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은
秋夕
과 더불어 代表的인
韓國의 名節
로
每年 1月 1日
이다.
설
이라고도 불린다. 現代 韓國에서 새해는 大部分 陽曆 1月 1日인
새해 첫날
에 記念하고, 一家 親戚들이 만나는 傳統 名節 記念은 陰曆설에 한다. 설날에는 祖上에게
次例
를 지내고,
親戚
이나 이웃 어른들에게
歲拜
를 하는 것이 韓民族 固有의
風習
이다. 그믐밤에
잠
을 자면
눈썹
이 하얗게 샌다고 하여
밤
을 지새우기도 한다.
次例
를 지내고
歲拜
를 한 後에는
윷놀이
·
널뛰기
·
鳶날리기
等 여러 民俗놀이를 하며 이 날을 즐겼다. <
東國歲時記
>에 따르면, 1年 동안 빗질하며 빠진 머리카락을 빗箱子 안에 모아 두었다가
설날
해질 무렵에 태우며 나쁜 病을 물리치고 健康을 祈願하는
風俗
이 있었다고 한다. 現在
설날
은 陰曆설 當日을 基準으로 前날과 다음날을 包含해 總 3日間
公休日
로 指定하고 있다. 大韓民國의 境遇
2014年
부터
代替公休日
適用 對象 公休日이 되었고 이에 따라 설날이 4日 連休가 되는 境遇도 있다.
설날은 해(年)의 限 干支가 끝나고 새 干支가 始作되는 날로, ‘설’은 ‘설다’, ‘낯설다’, ‘익숙하지 못하다’, ‘삼가다’ 等의 意味에서 由來한 것으로 推測된다.
[1]
[2]
日帝强占期
에는
陽曆
1月 1日
을 新正(新正), 本來의 설날을
舊正
(舊正)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日本에서
火力
(和曆)을
陽曆
으로 바꿀 때 陰曆 설을 舊正(?正)이라고 부르면서 만든 말이다.
[3]
由來와 歷史
編輯
陰曆설은 書記
488年
新羅
鄙處王
時節 설날을 쇠었다는
三國遺事
의 記錄이 있으며, 以後
高麗
와
朝鮮
까지 이어졌다.
乙未改革
으로 陽曆이 導入되면서
1896年
부터 公式的인 새해 첫날의 機能은 陽曆
1月 1日
(
陽曆설
)에 내주었다.
光復
以後
大韓民國
에서도 40餘年間 陰曆설은 名節로서 待接받지 못하고 陽曆 1月 1日부터
1月 3日
까지를 公休日로 指定하였다. 特히,
李承晩
政府와
朴正熙
政府는 二重課稅(二重過歲)라는 理由로 私企業體의 休務에 不利益을 주면서까지 陰曆설을 없애려 하였고, 陽曆설에 茶禮를 지낼 것을 勸奬하여
서울
等 大都市의 一部 家庭에서는 陽曆설을 쇠는 風土가 생겨났다.
그러나, 大部分 家庭에서는 如前히 陰曆설에 茶禮를 지내는 傳統을 維持했기 때문에 陰曆설도 公休日로 指定하여 이러한 傳統을 尊重해야 한다는 意見이 擡頭되면서 政府는
1985年
부터
1988年
까지
民俗의 날
이라는 이름으로
陰曆 1月 1日
하루를 公休日로 指定하였다.
6月 抗爭
以後 執權限
盧泰愚
政府는 民族 固有의
설날
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輿論을 받아들여
1989年
에 陰曆설을
설날
로 하고,
섣달그믐
(陰曆 12月 末日)부터
陰曆 1月 2日
까지 3日 肝을 公休日로 指定하였다.
[3]
[4]
[5]
[6]
公休日 指定
編輯
大韓民國
에서는
1985年
부터
1988年
까지 陰曆설을
公休日
로 하였고,
1989年
부터 설날을 3日 連休(
陰曆 12月 末日
부터
陰曆 1月 2日
까지)로 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에서는
1967年
부터 陰曆설을 公休日로 하였고, 現在는 但只 休息일의 槪念으로써 하루만 公休日로 指定하고 있다.
