仰釜日晷
(仰釜日晷)
[A]
는
1434年
朝鮮
世宗大王
16年 以後로 製作·使用된
해時計
로, 科學·歷史·藝術的 價値를 인정받아 1985年 8月 9日
大韓民國의 寶物
第845號로 指定되었다.
[B]
[1]
仰釜日晷는
蔣英實
,
利川
,
金銚
等이 初期의 製作에 參與하였으며, 이때 製作된 仰釜日晷는 남아 있지 않아 18世紀에 製作된 것을 寶物로 指定하였다. 寶物로 指定된
携帶用 仰釜日晷
는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작은 크기로
剛健
이 製作한 것이다.
以外에는 自擊漏, 渾天儀, 해時計, 물時計, 天象列次分野之圖와 같은 蔣英實의 發明品이 있다.
《
元士
(元史)》〈천문지(天文志)〉「仰議(仰儀)」를 參考하였다고 한다.
[2]
오목한 火爐 크기의 둥근 가마솥 時計板 模樣 害를 우러르고 있다고 해서 仰釜日晷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목한
地球의
처럼 생겨 時刻選, 季節線을 나타내는 데 效果的이다.
靑銅
을 材料로 하여 鑄物을 부어 만들고 글字와 線은 黑色漆 바탕에
銀象嵌
(銀象嵌)을 하여 뚜렷이 보이게 하였다. 4個의 발은 水平을 맞추기 위하여 水平基準裝置를 十字(十字)의 形態로 하였다.
市販은
同志
(冬至) 쪽에서 始作하여 하지(夏至)에 이르기까지
24節氣
를 13選의 爲先(緯線)으로 긋고 이에 垂直으로 視角選(時刻線)을 그었다. 緯度에 따라 그림자의 길이를 달리하기 爲해, 靈寢(影針), 卽 그림자바늘은 當時
漢陽
에서 使用하던 北極出地(北極出地) 37度 20分에 맞춰서 비스듬히 꽂아서 使用하였다.
當時의 時間은
12干支
로 表現을 하였으며, 時間의 單位가 12이기 때문에 2時間이 한 묶음의 時間이었다. 글을 모르는 百姓들을 위해,
12支神
을 그림으로 그려
1434年
11月 2日
(
陰曆 10月 2日
) 혜정교(惠政橋)와
宗廟
앞에 設置를 하였으나 壬辰倭亂 때 사라져 世宗時代 仰釜日晷는 남아있지 않다.
[3]
그 後 朝鮮時代 末까지 다양한 形態로 製作되어 宮闕과 官公署, 士大夫 家屋에 이르기까지 널리 普及되었다.
서울市
鍾路區
훈정동에 있는 仰釜日晷
朝鮮時代의 時間
編輯
朝鮮 時代에는 하루를 12時 또는 24時로 나누었으며, 實際의 太陽을 基準으로 하였다. 現在
協定 世界時
를 基準으로 東京 135度에 따른
韓國 標準時
를 適用하는 大韓民國의 標準時間과는 約 30分 差異가 난다. 卽, 仰釜日晷에서 그림자가 오시(午時) 正中央을 가리키고 있다면 實際 時刻은 12時가 아닌 約 12時 30分이 되며 이는 地方과 季節에 따라 若干씩 다르다.
[4]
時間 재는 方法
編輯
가로선과 세로線을 參照하여 視角과 節氣를 測定한다.
[5]
- 時刻選?: 仰釜日晷의 세로線이다.
- 節氣選?: 仰釜日晷의 가로선이다.
같이 보기
編輯
外部 링크
編輯
- 內容
- ↑
部(釜)는 솥, 仰俯(仰釜)는 하늘을 우러르는 솥을 말하며, 舊(晷)는 그림자라는 뜻으로 一口(日晷)는 곧 해時計를 말한다.
- ↑
指定 當時의 名稱은 '仰釜日晷(仰釜日晷)'였다.
[1]
- 出處
參考 資料
編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