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만   중국   일본 
都評議使司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都評議使司 (都評議使司)는 高麗 말 忠烈王이 都兵馬使를 改稱한 官廳으로, 國政을 總括하는 機構였다.

道黨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朝鮮 初까지 維持되었다.

開設

編輯

1279年 ( 충렬왕 5年) 都兵馬使 (都兵馬使)를 改稱하였다. 高麗 前期의 都兵馬使는 純全히 國防·軍事 面에 對한 一時的 會議 機關에 不過하였다. 그러나 武人 執權이 끝난 後 都兵馬使는 都評議使司로 改編되어 그 構成과 機能이 더욱 擴大 强化되었다. 宰夫(宰府, 僉議府)·밀職(密直) 以外에 3社(三司)의 庭園(正員)도 宰樞(宰樞)로서 都堂(都堂), 卽 都評議使司에 合坐(合坐)하게 되고, 여기에 賞의(商議)까지 合하여 高麗 末期에는 構成員이 70, 80名으로 擴大되었다. 그 機能도 合意 機關인 同時에 國家 庶務를 直接 管掌하는 行政機關으로 되었으며, 臨時機關에서 常設機關으로 變하였다. 왕지(王旨)나 中央의 祭祀(諸司), 地方 여러 道의 按廉使(按廉使)도 都堂에 一元化되어 道黨은 中央의 最高 政務機關이 되었다.

都評議使司는 朝鮮 王朝가 成立한 後 그대로 繼續되었다. 李成桂 는 卽位 直後 都評議使司를 最上位(最上位) 機構로 하여 이를 整備 改正했다. 그 後 1400年 ( 定宗 2年) 議政府 (議政府)로 改稱하고, 1401年 ( 太宗 1年) 門下府(門下府)를 統合하여 백규서무(百揆庶務)를 管掌하게 됨으로써 高麗의 都評議使司는 朝鮮의 議政府로 改編되었다.

같이 보기

編輯
    이 文書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 (現 카카오 )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配布한 글로벌 世界대백과사전 의 "〈高麗 王室과 元나라〉" 項目을 基礎로 作成된 글이 包含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