[7]
北韓은 陽曆 1月 1日을 설날이라 하여 더 重要視 여기고 있다.
次例 및 세倍
編輯
집안에 따라
宗敎
나
家風
에 따라 다른 境遇도 있지만, 普通 설날 아침에는 傳統的으로
次例
를 지내고,
떡국
을 먹는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것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意味가 있다.
茶禮를 지내고 난 後에는 親戚이나 이웃 웃어른들에
歲拜
를 한다. 歲拜는 웃어른에게 感謝의 마음을 表現하고 健康을 祈願하는 意味가 담겨 있다. 歲拜를 받은 웃어른들은 아랫사람에게 答禮로 歲拜돈이나 德談을 해준다.
설날에 男子·女子·늙은이·젊은이·어린이 할 것 없이 모두 일찍 일어나 洗手하고 갈아입은 새옷을
설빔
이라고 하며, '세장'이라고도 한다. 설빔은 섣달 그믐 以前에,
色깔
이 있는 華麗한 옷으로 마련하여 大體로 大보름까지 입는다.
설날 차리는 飮食은 '歲饌(歲饌)', 술은 '세주(歲酒)'라고 한다. 설날이 되면 여러 가지 飮食을 만들어 먹고, 歲拜하러 온 손님에게도 待接하는데, 이때 반드시
떡국
을 차린다. 흰쌀을 빻아 만든 떡국은 설날 아침 祭祀지낼 때 祭物(祭物)로 차리거나 손님에게 차려 내는데, 새해 때마다 떡국을 먹으므로 아이들이 나이를 물을 때 "떡국 몇 그릇 먹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설날 흰떡을 使用하여 떡국을 만드는 것은 새해 첫날이 밝아오므로 밝음의 뜻으로 흰떡을 使用하고,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둥근 太陽을 象徵하는 等 太陽崇拜 思想에서 由來된 듯하다.
[8]
설날에는 떡국外에도 쇠고기 散炙, 떡갈비, 食醯, 水正果等을 먹는다.
?李 部分의 本文은
占卜
입니다.
설날에는 1年의 運數를 점친다.
- 土亭祕訣
: 土亭
이지함
이
主役
을 參照하여 만들었다고 傳해진다. 生年月日을 따져 한 해의 運數를 본다.
- 聽讒: 새해 첫새벽에 사람 소리나 짐승 소리 等 그날 처음 듣는 소리로 占을 치는데 그걸 聽讒이라고 한다. 聽讒은 自己의 身數를 점친다.
- 五行占: 나무板이나
葉錢
에 五行(금, 나무, 물, 불, 흙)의 글字를 새겨 占을 본다.
- 윷占: 윷을 던져 占을 본다.
이 外에, 설날 또는 그 數日 間의 날씨를 살펴 한 해의 運數를 점치는 風習이 各 地方에 남아 있다.
?李 部分의 本文은
福笊籬
입니다.
설날 이른 아침 또는 섣달 그믐날 밤 子正이 지나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엮어서 만든 笊籬를 사서 壁에 걸어 두는 風習이 있는데, 이것을 福笊籬라고 한다.
全國에서 條理 壯士가 이것을 팔기 위하여 初하루 前날 밤부터 밤새도록 인가 골목을 돌아다닌다. 이러한 風俗은 條理가 쌀을 이는 機構이므로 그해의 幸運을 笊籬로 일어 醉한다는 뜻에서 비롯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설날에 1年 동안 使用할 笊籬를 그 數量대로 사서 房 한쪽 구석이나 大廳 한 귀퉁이에 걸어 두고 하나씩 使用하면 1年 동안 福이 많이 들어온다는 民間 信仰도 있다.
설날 밤에 夜光이란 鬼神이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俗說이 있다. 신을 잃어버린 아이는 그해 運數가 不吉하다고 하여 모두들 신을 감추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체를 마루 壁이나 大門 위에 걸어 두면 夜光鬼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볼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날이 밝으면 도망쳐 버린다고 한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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