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年
慶尙南道
蔚山郡
삼동면
둔기리
의
靈山 신氏
集姓村에서 아버지 신진수와 어머니 김필순의 5男 5女 中 長男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신진수는 財力이 있었으나 그의 親戚에 依하면 申 會長의 先親은 絶對 돈 자랑 하지 않았다고 傳해진다.
[5]
初等學校를 卒業하고 家庭形便上 上級學校 進學을 抛棄하고 農事일을 거들다가 面長을 지낸 伯父의 도움으로 2年制 農業補習學校를 卒業한 뒤 1年間 白頭山 밑에 있는 ‘明川 國立 種羊場’의 硏修生으로 지냈다.
日本에서 企業 活動
編輯
1941年 日本으로 건너가 1944年 선반(切削工具)用 기름을 製造하는 工場을 세우면서 事業을 始作했으나 2次 大戰 때 工場이 全燒하였다. 1946年 와세다 高空(高工) 夜間部 化學科를 卒業한 뒤 暫時 歸國했다가 다시
日本
으로 건너갔다. 韓國에서 말을 돌보는 일을 하다가 돈을 벌 作定으로 日本에 가기로 決心하고
釜關連絡船
의 密航船으로 몸을 싣는다.
[6]
비누와 化粧品을 만들어 再起에 成功한 뒤 껌 事業에 뛰어들었고 1948年 ㈜롯데를 設立했다.
[6]
1950年 在日韓國人이 많은 신주쿠區 신오쿠보에 껌工場人 롯데 신주쿠工場을 設立하였다. 1959年 롯데商社, 1961年 롯데不動産, 1967年 롯데애드, 1968年 롯데物産, 株式會社 훼밀리 等 商業, 流通業으로 日本의 10代 財閥이 되었다. 1972年
사이타마 縣
우라와 時
에 롯데의 製菓工場團地인 우라와工場을 設立하고, 1973年 니시신주쿠에 롯데本社빌딩을 建立하였다.
1988年 日本의 不動産버블로
포브스
가 選定한 億萬長者 順位에 오르기도 하였다. 아버지 신진수는 1968年頃 故鄕을 떠나 1973年 死亡할 때까지 서울에서 生活한 것으로 알려졌다.
[5]
1968年~1969年 사이 蔚山國家産業團地에 工業用水를 供給하기 위해 대암댐(69年 12月 竣工)을 建設하면서 마을이 水沒, 申氏 一家 40餘 家口가 移住하면서 大部分 흩어졌고 이때 先進首都 서울로 居處를 옮겼다.
[5]
마을이 水沒되자 그의 親ㆍ姻戚과 故鄕 사람들이 全國 各地로 흩어졌다.
[7]
이를 아쉬워한 辛格浩는 1971年부터 `鈍器膾`를 만들어 每年 5月 첫째 週末에 마을잔치를 열고 있다.
[7]
以後 그는 每年 故鄕인 蔚山 蔚州郡 삼동면 둔기리에서 마을 잔치를 열었다.
[8]
日本
에서 繼續 企業 活動을 하며 流通業 外에도 다른 分野로도 事業을 擴張, 1969年
日本 프로 野球
퍼시픽 리그
의 도쿄 오리온스 球團을 保有하고 있던
나가타 마사이치
球團主의 要請에 따라 롯데와의 業務 提携 關係를 締結하며 롯데 오리온스로 改稱했고 1970年 롯데會館을 設立한 뒤, 같은 해에 나가타가 롯데의 球團主에서 辭任했다.
1971年에는 나가타가 前職 總理
기시 노부스케
(나가타의 親舊) 首相과의 關係를 통해
나카무라 나가요시
(기시 前 總理의 祕書官)를 球團主로 就任시켰으나, 나카무라는 그 해 시즌 以後에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
(以後로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를 同時에 購買하다가 한 사람이 두 球團의 所有主가 될 수 없다는 日本 프로 野球의 規定 때문에 롯데의 株主를 롯데의 球團으로 바로 返納하며 롯데의 球團主를 辭任하였고, 1972年부터 本格的으로 롯데 오리온스를 引受해서 現在까지 3代 球團主로 就任하며 在職하였다.
