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노 아리스타
(Mariano Arista,
1802年
7月 26日
-
1855年
8月 7日
)는
멕시코
의 政治人, 軍人이다. 19世紀 國內에서 벌어진 많은 戰爭에 參戰한 有名한 베테랑日 뿐만 아니라 1851年부터 1853年까지 멕시코의 大統領을 歷任했다.
元來 스페인軍의 史觀이었던 아리스타는 以後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
의 革命軍에 參加했다. 그後 아리스타는 1836年
텍사스 革命
을 鎭壓하는 동안 멕시코의 獨裁者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
麾下에 있었다.
1846年 아리스타는 北部軍의 任命되어, 멕시코領 텍사스에서 美軍 部隊를 逐出하기 위해 派遣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國境 紛爭의 結果 1846年부터 1848年까지 勃發한 悽慘한 멕시코 美國 戰爭에 불을 붙이게 되었다. 아리스타는 〈
팔로 알토 戰鬪
〉와 〈
레사카 드 라 팔마 戰鬪
〉 當時 멕시코軍의 司令官이었다.
아리스타의 戰略은 戰鬪 硏究者들에 依해 討論의 흔한 主題가 된다. 個人的으로 勇敢하지만, 아리스타는 한결같은 "republicano", 卽 멕시코 自由派閥의 멤버이며, 따라서 그가 맡는 保守的인 參謀陣들의 天敵이었다. 팔로 알토와 레사카 드 라 팔마의 두 戰鬪에서 아리스타는 그의 參謀陣들의 政治的 內紛에 依해 힘을 쓰지 못했다.
레사카 데 라 팔마 戰鬪
에서 敗戰한 後 멕시코 政府는 아리스타를 召喚하여 司令官職을 剝奪했다. 그後, 팔로 알토와 레사카 드 라 팔마의 敗北에 對한 赦免을 받았지만, 아리스타는 戰鬪에서 排除되어 나머지 戰爭을 지켜보게 된다.
1851年
아리스타는 大統領으로 호세 호아킨 데 에레라를 占據하여 國家에 安定된 財政을 確保하고자 했다. 아리스타 政權에 對한 保守派의 抵抗, 그리고 그 保守派에 依한 마지막 叛亂은 1853年에 그를 辭退와 追放으로 이끌었다.
그는
1855年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死亡했다.
1880年
아리스타의 屍身은 멕시코로 돌아 왔으며, 進步 系派들은 그를 國民的 英雄으로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