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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화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서승화 (徐承和, [1] 1979年 7月 13日 ~ )는 全 KBO 리그 LG 트윈스 投手 이다.

서승화
Seo Seung-Hwa
基本 情報
國籍 大韓民國
生年月日 1979年 7月 13日 ( 1979-07-13 ) (44歲)
出身地 大韓民國 大田廣域市
신장 195cm
體重 82kg
選手 情報
投球·打席 座투좌타
守備 位置 投手
프로 入團 鳶島 2002年
드래프트 順位 1998年 2次 3라운드 23順位 ( LG 트윈스 )
첫 出張 KBO / 2002年 5月 11日
蠶室 三星
마지막 競技 KBO / 2010年 9月 21日
大邱 三星
契約金 5億 원
年俸 4千萬원 (2011年)
經歷


프로野球 選手 時節 編輯

1998年 LG 트윈스 에 指名되었고 東國大學校 를 卒業한 2002年 에 入團했다. 2004年 4月 23日 辭職 롯데 戰에서 救援勝을 記錄하여 프로 데뷔 以來 처음으로 勝利 投手 가 되었으나, 이 競技 以後로는 6年 넘게 勝利를 記錄하지 못했다. 2006年 12月에 公益勤務要員 으로 入隊하여 2008年 에 召集 解除되었다. 2009年 에 復歸하여 프로 競技 後半期에 再次 出戰하였지만, 亦是 이 해에도 勝利를 記錄하지는 못했고 2군에서 外野手 이병규 (배번 7番)를 暴行한 事件을 일으켜 問責性으로 無期限 2군으로 降等되어 시즌을 마감했다. 2010年 5月 21日 蠶室 두산 戰에서 選拔 投手 로 出戰하여 5.1이닝을 던지고 無失點을 記錄하여 이 競技의 勝利 投手 가 되었다. 이는 프로 데뷔 첫選拔 勝利 以來 2,219日만에 記錄 한 데뷔 2番째 勝利였으며, 데뷔 以來 9年만의 첫 先發勝이었다. [2] 以後 2010年 9月 21日 大邱 三星 戰에서는 데뷔 첫 完投를 記錄했지만 8이닝 동안 142具를 던져 8被安打 9四死球 6脫三振 6失點(6自責)을 許容해 敗戰 投手가 되었다. 이는 박종훈 監督이 서승화에게 實際 競技에서 많은 공을 던져 投球 밸런스를 스스로 찾으라는 趣旨에서 完投를 指示한 것이었다. [3] 하지만 이 競技가 그의 1軍 마지막 競技가 되었다. 2011年 에는 1軍에 올라오지 못했고, 시즌 後에는 自殺을 暗示하는 글을 올려 波紋을 일으킨 뒤 스스로 放出을 要請하여 팀을 떠났다.

近況 編輯

放出 以後 2012年 2月 27日 에 詐欺 嫌疑로 被訴됐다는 記事가 報道되었고, [4] 2014年 1月 에 社會人 野球 選手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 確認되었다.

出身學校 編輯

聯關 事件 編輯

詐欺事件 2020年 1月 30日 法曹界에 따르면, 大田地法 天安支院 刑事9單獨(권순남 部長判事)은 詐欺 嫌疑로 裁判에 넘겨진 서승화(41)氏에게 懲役 6個月에 執行猶豫 1年을 지난 15日 宣告했다. 서승화는 프로野球 LG 球團에서 放出되기 直前인 2011年 6月頃 女子親舊 B氏에게 "車 열쇠를 잃어버려 修理費用이 急하게 必要하다"면서 430萬원을 빌리고 갚지 않았다. 서승화는 애當初 돈을 갚을 생각도 能力도 없던 것으로 調査됐다. B氏로부터 돈을 빌릴 當時 360萬원이 月收入의 全部였고 빌린 돈은 車 修理가 아닌 다른 用途로 쓰려 했다. 이 돈을 包含해 서승화는 B氏로부터 5回에 걸쳐 總 1860萬원을 받아냈다.

같은 해 10月 서승화는 選手와 팬 사이로 알고 지내던 C氏에게 "飮酒運轉 交通事故가 나서 急히 돈이 必要하다"며 100萬원을 뜯어내기도 했다. 以後에도 서승화는 C氏를 相對로 詐欺行脚을 벌여 3回에 걸쳐 總 400萬원을 騙取했다. 서승화는 被害者 C氏의 告訴로 警察 調査를 받고 檢察에 送致돼 裁判에 넘겨졌다.

