다. 1986年 大韓民國 水路局 祖師禪에 依해 暗礁의 水深이 4.6미터로 測量되었다. [15]

1987年, 大韓民國 海運港灣廳 이 離於島 最初의 構造物인 離於島 燈浮標를 띄우고 國際的으로 公表하였다. [15] 1995年에는 大韓民國 海洋水産部 가 海洋硏究·氣象觀測·漁業活動 等을 위한 離於島 科學基地 設置를 위해 海底地形 把握과 潮流觀測 等 現場調査를 實施하기 始作하였고, 基地는 2001年에 着工하여 2003年 6月頃 完工하였다. [1]

2001年, 한ㆍ中 漁業協定에서 이어도 流域이 大韓民國과 中華人民共和國 漁船의 共同 操業地臺로 設定되어 論難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으나, 單純 漁業 限定으로 맺은 協定이므로, 한-中間 根本的인 海岸 警戒 劃定에 影響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1] 以後 2006年, 한ㆍ中 兩國은, 이어도는 水中 暗礁 이 아닌 만큼 領土紛爭의 對象이 아니라는 데 基本的인 合意를 하였다. 本來 國際 海洋法 上 이어도는 元來 暗礁로 分類됐고, 領土의 地位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이에 對해 領有權을 主張하는 것은 以前부터 不可能하였다. 또한 EEZ 海岸 警戒 劃定과 領土紛爭은 海洋法 上 다른 次元의 問題이므로, 이것 또한 한-中間 根本的인 海岸 警戒 劃定에 影響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1]

그러다가 2013年 11月 23日 中華人民共和國에서 이어도를 包含하는 防空識別區域 을 宣布하였고, 이에 12月 8日 大韓民國 側에서도 防空識別區域을 離於島까지 擴張 宣布하여 葛藤이 發生하기도 하였다.

離於島 綜合海洋科學基地 編輯

이어도 海洋科學基地는 大韓民國의 前哨 科學基地로 海洋硏究·氣象觀測·漁業活動 等의 目的으로 海洋水産部에서 離於島 정봉에서 南쪽 約 700 m 떨어진 位置(東京 125度 10分 56.0秒, 北緯 32度 07分 22.0秒) 水深 40 m 地點의 水中暗礁 위에 設置한 綜合海洋科學基地이다. 1995年부터 數年間 海底地形 把握과 潮流觀測 等 現場調査를 實施 後 212億 원의 事業費를 들여 2000年 5月에 着工, 2003年 6月 完工하였다.

規模 編輯

海底 地盤에 박은 60m의 基礎를 除外하고도 水中 40m, 受賞 36m, 總重量 3,400t의 構造物이다, 400坪 規模의 2層 Jacket型 構造物엔 觀測室, 實驗室, 會議室이 있고 機智의 최上部에 가로 21m, 세로 26m에 이르는 헬기 이·着陸場 外에, 燈臺施設, 船舶 繫留施設, 通信 및 觀測施設 等과 8人이 15日間 臨時 居住할 수 있는 施設을 갖추고 있다.

運營 編輯

無人으로 自動 運營되는 이어도 海洋科學基地 는 初期에는 韓國海洋硏究員이 運營하다가, 2007年부터 國家機關인 國立海洋調査員 으로 離於島 基地의 運營·管理 權限이 移管됐다.

機能 編輯

海洋, 氣象, 環境 觀測 體系를 갖추고 海洋 및 氣象, 波高, 水溫 等 海上 狀態와 漁場 情報, 地球 環境 및 海上 交通 安全, 沿岸 災害 防止와 氣候 變化 豫測에 必要한 資料를 實時間으로 蒐集 無窮花 衛星을 利用 觀測 情報를 提供하며, 國立海洋調査員 에서 데이터 檢證을 거쳐 氣象廳을 비롯하여 關聯 機關에 實時間으로 資料를 提供한다.

排他的 經濟 水域의 設定을 둘러싼 葛藤 編輯

 
國際法 UNCLOS 에 따른 바다 의 區分. 黃海 는 幅이 좁아 排他的 經濟 水域 을 그림처럼 200 海里로 設定할 수 없다. 이런 境遇 中間線 原則이나 歷史的 背景, 餘他의 基準을 根據로 겹치는 곳을 適當히 나눠 EEZ를 定해야 하는데, 大韓民國 中華人民共和國 1996年 協商 始作 以後 現在까지 EEZ 劃定 問題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다. 이어도가 位置한 濟州道 南쪽 바다는 協商의 主要 爭點 가운데 하나이다.