[9]
1991年 11月(1992年)부터 그의 次男
辛東彬
이
지바 롯데 마린스
라는 球團名으로 改稱하였다. 1972年
롯데리아
, 1978年 롯데 리스 等을 세웠다. 또한 電子 쪽으로도 進出하여 1971年
롯데전자
를 세웠고, 1985年 롯데 데이타 센타를, 1987年 롯데 엔지니어링 等을 設立하는 等 事業을 擴張했으며,
日本
의 10代 財閥의 한 사람으로 成長하였다.
韓國 進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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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年부터
大韓民國
으로 事業을 擴張하여 롯데알루미늄에 이어 1967年에
롯데製菓
를 設立하였다. 그 뒤 韓國에서도 다른 分野로도 事業을 擴張하여 1973年 호텔 롯데·롯데 電子·롯데 起工하였다.
1974年 롯데 産業·롯데 上司·롯데 칠성 飮料 等을 設立했고, 1975年
롯데 자이언츠
를 設立, 1978年 롯데삼강(現
롯데푸드
),
롯데建設
,
롯데햄
, 롯데牛乳(現
푸르밀
), 1979年
롯데쇼핑
, 1980年 韓國후지필름, 1982年 롯데캐논(現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대홍기획 等을 設立했으며 1978年에는 롯데크리스탈호텔을 建設하였다.
觀光産業을 國家戰略産業으로 끌어올린 功勞를 인정받아 1995年 觀光産業 分野에서 最初로 金塔産業勳章을 받았고,
國民勳章
무궁화장 等을 受賞하였다. 2006年
포브스지
가 發表한 바에 따르면 신격호 會長 一家의 財産은 約 45億달러로 世界 136位이었다.
2015年 長男인
신동주
日本 롯데홀딩스 副會長과 次男인
辛東彬
롯데그룹 會長 間의 經營權 紛爭이 터졌을 때 신동주 便에 섰으나 日本 롯데홀딩스 理事職에서 물러났고 韓國 系列社 理事職에서도 退任하였다. 두 아들과 함께 經營非理 嫌疑로 2017年 12月 懲役 4年 및 罰金 35億원을 宣告받았으나 健康上의 理由로 法廷 拘束은 免했다.
2020年 1月 19日
서울峨山病院
에 入院 中 家族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別世했다. 享年 97歲
[10]
論難과 疑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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租稅 逋脫·橫領·背任 疑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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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年 10月 19日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辛格浩를 特定犯罪加重處罰등에關한법률위반(조세), 特定經濟犯罪加重處罰등에關한법률위반(배임), 特定經濟犯罪加重處罰등에關한법률위반(횡령) 嫌疑로 不拘束 起訴했다.
[11]
2006年 7月 辛格浩는 借名保有한 日本 롯데홀딩스 持分 3%를 홍콩, 美國 페이퍼컴퍼니와의 賣買去來로 假裝해 長女 신영자에게 贈與하면서 贈與稅 560億원을 逋脫(特定犯罪加重處罰등에關한법률위반(조세))하였고, 借名保有한 日本 롯데홀딩스 持分 1.6%를 홍콩, 싱가포르 페이퍼컴퍼니와의 賣買去來로 假裝해 重混積 事實婚 配偶者 서미경에게 贈與하면서 贈與稅 298億원을 逋脫(特定犯罪加重處罰등에關한법률위반(조세))하였다. 또한 신유미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신유미에게 같은 方法으로 롯데홀딩스 持分 1.6%를 贈與하여 贈與稅 298億원을 逋脫(特定犯罪加重處罰등에關한법률위반(조세))하였다. 롯데그룹 關係者, 會計士 等의 調査時 陳述, 롯데 內部報告書 等에 따르면 신영자, 서미경, 신유미의 逋脫 稅額은 約 2,857億원으로 推定되나, 롯데가 資料 提出에 協助하지 않아 檢察은 서미경 等이 辯護人을 통해 認定하고 資料를 提出한 最小 金額으로 起訴하였다. 신유미는 日本에 滯留하고 있어 旅券無效化措置와 起訴中止하였으며, 辛格浩가 신유미에게 贈與하여 贈與稅를 逋脫한 部分도 起訴中止하였다.
[11]
2003年 11月~2013年 2月에는 롯데시네마 映畫館 賣店 運營權을 신영자, 서미경, 신유미가 運營하는 會社인 유원실업, 시네마통상, 시네마푸드에 歇값으로 넘겨주어 롯데쇼핑에 778億원의 財産上 損害(特定經濟犯罪加重處罰등에關한법률위반(배임))를 加하였다. 신유미에게 賣店 賃貸로 452億원의 損害를 加한 部分(特定經濟犯罪加重處罰등에關한법률위반(배임))에 對해서는 起訴中止하였다.