卷 判事는 "被害者들의 信賴關係를 저버리고 저지른 犯行으로 罪質이 나쁘다"고 했다. 다만 "金額을 一部 辨濟한 點, 被害者들과 合意한 點, 處罰 前歷이 없는 點 等을 參酌했다"면서 懲役刑의 執行猶豫를 刑量으로 定했다

退場 編輯

그는 類달리 競技 中 非紳士的인 行動으로 退場을 많이 當한 選手 中 하나였다. 2003年 8月 9日 에는 빈볼 是非로 벤치 클리어링되자, 李承燁 과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한 끝에 둘 다 退場당했다. [5] 그가 프로 데뷔 첫 勝을 記錄하였던 2004年 에는 김한수 김재걸 에게 빈볼을 던졌고, 같은 해 6月 2日 에는 그 當時 두산 所屬이었던 윤재국 에게는 런다운 아웃을 잡아낼 때 2壘 로 오기 前에 그의 다리를 걸어서 結局 윤재국 十字靭帶破裂로 시즌 아웃 [6] 되는 等 2004年 에만 非紳士的인 行動으로 無慮 4回의 退場을 記錄하였다. [7] 윤재국 과의 事件은 그가 김재걸 에게 빈볼을 던져 出場 停止를 當하고 그 懲戒가 解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으며 같은 날 두산 베어스 코치 한영준 도 選手를 밀치고 나온 일로 退場당했다.

2軍 暴行 事件 編輯

2009年 公益勤務要員 召集 解除되어 復歸했고 1軍에도 몇 次例 選拔 로도 登板했으나, 2軍 에 있을 때 2009年 8月 8日 外野手 이병규 (배번 7番)를 暴行하였다는 事實이 드러났다. [8] 이 事件이 드러난 以後 그는 더 以上 1軍 에 오르지 못하고 1軍 에서 2敗만 記錄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이는 심수창 조인성 과의 말다툼 事件이 일어난 後 不過 이틀 지난 後에 일어났으며, 內紛으로 팀 雰圍氣에 龜裂이 생겼던 LG 트윈스 는 서승화마저 찬물을 끼얹으며 힘겨운 2009年 을 보냈다.

二重契約 波動 編輯

東國大學校 在學 中 1999年 피츠버그 파이리츠 와의 2重 契約 問題로 波動을 겪기도 했다. 이로 因해 韓國野球協會 에서 無期限 資格停止 處分을 받았으나, 後에 1年 資格停止로 減刑되었다. [9]

心境告白 波動 編輯

2010年 박종훈 監督을 만난 後 처음으로 先發勝을 經驗하였지만, 2010年 7月 26日 팀 訓鍊 途中 吸煙室에서 吸煙을 하는 等 個人 行動을 했다는 理由로 2軍 行을 通報받았고 個人 미니홈피를 통해 野球를 그만두겠다는 글을 남겨 波紋을 일으켰다. [10] 그러나 事件 以後 當時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았다고 自身이 스스로 認定하여 곧바로 事件이 마무리되었다. 2011年 11月 에는 自身의 미니홈피에 自殺 暗示글을 올렸으며, 이 事件이 있었던 後 그는 스스로 自由契約 公示를 要請하여 팀을 떠났다.

通算記錄 編輯

年度 平均自責 競技數 홀드 完投 完封 이닝 被安打 被홈런 4四球 脫三振 失點 自責點 備考
2002 LG 5.94 27 0 2 0 0 0 0 36 ⅓ 35 7 6 28 25 24
2003 5.57 46 0 5 0 3 0 0 82 ⅓ 96 11 3 51 58 51
2004 5.58 49 1 8 1 14 0 0 69 ⅓ 58 5 7 64 45 43 홀드 8位
2005 5.4 4 0 0 0 0 0 0 5 9 0 0 2 3 3
2006 19.64 5 0 1 0 0 0 0 3 ⅔ 6 1 0 1 8 8
2009 10.45 4 0 2 0 0 0 0 10 ⅓ 14 2 0 7 12 12
2010 6.75 12 1 5 0 0 1 0 52 65 4 0 41 41 39 完投 6位
通算 7시즌 6.25 147 2 23 1 17 0 0 259 283 30 5 1 192 180

各州 編輯

外部 링크 編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