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카낭의 悲劇
(
포르투갈語
:
Maracanaco
마라카拿囚
[
*
]
,
스페인語
:
Maracanazo
마라카나소
[
*
]
) 또는
마라카낭 慘事
는
1950年 FIFA 월드컵
의 最終 라운드의 마지막 競技이자 事實上 大會의 決勝 競技로,
1950年
7月 16日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의
마라카낭
競技場에서 열렸으며, 總 199,954名의 觀衆이 入場하여
기네스북
에 登載되었다. 當時 最終 라운드에서
브라질
은
스웨덴
을 7 ? 1,
스페인
을 6 ? 1로 各各 大勝하고 組 1位를 달리고 있었으며,
우루과이
는 스웨덴을 3 ? 2로 辛勝하고 스페인과는 2 ? 2로 비겨서 브라질에 비해 勝點 1點이 不足한 狀況이었다. 우루과이는 이 競技에서 반드시 勝利가 必要하였으며, 브라질은 敗北하지만 않는다면 優勝을 確定지을 수 있었다.
競技가 始作되자 브라질의 波狀攻勢로 우루과이는 繼續 危機에 危機를 거듭하였다. 後半 2分에
프리아社
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우루과이의 敗色은 짙어졌다. 그러나 우루과이는 後半 21分에
후안 알베르토 스키亞피노
가 同點골을 성공시킨 뒤 後半 34分에
알시데스 基地아
가 逆轉골을 넣어 이 競技를 勝利하여 優勝을 거머쥐게 되었다.
한便, 이 競技는 2005年에
國際 蹴球 聯盟
이 選定한 FIFA 월드컵 11代 異變에 包含되었다.
[1]
兩 팀의 決選 라운드 2京畿까지의 結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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競技 結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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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카낭 競技場에 15萬名(非公式 20萬名)의 觀衆이 密集한 가운데 競技가 始作되었다.
우루과이
의 監督
후안 로페스
는
브라질
의 莫强한 攻擊力과 觀衆의 雰圍氣에 壓倒되어 勝利가 必要함에도 守備的인 플레이를 하라는 指示를 내렸지만, 우루과이의 主張 옵둘리오 바델라는
"후안은 좋은 監督이지만 이番만큼은 그가 잘못된 判斷을 했다. 우리가 守備的으로 나온다면 스페인이나 스웨덴처럼 大敗를 當할 것이다."
며 選手들에게 攻擊的인 플레이를 注文한다. 이 때문에 當然히 우루과이가 守備的으로 나올 것으로 豫想했던 브라질 代表팀은 唐慌했다.
그럼에도 브라질은 壓倒的인 攻擊力으로 當時 看板 攻擊手들이었던
아데미르
,
支持뉴
,
프리아社
等을 中心으로 始作부터 우루과이에 猛攻을 퍼부었다. 쉴새없는 브라질의 슈팅에도 우루과이의 골키퍼
마스폴리
는 15個가 넘는 슈팅을 막아내는 活躍을 하고, 그에 힘입어 우루과이는 前半戰은 0-0로 끝낼 수 있었다.
後半이 始作되고, 브라질은 攻擊을 퍼부은 끝에 結局 後半 3分 프리아社가 선제골을 넣는데 成功했다. 競技場은
브라질
觀衆들의 기쁨에 겨운 喊聲으로 가득찼고, 이젠 全世界 누구도 브라질의 優勝을 믿어 疑心치 않았다. 하지만 이에 屈하지 않은 옵둘리오 바델라는, 失點 直後
"이제 우리가 本때를 보여줄 때다!"
라고 말하며 選手들의 기운을 福돋았다.
失點에도 不拘하고 우루과이의 選手陣들은 오히려 더욱 거세게 攻擊을 퍼부었고, 마침내 後半 21分
후안 알베르토 스키亞피노
가 同點골을 넣고 後半 34分
알시데스 基地아
가 逆轉골을 넣으며 雰圍氣는 完全히 뒤바뀌었다. 이대로 가면 우루과이가 優勝을 차지하는 狀況에서 브라질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우루과이의 골문을 열려고 試圖했으나 모두 虛事가 되었고, 結局 競技가 終了되며 優勝은 우루과이가 차지했다.
