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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동 虐殺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송암동 虐殺 事件 5.18 民主化運動 當時 1980年 5月 24日 11空輸旅團이 송암동, 효덕동 地域을 지나가던 中 鎭壓軍 間의 誤認射擊前이 發生하여 住民 8名이 銃擊을 받아 死亡한 事件이다.

1980年 5月 24日 午後 1時 30分 11空輸旅團에 駐屯地인 주남마을에서 光州 송정리 飛行場 으로 移動하라는 傳敎師의 指示가 下達되자, 11空輸旅團이 같은 날 13時 30分頃 주남마을을 出發하여 陸路로 移動 中, 그 先頭가 光州-木浦間 道路에 接한 光州 西區 진월동 所在 효덕초등학교 三거리 附近에 이르렀을 무렵 트럭을 타고 그 곳에 와 있던 武裝示威隊 壽命을 發見하고 銃擊을 加하고, 갑자기 뒤따르던 兵力들도 周邊을 向해 一齊히 銃擊을 加했다. 효덕초등학교 뒤 놀이터에서 놀던 田載秀, 附近 原題마을 貯水池에서 놀던 房廣範은 銃擊을 받아 死亡했다.

5月 24日 午後 13時 55分頃 11空輸旅團의 63大隊가 哮喘役 附近에 이르렀을 무렵 埋伏하고 있던 傳敎師 步兵學校 敎導隊 兵力과 誤認 射擊戰이 發生했다. 傳敎師 步兵學校 敎導隊 兵力이 11空輸旅團을 光州 市民軍으로 잘못 보아 射擊한 것이었다. 光州 鎭壓軍 間의 誤認射擊展 途中 김평용은 도망가는 途中에, 박연옥은 下水溝로 待避하다 銃擊을 받아 死亡했다. 傳敎師 步兵學校 敎導隊 兵力이 11空輸旅團의 先頭 裝甲車와 後續 트럭에 90mm 無反動銃 4發을 명중시키는 等 集中 射擊을 加하여 空輸部隊員 9名이 死亡하고 40餘名 以上이 重傷을 입자, 63大隊 兵力은 附近 一帶를 搜索하여 집에 있던 마을 住民 4名을 끌어내어 銃殺했다. [1]

24日 14時~15時, 戒嚴軍이 이 地域에서 車輛 通行者를 制止하는 途中 金鍾哲, 송정교가 大檢에 被襲當해 死亡했다.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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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2.12 5.18 事件 1審, 抗訴審, 上告審 判決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