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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氏統戰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杜氏統戰 (杜氏通典)은 서울特別市 鍾路區 서울歷史博物館 에 있는 朝鮮時代 의 冊이다. 2003年 12月 30日 서울特別市의 有形文化財 第178號로 指定되었다.

杜氏統戰
(杜氏通典)
대한민국 서울特別市 有形文化財
種目 有形文化財 第178號
( 2003年 12月 30日 指定)
數量 200卷 75冊
時代 朝鮮時代
所有 서울歷史博物館
住所 서울特別市 鍾路區 신문로2街 2-1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槪要 編輯

中國 黨(唐)나라의 宰相(宰相) 杜佑(杜佑,735~812)에 依해 編纂된 杜氏統戰(杜氏通典)은 中國 상고대(上古代)부터 黨 顯宗(唐 玄宗)에 이르기까지의 食貨(食貨)?選擧(選擧)?直觀(職官)?例(禮)?惡(樂)?兄(刑: 兵을 包括)?主君(州郡)?邊方(邊防)等 中國 歷代 制度를 8典으로 分類한 冊으로서 統戰(通典)이라고도 한다. 南宋(南宋)때 編纂된 正初(鄭樵)의 『通知(通志)』와 松末 原初(宋末 元初)에 編纂된 마단임(馬端臨)의 『文獻通考(文獻通考』와 함께 '3通(三通)'이라 불릴 程度로 中國 歷代 制度文物社(制度文物史) 硏究에 核心이 되는 資料이다.

본 서울歷史博物館 所藏 杜氏統戰(杜氏通典)은 200卷을 75冊으로 엮은 活字本(活字本)인데 1455年(世祖 元年)에 강희안(姜希顔)의 글씨를 자본(字本)으로 하여 鑄造한 乙亥字(乙亥字) 中間者(中間字)로 찍어 낸 것이다. 이 冊에는 第 1冊의 첫 章에 ‘船社知己(宣賜之記)’라는 御寶(御寶)가 捺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內賜本(內賜本)임에는 틀림없으나 內査機(內賜記)가 남아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本과 같은 板式(板式)인 9行 17字(半郭 :22.5cm×16cm)에 乙亥字(乙亥字)로 찍은 內査機(內賜記)가 있는 『通典(通典)』李 安東 도산書院(陶山書院)과 日本 나고야의 봉좌문고(蓬左文庫)에 各其 한 質(秩)씩 傳하고 있는데 이들의 引出時期가 1560年(嘉靖 39年,明宗 15年) 9月인 點을 勘案하면 서울歷史博物館 所藏 本意 引出時期度 같은 明宗 15年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서울歷史博物館 所藏本 『杜氏統戰(杜氏通典)』 每 冊 第 1面에 ?糧穀(陽谷)???鑛山後學(光山後學)???金氏附議(金氏富儀)???愼重(愼仲)? 또는 ?光김(光金)?, 마지막 面에 ?光김□□(光金□□)?라는 所長인(所藏印)이 찍혀있는 것으로 보아 김부의(金富儀,1525~1582)에 依해 所藏된 것으로 보이는데, 김부의(金富儀)는 瘞安(禮安)五千(烏川)出身으로 本貫은 鑛山(光山)이고, 者(字)는 愼重(愼仲)이며, 號(號)는 邑淸淨(?淸亭)이다. 金演(金緣, 1487~1544)의 둘째 아들로 李滉(李滉)의 文人이다.

1722年 7月에 쓰여진 조태억(趙泰億,1675~1728)의 跋文에 依하면, 이 冊은 그의 10代祖인 門强攻(文剛公)조말생(趙末生,1370~1447)李 1407年 下賜 받은 것을 後에 그 外孫(外孫) 김부의(金富儀)가 얻어 嶺南에 傳해지게 되었는데 조태억 自身이 1720年 겨울 慶尙道觀察使로 나가 이를 듣고 瘞安玄(禮安縣)으로가 김부의(金富儀)의 後孫 김대(金岱)에게서 다시 얻어왔으며, 그 가운데 빠진 1冊(卷136~138)을 玉堂(玉堂,弘文館을 指稱)의 唐本(唐本)으로 베껴 芸閣(芸閣,校書館 指稱)의 走者(鑄字)로 찍어 補充했다고 한다.

各州 編輯


參考 文獻 編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