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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호 (1834年)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민태호 (1834年)

朝鮮 時代의 文臣, 書藝家

민태호 (閔台鎬, 1834年 ~ 1884年 10月 18日 )는 朝鮮 時代의 文身 , 書藝家 이다. 親日 開化黨과 다른 동도서기 敵 開化政策을 推進하였다. 1884年 甲申政變 景祐宮 에서 김옥균 一派에게 殺害되었다. 민유중 의 아들 민진원 의 後孫이며 할아버지는 參判 홍섭이高 아버지는 侈傲이며 養아버지는 齒삼이다. 명성황후 와 같은 行列의 12寸 오빠로 민치구 의 아들 민태호 (閔泰鎬)와 同名異人이다. 者는 경평(景平), 號는 表情(杓庭), 諡號는 충문공(忠文公), 本貫은 餘興 (驪興).

生涯 編輯

동도서기派 儒學者 유신환 (兪莘煥)의 弟子로 1870年 文科 別試 (別試)에 甁과(丙科)로 合格하였다. 1874年 閔氏 戚族의 首長인 민승호 가 갑자기 죽자 高宗 은 민승호에게 忠情이란 諡號를 내렸다. 그런데 민승호에겐 뒤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 閔王后는 가까운 親戚을 排斥하고 寸數가 좀 먼 민태호 의 아들 閔泳翊을 養子로 삼겠다고 했다. [1] 그러자 민태호 는 反對하였고 그의 동생 민규호 가 兄을 脅迫했다. "千의(왕후의 뜻)를 어찌 敢히 어기겠습니까? 養子를 보내어 함께 富貴를 누리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민태호 의 아들 閔泳翊은 민승호 의 養子로 들어갔고, 뒤이어 민규호 吏曹判書 兼 都統使가 되었다. [1]

閔氏 戚族의 首長으로 勢道를 부리던 閔升鎬가 갑자기 暴死瑕疵, 사람들은 흥선大院君 을 疑心하였다. 그리고 민승호와 그의 아들이 同時에 爆死했으므로 閔氏 一族들은 自身의 아들을 閔升鎬의 事後 養子로 세우기 위해 各自 暗鬪와 競爭을 벌였다. 하지만 閔王后는 萬若을 對備하여 오빠의 事後 養子로 민영익 을 일찌감치 점지해둔 狀態였다. [2] 민태호는 아무리 一家라지만 하나뿐인 아들을 養子로 줄 수 없다고 버텼지만, 민규호 等과 民王后의 거듭된 說得으로 許諾할 수밖에 없었다. [2] 민태호는 품에서 아들을 잃은 代身 權勢를 손아귀에 움켜쥐었다. 民王后는 親庭아버지의 祭祀를 받드는 唯一한 血肉인 閔泳翊을 끔찍이 아꼈다. 寸數로는 조카였지만, 나이 差異가 9歲밖에 나지 않았기 때문에 親同生처럼 親하게 對했다. [2]

1875年 京畿道 監司를 지냈고, 1878年 딸이 純宗 의 비인 순명효황후 으로 揀擇되었다. 以後 刑曹判書 , 兵曹判書 , 禮曹判書 , 吏曹判書 를 지냈다.

1883年 통리軍國事務아무獨판, 그 뒤 摠戎使, 御營大將, 武威都統使(武衛都統使), 大提學 等을 지냈다. 閔氏 戚族의 中心人物로서 1882年 壬午軍亂 때, 江華留守(江華留守)로 있었는데 민태호 의 집도 襲擊을 받았다.

그 뒤 從一品으로 昇進하여 議政府 左贊成 을 지냈고 1883年 7月 典圜局 官吏事務(典?局管理事務), 9月 軍國事務獨판을 거쳐 다시 議政府 左贊成이 되었다. 王家의 外戚으로 事大黨(事大黨)의 代表的 人物로서 活躍하였으며 1884年 甲申政變 윤태준 (尹泰駿), 前領事(前營使) 한규직 (韓圭稷), 知中樞府事(知中樞府事) 조영하 (趙寧夏), 解放摠管(海防總管) 민영목 (閔泳穆), 內侍 유재현 (柳載賢) 等과 함께 入闕하던 中 景祐宮 大廳 앞에서 김옥균 一派가 보낸 軍士에게 쫓기다가 칼에 맞고 暗殺되었다.

事後 衝문공(忠文公)의 諡號가 내려지고 10月 24日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領議政 (領議政)에 追贈되었다. 高宗 이 보낸 承旨가 直接 致祭하였으며 3年値의 祿俸이 내려졌다. 1907年 純宗 卽位後 이윤용 의 上疏로 女銀府院君(驪恩府院君)李 追贈되었다.

評價 編輯

글씨에 能하여 戰서(篆書),예서(?書),행서(行書),초서(草書) 等 다양한 書體를 모두 잘 썼다 한다.

家族 關係 編輯

  • 高祖父?: 민형수(閔亨洙)
    • 曾祖父?: 민백상 (閔百祥)
      • 祖父?: 민홍섭(閔弘燮)
        • 아버지: 民治誤(閔致五)
    • 量曾祖父?: 민백흥(閔百興)
      • 養祖父?: 民상섭(閔相燮)

같이 보기 編輯

민태호가 登場한 作品 編輯

各州 編輯

  1. 黃玹, 《매천야록》 (정동호 驛, 一問書籍, 2011) 40페이지
  2. 閔泳翊 等 報聘社 큰절로 禮 갖춰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中央日報 2009.05.16日子
  3. 生前에 義昌夫婦인(宜昌府夫人)에 封爵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