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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王山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龍王山 (龍王山)은 서울特別市 陽川區 木洞 에 있는 으로 높이는 海拔 78m로 옛날에는 엄지山(嚴知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 [2]

龍王山
龍王山
龍王山近隣公園 運動場
最高點
高度 78?m (256?ft)
지리
용왕산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용왕산
龍王山
龍王山의 位置
位置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서울特別市 陽川區 木洞

位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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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78m와 68m의 봉우리 두 個가 붙어서 形成되어 있는데 1971年 木洞近隣公園으로 造成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이 두 봉우리가 마치 펴놓은 엄지손가락을 옆에서 보는 것처럼 되어 있는데 78m 높이 地點은 손톱 部分으로 보인다. ‘으뜸’이라는 뜻도 있지만 ‘첫머리’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서울 地下鐵 9號線 신목동역 에서 찾아 볼 수 있다.

傳해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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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엄지山?歷山?王令山?王財産이라고 했다는 傳說 이 내려오는 山으로 이 山과 關聯해 傳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느 때인가 이 山 아래에 살던 朴氏라는 老人이 죽어가며 子息들에게 遺言하기를, “내가 죽었다고 남에게 알리지도 말고, 殮을 할 때 몸을 띠로 묶지도 마라.” 하였다. 하지만 老人의 子息들은 이것을 無視해 버렸다. 그 後로 마을에서는 老人이 죽어 가며 異常한 遺言을 남겼다는 所聞이 퍼졌고, 마침내 官員들이 무덤을 파헤치기에 이르렀다.

무덤을 파보니 무덤 속의 官은 텅 비어 있었다. 周邊을 살펴보니, 용이 띠에 묶인 채 꿈틀대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놀란 官員들은 龍을 잡아 죽였다. 그 後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퍼져 나갔는데, 죽은 朴氏가 昇天해서 龍王이 되려고 했지만 子息들이 그 뜻을 알지 못해 結局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사람들이 엄지産을 龍王山이라 부르기 始作했다고 傳한다. 이 이야기의 또 다른 얘기로는 옛날 龍王山에 朴氏라는 사람이 죽어서 王으로 還生하려고 온갖 選定을 베풀고 죽어 이 山에 묻혔지만, 그만 어렸을 때 乞人을 薄待했던 單 하나의 業으로 인해 自身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슬픈 이야기도 있다.

 
1995年 11月 龍王山 市民公園

龍王山에는 하늘의 天官(天官)과 關聯된 이야기도 있다. 옛날 하늘의 天官이 只今의 仙遊峯 자리에 살고 있던 아가씨에게 그만 홀딱 반하여, 玉皇上帝 의 뜻을 어기고 아가씨와 몰래 婚姻하여 龍王山에 숨어 살았다. 玉皇上帝 는 이 事實을 알고 極度로 노여워하며 이들을 벌하였다. 이로 因해 天官은 龍王山의 이무기로 變하고 그 아가씨는 仙遊峯이 되어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龍王山의 이무기로 變한 天官은 아가씨를 잊지 못해 仙遊峯으로 달려갔으나, 玉皇上帝 가 꼬리를 밟고 있어서 이무기의 兩 발이 닿았다가 발톱 자국만을 낸 채 다시 龍王山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이때 이무기가 흘린 눈물이 바로 安養川 이 되었고, 玉皇上帝 가 밟고 있던 발톱 자국이 깊게 파여서 비만 오면 고랑이 되었다는 事緣이다.

그런데 後날 이 가슴 아픈 事緣을 傳해 듣고 玉皇上帝 의 마음이 動하여, 이곳이 사람이 살 곳은 못 되나 많은 사람이 오가면서 밟아 주고 다듬어 준다면 그들의 罪를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단다. 그래서인지 이 고랑에 양화교에 架設되어 오가는 사람의 行列이 끊임이 없다는데, 仙遊峯 아가씨와 龍王山 이무기의 再會 與否는 알 수 없지만, 물에 잠길 것이라던 이무기 발톱 자리는 結局 安養川 이 흐르는 水路로 바뀌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傳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安養川 의 汎濫과도 관계있는 것으로, 서울特別市歷史編纂委員會에서 1985年 에 發刊한 『한강사』에 따르면, 安養川 個數 工事를 實施하면서 安養川 水路가 變更된 事實을 發見했다고 한다. [1] [3] .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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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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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地名辭典(2009年 서울特別市史編纂委員會 編纂), 韓國地名由來집 中部便(2008年 國土地理情報院 編輯) 參照
  2. 韓國觀光公社 觀光名所案內 參照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3. 大韓民國 구석구석 → 龍王山近隣公園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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