[11]
2009年 12月에는 自身이 保有한 非上場株式을 호텔롯데 等 롯데 3個 系列社에 買收하였는데, 經營權 讓渡와 無關한 去來임에도 經營權 프리미엄 30%(94億원)가 割增된 價格으로 買收하도록 해 94億원 損害를 끼쳤다(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辛格浩는 賣渡代金 408億원을 신영자, 서미경, 신유미에게 現金 600億원을 支援하는데 使用하였다.
[11]
虛僞 給與支給 論難
編輯
2005年~2015年 10月에는 實際 勤務한 적이 없는데도 長男 신동주에게 大韓民國 內 롯데 12個 系列社에 對한 給與 名目으로 391億원을 支給(特定經濟犯罪加重處罰등에關한법률위반(횡령))하였다. 신동주는 日本 롯데 副會長으로 大部分 日本에 滯留하였으며, 스스로 韓國 系列社를 위해 일한 적이 없으며 어느 系列社에서 給與를 주는지 알지 못한다고 陳述하였다.
[11]
2005年~2016年 5月에는 實際 勤務한 적이 없는데도 롯데 10個 系列社에 對한 拷問料 및 給與 名目으로 서미경, 신유미에게 117億원을 支給(特定經濟犯罪加重處罰등에關한법률위반(횡령))하였다. 롯데는 신동주, 서미경, 신유미와 契約 없이 移徙나 顧問으로 登載하여 給與를 支給했고, 이들은 會社에 出勤한 적이 없으며 아무런 役割을 遂行하지 않았다. 또한 支給받은 給與를 株式買收 代金, 카드代金 等 生活費, 稅金納付 等 個人的인 用途에 使用하였다.
[11]
持分 虛僞 公示 論難
編輯
2018年 1月 辛格浩는 獨占規制및公正去來에관한법률위반 嫌疑로 罰金 1億원의 略式命令을 받았다. 辛格浩는 大韓民國 內 롯데 11個 系列社의 企業集團 現況·非上場社 公示, 株式所有現況 申告에서
고준샤
(광윤사) 等 16個 롯데 海外 系列社가 所有한 持分을 '同一人 關聯者'가 아닌 '其他株主'로 虛僞로 記載하였다.
[12]
靈山 신氏 集姓村인
蔚山廣域市
蔚州郡
삼동면
둔기리는 1969年 蔚山工團 工業用水를 위한 댐 建設로 一部 地域이 水沒되자 신격호의 친·인척과 故鄕 사람들이 全國 各地로 흩어졌다. 이를 안타까워 한 辛格浩는 1971年부터 ‘鈍器膾’를 만들어 每年 5月 첫째 週末에 마을잔치를 열고 있다. 첫해 數十 名에 不過했던 鈍器會 會員 數도 子孫들이 늘면서 只今은 1100餘 世代가 됐다.
兄弟間 다툼
編輯
롯데家는 유난히 兄弟間 다툼이 甚해 申 總括會長은 '悲運의 빅 브라더'로 불리기도 했다. 1966年 12月 16日,
서울地方檢察廳
의
문상익
部長 檢事는 롯데株式會社 代表理事를 지내고 있던 첫째동생 故 신철호가 롯데 化學公社를 設立하기 위해 兄 辛格浩와 셋째 동생
신춘호
의 圖章을 僞造하고 會社公金 4億 2千餘 萬원을 橫領하는 論難 事態를 들으면서 拘束起訴 하였으며,
[13]
1973年에는 신춘호와 法定 訴訟을, 1996年에는 막내
신준호
와 땅問題로 法定 訴訟을 벌였다.
[14]
아버지 遺骨 盜難 事件
編輯
1999年 3月에
蔚山
에 있던 아버지 신진수의 墓所 遺骨이 竊盜犯에 依해 도난당했다. 3月 4日 午前 8時 35分에 한 男子가
서울
소공동
롯데빌딩 26層에 있는 신격호의 祕書室로 電話를 걸어 會長 父親의 墓所를 確認해보라고 해
롯데그룹
關係者들이
蔚山廣域市
蔚州郡
언양읍
대암리 先山으로 急히 내려가 確認한 結果 아버지의 墓所가 盜掘되고 遺骨이 없어졌다.
