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5 서울驛 集會
는
1980年
5月 15日
에 일어난 示威로,
서울驛 回軍
이라는 名稱으로 자주 불린다. 1980年 5月 初
戒嚴令
下에 억눌려있던 學生들의 民主化 要求가 거세지면서 5月 13日부터 學內에 머무르던 大學生들은 街頭로 進出하여 示威를 벌였다. 5月 15日에는 서울驛 地上 廣場 앞에서 10萬餘 名 以上의 大學生 및 市民이 自發的으로 모였다. 示威隊는 早速한 時日 內에 戒嚴을 解除하고 民主化를 推進할 것을 主張했다. 이날 밤 8時까지 示威는 繼續됐다.
마이크로버스에서 있었던 學生 指導部 會議에는
沈在哲
(서울大 學生會長),
신계륜
(고려대 總學生會長), 형난옥(숙명여대 總學生會長),
李海瓚
(서울대 復學生 代表) 等과 서울大學校 學生處長
이수성
이 參席하였다.
會議에서 신계륜 等의 徹夜 籠城 主張
[1]
과 沈在哲 等의 쿠데타의 빌미를 줄 수 있으므로 退却하자는 主張이 부딪쳤다. 이수성은 內務部長官과 總理祕書室長에게 電話를 걸어 安全귀가 保障을 받으며,
[2]
解産을 說得하였다.
[3]
繼續된 籠城으로 意思 表明은 達成했고 繼續될 境遇 軍이 介入할 名分을 준다하는 主張이 나오자, 沈在哲이 解散을 發表했다
5月 16日
全國總學生會 會長團은 頂上 授業을 받으며 當分間 時局을 觀望하기로 決定했다.
- 大韓民國 警察
과 國防部가 合同으로 搜査를 했으나 서울驛 集會를 主管한 主動者와 主要 關聯者를 한사람도 逮捕하지 못했다. 事件 關聯者 搜査는
5.18 光州 民主化 運動
鎭壓 問題와
김대중 內亂 陰謀 事件
에 가려져 國民的 關心事에서 멀어지면서 흐지부지되었다.
- 民主化의 길 10號 (1984)에서 서울大 學生運動 指導部는 서울驛 回軍의 戰術的 誤謬를 認定했지만, 只今은 意見이 갈린다.
[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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