大韓民國 에서는 이곳을 이어初(離於礁)보다는 '이어도'(離於島)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境遇가 많지만, 그 實體가 水中 暗礁 이지 이 아니다. 따라서, 法的으로 領土 의 地位를 갖지 못하므로 이어도에 對해 領有權을 主張하거나 이어도를 起點으로 한 排他的 經濟 水域은 設定할 수 없다. [22] [23] 離於島나 파랑도라는 用語에 있는 道(島: 섬)는 但只 象徵的 意味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22]

大韓民國 政府는 이어도 海洋科學基地를 建設하여 運用 中인데, 海洋科學基地는 섬이 아니라 人工 構造物이므로 이를 통해 排他的 經濟 水域이 擴張되는 것은 아니다. [22] 大韓民國 政府 는 이어도가 '大韓民國의 排他的 經濟 水域 (EEZ) 안에 있는 水中 暗礁'라는 立場이다. [24] [25]

大韓民國 主張 編輯

大韓民國은 排他的 經濟 水域 (EEZ)은 領海 로부터 一般的으로 200海里 地點이나, 두 나라의 水域이 겹칠 境遇 그 中間地點을 基準으로 삼는 國際 海洋法 裁判所 中間禪 原則 上 離於島 附近 海域은 大韓民國의 管轄 地域이라고 主張하고 있다. [26]

地理的으로 大韓民國 馬羅島 中華人民共和國 퉁타오 는 396 km 떨어져 있으며 그 中間地點은 198 km 地點이므로, 馬羅島에서 149 km 떨어져 있는 離於島 周邊 海域은 當然히 大韓民國의 管轄이다.

또, 實體的으로도 1987年 부터 大韓民國 政府가 燈浮標를 띄우고 以後 海洋科學基地를 建設했을 뿐만 아니라 그 前부터 이미 大韓民國側이 이 地域을 管理해 오고 있었다.

歷史的으로도 大韓民國 濟州道 의 說話나 民譚 等에 이어도가 登場한다는 事實에서 매우 오래 前부터 이곳을 韓國側에서 管轄地로 認識해 왔다는 點을 根據로 들 수 있다.

1982年 에 開催된 第3次 國際 海洋法 會議 에서 採擇되고 1994年 부터 發效된 海洋法에 關한 國際 聯合 協約 의 排他的經濟水域(EEZ) 槪念에 따르면, 隣接性의 基盤 위에 있는 國家 間 海岸 警戒 劃定 時에는 中間禪 原則 과 같은 衡平性 原則을 基本으로 하며, 그 밖의 相互 間 自然的 要素를 考慮하되, 人口 , 經濟力 等의 社會的 要素는 排除시키는 傾向을 一般化시켰다. [27] [28]

여기에 無人島나 暗礁는 가장 가까운 有人島에 歸屬되도록 하는 國際 海洋法에 따르더라도 이어도의 管轄權은 自明하게 大韓民國에 있다는 主張도 있다.

中華人民共和國 主張 編輯

中華人民共和國 은 排他的 經濟 水域(EEZ)의 境界 劃定은 中間線이 아닌 大陸棚 을 基準으로 定해야 한다고 主張하고 있으며, [29] [30] 黃河 長杠 (양쯔 江)에서 흘러내려온 堆積物이 쌓이면서 形成된 海底 地形 을 따라 EEZ 境界線을 그으면 東中國海 의 3分의 2街 中國 管轄 EEZ로 編入돼 離於島 附近 海域이 中華人民共和國의 管轄 地域이 된다고 主張하고 있다.

中華人民共和國 의 海岸線은 大韓民國보다 더 길고 中國은 韓國보다 人口가 훨씬 많으므로, 兩側의 排他的 經濟 水域의 境界를 中間禪에 따라 機械的으로 나눌 수 없다.

또, 共同 水域에서 中間線 原則을 適用하기 위해서는 兩國의 合意가 必要한데, 한中間에는 境界 劃定 基準이 合意되지 않았으니 中國側도 이 地域의 管轄을 主張할 수 있다.

中國 過去 地圖 中에는 이어도 隣近 海域이 中國側 海域으로 表記된 地圖도 있으므로, 中國側 亦是 周邊 海域의 管轄地 認識이 存在했었다는 點을 根據로 들 수 있다.

그러나, 原論的으로 國際法上 隣接 國家 사이의 海洋 境界에 있어서 가장 重要한 基準은 中間禪 原則 이며, 나머지는 附加的인 事項이다. [28] [31]

中華民國 政府는 센카쿠 列島 紛爭 과 달리 이곳에 關해서는 어떤 立場도 내놓고 있지 않다.