競技 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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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終 結果
팀
|
勝點
|
京畿
|
勝
|
무
|
牌
|
得
|
失
|
GAv
|
우루과이
|
5
|
3
|
2
|
1
|
0
|
7
|
5
|
1.400
|
브라질
|
4
|
3
|
2
|
0
|
1
|
14
|
4
|
3.500
|
스웨덴
|
2
|
3
|
1
|
0
|
2
|
6
|
11
|
0.545
|
스페인
|
1
|
3
|
0
|
1
|
2
|
4
|
11
|
0.364
|
쥘 리메
는 競技가 끝나기 前부터 포르투갈語로 브라질의 勝利 演說을 準備하고 있었고,
브라질 蹴球 聯盟
은 選手들의 이름이 적힌 22個의 優勝 金메달을 만들어 準備하고 있었다. (이 當時만 해도
FIFA
는 優勝國의 金메달을 準備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루과이가 優勝을 차지하자, 메달들은 結局 모두 廢棄 處分되었다. 브라질의 優勝 記念曲은 〈勝利者 브라질〉("Brasil os vencedores")로 定해졌는데, 브라질이 優勝을 놓치게 되자 이 노래 亦是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브라질에서는 豫定되어 있던 모든 優勝 記念 行事가 瞬息間에 모조리 取消되었다.
브라질
에서는 비기기만 해도 優勝인 이 競技에서 逆轉敗하여 結局 優勝을 놓치게 되자 全 國民이 激忿하였다. 마라카낭 競技場에서는 觀衆 中 折半인 約 10萬名이 밤새도록 스탠드에 앉아 痛哭하였으며, 브라질 全域에 全國的으로 조기 및 反旗가 揭揚되었고, 數十名이
拳銃
으로
自殺
까지 함으로써(일명 拳銃 自殺) 自殺者들이 續出하였다.
[3]
特히, 이 競技에서 브라질이 우루과이에 逆轉敗한 것에 對한 鬱憤을 참지 못한 브라질 사람들이 暴動을 일으키는 바람에 곳곳에서 事故가 發生했으며, 이 險惡한 雰圍氣 때문에
우루과이 國家代表팀
은
쥘 리메 컵
授賞式을 대충 進行하고 바로 競技場을 서둘러 빠져 나와 歸國하였다.
브라질 蹴球 聯盟은 이 競技 以後 이제까지 使用하던 유니폼을 모두 燒却하고 草綠色 線과 노란色의 티셔츠, 파란色의 半바지 유니폼으로 새롭게 交替했다. 交替 以前의 브라질 蹴球 國家代表팀의 유니폼 色은 相議, 下衣, 스타킹 모두 흰色에 파란色 목둘레 칼라가 適用되었으며 現在의 브라질 蹴球 國家代表팀 유니폼의 色깔은 그 當時 交替되었던 그 色깔이다. 特히, 이 競技에서 브라질 代表팀의 골키퍼를 擔當했던
某아시르 바르보자 나시멘투
는 隱退 後에도 50年 間 괴롭힘을 當해오며
[4]
살다가
2000年
4月 7日
에 世上을 떠났는데, “브라질에서는 아무리 重大한 犯罪를 저질러도 懲役 30年型 以上에 處하지 않는데 나는 (1950年에 있었던) 우루과이와의 競技 以後에 50年 동안 罪人으로 살아왔다.”라는 遺言을 남기기도 하였다.
[5]
마라카낭의 悲劇으로 인해
브라질 蹴球 國家代表팀
은 유니폼 色깔을 完全히 갈아치웠다. 이 競技에서 브라질 蹴球 國家代表팀은 흰色 上衣와 흰色 下衣를 着用했으나 마라카낭의 悲劇으로 인해 이 競技에서 뛸 때 입었던 유니폼을 모조리 燒却하고 유니폼 色相을 現在의 노란色 上衣와 파란色 下衣로 交替시켰다.
마라카낭의 悲劇이 일어난 지 64年이 지난 後인
2014年 FIFA 월드컵
에서 브라질은 이 悲劇보다 훨씬 더 恥辱的인 敗北를 겪게 된다.
美네이랑
競技場에서 치러진 獨逸과의 4强戰 競技에서 브라질은 前半 29分 동안 獨逸에게 5골을 許容한 끝에 1 - 7로 大敗하며
마라카낭
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하여 나오게 된
美네이랑의 悲劇
은 마라카낭의 悲劇에 이어 브라질 蹴球 歷史上 最惡의 競技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2年 後,
2016年 夏季 올림픽
男子 蹴球 決勝戰에서 같은 相對인 獨逸을 이기고
美네이랑의 悲劇
乙 되갚으며 歷史上 첫 올림픽 金메달을 獲得하였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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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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