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키 다카유키
(佐?木高行)는
에도 時代
末期의
道士
燔師
이며
日本 帝國
의
政治人
이다. 作爲는
侯爵
(
伯爵
에서 陞爵). 侯爵으로 陞爵되기 前엔
이타가키 다이스케
,
고토 쇼지로
와 함께
道士 3百
(土佐三伯)으로 불렸다. 一部 冊에는 사사키 다카유키(佐佐木高行)로 적히기도 한다. 兒名은
萬노스케
(萬之助). 統稱은
산시로
(三四郞). 元服 後 첫 이름은
多카아쓰
(高喜),
다카노리
(高春) 等으로 불리며 나중에 只今의 다카유키로 改名하였다.
燔師(商社)와 향사(下士)間의 身分이 確實했던 道士 番에서 사사키 다카유키는 같은 上司였던 이타가키 다이스케와 마찬가지로 下士들(
사카모토 료마
等)에 寬大함으로 有名했다.
1871年
이와쿠라 使節團
에 參加하였다.
元老院 副議長
(元老院副議長)을 거쳐 1881年
工夫頃
(工部卿)李 되었다.
메이지 政府
時節 高位 公職者 中에서도 保守派를 代表하는 한名이었으며
메이지 天皇
의 信任을 얻어
皇太子 요시히吐 親王
의
帝王學
敎育을 擔當하였다. 한便
메이지 時代
의 政治 體制를 둘러싸고
이토 히로부미
等과 對立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