같이 보기 編輯

各州 編輯

  1. 離於島 - 두산世界대백과사전
  2. 離於島 紹介 Archived 2021年 5月 14日 - 웨이백 머신 , 國立海洋調査員
  3. 傳說의 섬 '離於島토피아'가 海洋領土 前哨基地로 國民日報, 2011.12.8.
  4. 離於島 , 두산百科.
  5. 타이富者誤 中國語 簡體字 : 泰簿礁 , 或은 他이자오 中國語 簡體字 : 泰礁 , 또는 비에밍퉁타오 中國語 簡體字 : ?名童? 라고도 부른다.
  6. 中國의 大陸 領海部分 基準線 第 11番 起點
  7. 北緯 31° 25′ 03″ 東京 122° 14′ 06″ ? / ? 北緯 31.41750° 東京 122.23500° ? / 31.41750; 122.23500
  8. “韓中海洋科學共同硏究센터” . 2015年 9月 23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3年 2月 24日에 確認함 .  
  9. 中國 "濟州-離於島 占領이 第一 쉬웠어요" 한다면
  10. “傳해오는 이야기” . 離於島 綜合海洋科學基地. 2011年 8月 18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1年 5月 13日에 確認함 .  
  11. 황윤정 記者(고충석 前 제주대 總長, 現 離於島硏究會 理事長 건 拔萃) (2012年 3月 13日). " 하멜漂流記에 이어도 推定 暗礁 記錄 있다 " . 聯合뉴스.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12. 山海經 - 두산世界대백과사전
  13. 주강현, 제주대학교 碩座敎授 (2012年 4月 14日). “이어도를 내버려둬라” . Le Monde Diplomatique 韓國판, 2012年 43號.  
  14. 주강현, 제주대학교 碩座敎授(拔萃) (2012年 6月 6日). “이어도에 對해 얼마나 알고 있으신가요? -이어도는 어떻게 이어도가 되었는가, 이어도의 實體-” . 濟州靑少年인터넷新聞. 2016年 3月 4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3年 2月 25日에 確認함 .  
  15. 綜合海洋科學基地-離於島 紹介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16. 英國 海軍 中將 Archibald Day (1967年). 《The Admiralty Hydrographic Service, 1795 ~ 1919 <1795~1919年間의 英國 海軍 本部 水路 측량국(記錄)>》. HMSO. 200쪽.  
  17. 該當 文壇에서의 Mara to는 馬羅島, Socotra rock는 離於島, Saishu to는 濟州島를, 마지막으로 Kokuzan은 黑山島를 意味한다.
  18. 英語 : USS Icefish, 2nd War Patrol Report-2nd patrol
  19. <國務院告示 第14號 隣接 海洋에 對한 主權에 關한 宣言>, 韓國史 데이터 베이스
  20.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京鄕新聞, 1963年 5月 2日子, 3面 上段記事(拔萃)
  21. 國家記錄院, 1970年 1月 1日 海底鑛物資源開發法 制定·恐怖
  22. 남영우·최재헌·손승호 (2009年 8月 10日). 《世界化 時代의 都市와 國土(第5板)》. 법문사(法文社). 59~61쪽. ISBN  978-89-18-25065-6 .  
  23. 政府, 中臺詞에 '이어도 管轄權 主張' 抗議 聯合뉴스, 2012.3.12.
  24. 大韓民國 國立海洋調査員. “이어도 紹介” . 2012年 4月 23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2年 6月 6日에 確認함 .  
  25. 韓中 離於島 管轄權 紛爭 불붙나 聯合뉴스, 2009.5.13.
  26. 제성호(중앙대 法大 敎授) (2006年 9月 20日). “<"中國의 離於島 是非는 國際法的으로 不當하다.">” . 월간조선. 2013年 7月 26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27. 金錫均 (2009). 《海事法硏究 第21卷 第1號(海士法硏究 第 21卷 第 1號)中 海洋國際判例를 통해 본 海洋境界劃定의 原則에 關한 小鼓》. 한국해司法學會. 225-250쪽.  
  28. “海洋國際判例를 통해 본 海洋境界劃定의 原則에 關한 小鼓” . 2013年 7月 22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3年 7月 22日에 確認함 .  
  29. 中國은 이러한 主張과 달리, 2004年 에 베트남과의 통킹灣 EEZ 境界를 中間禪 原則 에 따라 定한 先例가 있다. 통킹 萬 大陸棚은 地質 構造上 3分의 2街 베트남 쪽에, 3分의 1이 中國 쪽에 屬해 있다.
    出處?: 中-베 통킹灣 領海 劃定 漁業協定 慶南新聞, 2004.7.1.
  30. 김찬규 경희대 名譽敎授 (國際法) (2005年 4月 7日). “<(내 생각은…) 中國, 海洋政策 一貫性 維持해야>” . 中央日報, CNN Joinmsn.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31. 2012年 4月 14日 國際 海洋法 裁判所 방글라데시 미얀마 벵골灣 海域의 境界를 中間禪 原則 에 따라 決定했다.
    出處?: 국제해양법재판소 "海洋境界 基準은 中間線" 첫 判決'…離於島 管轄權' 韓國에 유리해져 東亞日報, 2012.4.19.

外部 링크 編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