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船艙 (노래)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船艙 (船艙)〉은 1941年 에 歌手 고운봉 오케레코드 에서 發表한 韓國 트로트 曲이다.

劇作家 兼 作詞家였던 조명암 이 歌詞를 쓰고, 天才 音樂家로 有名한 김해송 이 作曲했다. 歌手 고운봉은 〈船艙〉을 發表할 當時 데뷔한 지 2年이 된 新銳級 歌手였다. 고운봉은 이 노래를 히트시켜 歌手로서의 立地를 굳혔고, 〈船艙〉은 고운봉의 代表作으로 남았다.

그러나 光復 後 照明癌은 左翼 活動을 하다가 越北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의 高位職을 거쳤고, 김해송 또한 韓國 戰爭 中 行方이 杳然해져 越北說과 拉北說이 同時에 떠돌면서 두 사람의 이름은 오랫동안 大韓民國 에서 言及할 수 없었다. 이 노래는 作詞者와 作曲者의 이름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禁止曲이 되지 않았다. 第6共和國 樹立 以後 越北 藝術人이 解禁되면서 元來의 作詞家와 作曲家를 밝힐 수 있었으며, 그동안 作者로 알려졌던 이들이 訴訟을 걸어왔으나 結局 原作者가 드러난 逸話가 있다. [1]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라는 導入部의 歌詞가 잘 알려져 있다. 김화랑 이 演出한 1960年 映畫 《 울려고 내가 왔던가 》는 이 有名한 歌詞에서 題目을 따왔다 [2] . 이어지는 歌詞 內容은 비 오는 날 船艙街를 거닐며 헤어진 사람과의 幸福했던 追憶을 되새기는 것이다. 離別의 아픔을 絶妙하게 描寫하여 큰 사랑을 받았다.

大韓民國에서는 國民的 愛唱 歌謠로 남아 있으며 [3] , 日帝 强占期 동안 發表되어 널리 알려진 曲이라 北朝鮮에서도 '啓蒙期 가요'로 分類되어 繼續 불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5]

2000年 고운봉의 故鄕인 忠淸南道 禮山郡 德山溫泉에 노래 歌詞를 새긴 노래碑가 세워졌다.

家事<ref>21年 5月3日 가요무대에서 船艙이 나왔는데 3節까지 나온것이다. 確認바람</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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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蔚~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비~린內 나는 埠頭가엔 이슬 맺은 百日紅

그~代와 둘~이서 꽃씨를 심던 그날도

지~金은 어디로 갔나 찬비만 내린다


2. 蔚~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蔚~어본다고 다시 오랴 사나이의 첫 純情

그~代와 둘~이서 希望에 울던 港口를

웃~으며 돌아가련다 물새야 울어라

參考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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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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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남중 記者 (2003年 8月 31日). “[이 사람이 사는 이야기] 國內 唯一 한국가요사博物館 김점도氏” . 國民日報 . 2008年 2月 24日에 確認함 .   |題目= 에 지움 文字가 있음(위치 1) ( 도움말 )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2. 씨네21 - 울려고 내가 왔던가 Archived 2016年 3月 4日 - 웨이백 머신
  3. “人物-떠오른 별, 사라진 별” . 한겨레 (聯合뉴스 認容). 2001年 12月 10日 . 2008年 2月 24日에 確認함 .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4. 임을출 記者 (2005年 6月 9日). “金剛山, 아직도 안 가보셨어요?” . 한겨레21. 2006年 1月 18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08年 2月 24日에 確認함 .  
  5. 함보현 記者 (2008年 2月 18日). “北, 日帝時代 大衆歌謠 되살리기” . 聯合뉴스 . 2008年 2月 24日에 確認함 .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