[15]
이어 犯人은 같은날 午後 4時 35分과 40分에 祕書室로 다시 電話를 걸어 "墓所를 確認해봤느냐?"고 묻고 "警察과 言論에 알리지 말라."고 脅迫한 뒤 電話를 끊었다.
犯人은 또 3月 5日 午前 11時께 2次例 電話를 걸어 "遺骨을 돌려줄테니 會社 職員 2名이 乘用車 트렁크에 8億원을 넣어 5日 밤 8時까지
釜山
에 내려와 돈을 넘겨줘라."고 要求하였다. 警察은 毁損된 墓地 周邊에서 곡괭이 1個와 棺 뚜껑을 열 때 使用한 것으로 보이는 장도리 2個를 發見했으며 서울警察廳 鑑識班 要員들이 現場에 派遣돼 指紋採取 等 精密鑑識 作業을 벌였다. 警察은 4日과 5日 辛格浩 祕書室에 5次例 脅迫電話를 걸어 "遺骨을 保管하고 있다."며 8億 원을 要求한 4男子를 追跡하였다.
1999年 3月 7日에 犯人 정금용, 임종순 等이 모두 警察에 檢擧되었다. 警察에 붙잡힌 容疑者 가운데 한 사람인 임종순은 "롯데와는 關聯이 없고 怨恨도 없다.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 일을 저질렀다."라고 陳述하였다.
[16]
롯데그룹
關係者들은 그 동안 이 事件이
롯데그룹
이나 그룹 總帥에 對한 怨恨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밝혀질 境遇 그룹 이미지에 深刻한 打擊을 주지 않을까 念慮하기도 했으나 怨恨關係는 아닌 것으로 確認되었고 搜査는 終結되었다.
1999年 3月 9日 實施된 現場 檢證에서 신격호 會長의 조카 故 신동학(신준호
푸르밀
會長 長男)은 遺骨을 毁損하는 場面을 再演하는 것을 보고 憤慨해 犯人들을 暴行하려다 警察의 制止로 實行에 옮기지 못했고 放送社 인터뷰에서 "할 수만 있다면 저 두 사람 죽여버리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17]
蔚山廣域市
蔚州郡
삼동면
대암댐 近處, 그가 살았던 마을과 가장 가까운 곳에 그의 別莊이 있으며, 辛格浩는 每年 한 두次例 이곳에 와서 쉬며 先親 墓所를 參拜하고 있다
[5]
고 한다.
親戚이며 신격호 會長과 8寸인 신정호는 그에 對해 "서울로 간 後에도 이곳에 있는 가까운 親戚들에게 논을 사주는 等 親姻戚들을 많이 보살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또 "新 會長의 先親은 絶對 돈 자랑 하지 않았다."면서 "가난한 親姻戚들에게는 먹을 樣式까지 보내주었다."고 回顧했다.
[5]
1988年 當時 신격호의 財産은 大韓民國에서 1位였으며 世界에서 3-4位였다.
- 아버지: 신진수(辛鎭洙, 1900年~1973年)
- 어머니: 김필순(金弼順)
- 配偶者: 노순화(盧順和, 1922年~1951年)
- 長女:
신영자
(辛英子, 1942年~,
롯데奬學財團
理事長, 前
롯데쇼핑
社長)
- 前 사위: 장오식(張五植, 前 先學알미늄 會長)
- 外孫子: 장재영(張在永, 유니엘 運營者, 否認 류주영)
- 外孫女: 장혜선(張惠善), 前
롯데百貨店
海外名品팀長)
- 外孫女: 장선윤(張善允, 블리스 代表,
롯데호텔
專務, 男便 양성욱 브이엔에스 代表)
- 外孫女: 장정안(張政安, 시네마통상 株主, 前
롯데百貨店
雜貨팀長, 男便 이승환 辯護士)
- 配偶者(事實婚): 시게미쓰 下쓰코(1927年~,
日本語
:
重光 初子
,
日本語
:
竹森 初子
다케모리 下쓰코 (結婚前)
[
*
]
)
- 長男:
신동주
(辛東主, 1954年~, SDJ코퍼레이션 會長)
- 子婦: 조은주(趙銀柱, 1963年~)
- 次男:
辛東彬
(辛東彬, 1955年~,
롯데그룹
會長)
- 子婦: 시게미쓰 마나미 (
日本語
:
重光 ?奈美
,
日本語
:
淡河 ?奈美
오고 마나미(結婚前)
[
*
]
)
- 孫子: 신유열(辛裕烈/辛愉悅), 日本名: 시게미쓰 사토시(
日本語
:
重光 ?
