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원
(徐明源,
1919年
10月 27日
忠淸南道
論山
~
2006年
4月 14日
)은
大韓民國
의 官僚, 敎育인, 政治人이다. 號는 화곡(華谷)이다.
서울大學校
의 敎授와 副總長,
1960年
문교부 事務次官
,
1977年
淑明女子大學校
,
忠南大學校
總長과
경원대學校
의 總長,
1985年
문교부
敎育改革審議委員會
委員長,
1987年
문교부
長官
等을 歷任하였다.
1981年
大韓民國 學術會
會員에 選任되고,
1989年
한국학원총연합회
會長이 되었다가,
1992年
다시
경원대學校
總長을 歷任하였으며,
1995年
世界敎育協議會
韓國支會長에 選任되었다. 獨立運動家 兼 政治人
서재필
, 革命家
서재창
의 宗孫이다. 本貫은
大邱
이다.
1919年
10月 27日
忠淸南道
論山郡
에서 獨立運動家 兼 政治人
서재필
, 革命家
서재창
의 兄인
서재춘
의 孫子로 태어났다. 從祖父 두 名이
甲申政變
에 參與하였다가, 한때 그의 집안은
朝鮮
時代의
連坐 制度
에 依해 沒殺당하기도 했다.
京城帝大
에 入學했다가 解放 後 경성제국대학에서
서울대학
으로 校名이 變更되었으며,
1946年
교명이 變更된
서울대학
의 心理學科를 卒業하였다. 서울大 心理學科를 卒業한 뒤
서울大學校
敎育學科 敎授가 되었으며,
1950年
初,
美國
으로 留學, 美國의 조지피바디師範大學에 留學하여 敎育學 碩士, 博士課程을 밟았다. 大學院 過程에 있으면서
서재필
博士를 補佐하였다. 그 뒤
서재필
事後
博士
過程에 專念하다가
1953年
敎育學
博士
學位를 取得하였다. 그해에 歸國,
서울大學校
副敎授로 復職하고,
1954年
이화여자대학교
師範大學 敎育學 敎授가 되었다.
1955年
서울大學校
師範大學 敎授가 되고,
1977年
까지 서울대 師範大 敎授로 在職했다. 서울大學校 副總長과
1960年
문교부 事務次官
을 지냈다.
1977年
에는
淑明女子大學校
總長이 되었다가 그해
忠南大學校
,
경원대學校
總長을 지냈다.
1980年
忠南大學校 總長 在職 中 新軍部가 設置한
國家保衛立法會議
立法委員을 歷任하였고,
1987年
第5共和國
의 마지막
문교부
長官으로 立脚하여 이듬해
全斗煥
이 退任할 때까지 在職했다.
[1]
1981年
大韓民國 學術會
會員에 選任되고,
1985年
문교부
敎育改革審議委員會
委員長이 되어
1987年
까지 在職하였다.
1989年
한국학원총연합회
會長이 되었다가,
1992年
다시
경원대學校
總長에 就任하여
1993年
까지 在職하였다.
1995年
世界敎育協議會
韓國支會長을 맡았으며
國民勳章
無窮花章, 모란장,
世宗文化賞
等을 受賞한 바 있다. 忠南大學校 校內에 胸像이 製作되어 있다.
[2]
또한
서재필
記念事業에도 參與하여 송재장學會 副理事長을 歷任하기도 했다. 主要 著書로는 《敎育 原理》, 《現代敎育叢書》, 《敎職과 敎師》 等이 있다.
2006年
4月 14日
에 病으로 死亡하였다.
- 《敎育 原理》
- 《現代敎育叢書》
- 《敎職과 敎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