), 1986年~)
- 孫女: 신규미(辛圭美, 1988年~)
- 孫女: 신승은(辛承殷, 1992年~)
- 配偶者(妾):
서미경
(徐美敬, 첩型 서진석 前 유원실업 代表, 유니플렉스 代表)
- 男동생:
신철호
(辛哲浩, 1923年~1999年) - 全
롯데製菓
社長
- 祭需: 송수영
- 조카:
신혜경
- 신철호의 長女,
롯데그룹
專務
- 秩序: 조용원 - 辯護士
- 조카: 신미진
- 秩序: 장태규 - 辯護士
- 조카: 신혜승
- 秩序: 정경언 - 辯護士
- 조카: 신동림
- 姪婦: 정승원 -
수원지방법원
部長 判事
- 조카: 신동훈 - 제이텔 創業者, 사이드웨이 파트너스 代表理事.
- 女同生: 申訴하(1926年~2005年)
- 妹弟: 서병택
- 女同生: 신경애
- 妹弟: 우용조
- 男동생:
신춘호
(辛春浩) -
농심
會長.
- 祭需: 김낙양
- 조카: 신현주 - 농심企劃 副社長
- 秩序: 박재준 - 前 조양상선그룹 副會長
- 조카:
신동원
(辛東原) - 신춘호의 長男.
농심홀딩스
代表理事 社長,
농심
代表理事 副會長
- 姪婦: 민선영(민철호 前 東洋創業投資 社長 딸)
- 조카:
신동윤
- 신춘호의 次男
율촌화학
副會長.
- 姪婦: 金希宣(
김진만
前 國會 副議長 次女)
- 조카:
신동익
- 신춘호의 三南
메가마트
副會長.
- 姪婦: 노재경(노홍희 前 신명電氣 社長 딸)
- 조카: 신윤경
- 秩序:
서경배
-
아모레퍼시픽
會長
- 女同生: 申京淑
- 妹弟: 박성황 - 前 韓日香料 社長
- 男동생: 신선호(辛宣浩, 日本名: 시게미쓰 노부히로,
日本語
:
重光 宣浩
) - 日本 山사스 社長
- 祭需: 심정자(심정섭 前 民國日報 編輯長 딸)
- 조카: 辛酉나 - 신선호의 長女
- 秩序: 이호진 - 泰光그룹 會長
- 조카: 신동우 - 신선호의 長男, 日本 山사스 專務
- 조카: 神이나
- 조카: 신동준
- 女同生: 신정숙
- 妹弟: 최현열 - NK 그룹 會長
- 조카: 최은영
- 秩序: 조수호 - 全
韓進海運
會長
- 조카: 최은정
- 秩序:
정몽익
-
KCC
社長.
- 조카: 최강용
- 조카: 최은진
- 男동생:
신준호
(辛俊浩, 1941年~) -
푸르밀
會長
- 祭需: 한일랑(한순용 前
롯데七星飮料
監査의 딸)
- 조카:
신동학
(1968年~2005年)
- 조카: 신동환
- 姪婦: 최윤숙(최병석 前 대선주조 會長의 딸)
- 조카:
신경아
- 大選建設 常務
- 秩序:
尹相現
- 國會議員
- 女同生:
신정희
(辛貞姬) -
동화면세점
社長
- 妹弟:
김기병
(金基丙) -
롯데觀光
會長
- 큰아버지: 新進걸(辛鎭杰)
- 四寸兄: 신병호(辛炳浩, 1916年~2005年) - 前 롯데製菓 拷問
- 四寸동생:신동옥
- 堂조카(5寸 조카):
신동인
(辛東仁) - 前 韓國
롯데 자이언츠
球團主 代行
- 堂조카: 신동립 - 全 롯데호텔 代表
[19]
[20]
- 堂조카: 신영우
- 堂조카: 신복남
- 堂조카: 신지현
- 堂조카: 신주현
- 신격호 會長 死亡 時點과 關聯하여 롯데건설은 청량리 588 再開發 喝取 事件과 關聯하여 連累 疑惑이 있었다.
[21]
參考 文獻
編輯
外部 링크
編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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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名譽會長
2017年 6月~2020年 1月 19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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