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韓光復團
(大韓光復團)은
1913年
組織된
獨立運動
團體이다.
慶尙北道
風紀(現
榮州市
)에서 結成되어 風紀光復團으로도 불린다.
大韓光復團에는 義兵 出身 獨立 運動家들과 啓蒙運動家,
嶺南
地域의 儒林 等 여러 階層의 人物들이 參加했으며, 祕密 結社로 組織되어 暗殺等 武力을 통한 獨立 運動을 벌였다.
共和制
國家를 計劃했으며, 滿洲의 獨立運動 勢力과 連繫해 勢力을 擴大하였다.
大韓光復團의
채기중
等 一部 勢力은
1915年
大邱에서
박상진
의
朝鮮國權回復團
과 統合,
大韓光復會
를 結成하였다. 이를 根據로 大韓光復會를 大韓光復團의 最終, 後身이라 한다
[1]
.
영주시에 大韓光復團 記念公園이 造成되어 있다.
[2]
[3]
親日符號
장승원
과 도고면腸 박용하를 處斷하였다.
大韓光復會는 1913年 풍기에서 組織된 光復團과 1915年 大邱에서 組織된 朝鮮國權回復團(朝鮮國權回復團)李 합쳐진 團體이다.
[4]
1915年 8月 25日, 大邱
달성공원
에서 結成되어 國權을 回復하고 共和制를 實現하는 것을 創立目的으로 定하고, 各 道(都)에 穀物商과 雜貨商을 열어 軍資金을 모으고 親日符號들을 處斷하면서 獨立軍을 養成하였다.
1918年 組織網이 發覺되고 主要 人物들이 檢擧되어 組織이 크게 瓦解 되었으나, 그 後에도 一部 組織員들이 滿洲로 건너가 暗殺團, 義烈團에 加入하면서 獨立運動을 끝까지 펼쳐나갔다.
[5]
光復會가 結成된
달성공원
은 1963年에 史跡 第62號로 指定되었다.
1920年 8月 美議員團 訪問을 契機로 臨時政府와 連繫해 義擧를 計劃하던 中 親日勢力들에게 發覺되어 큰 活動을 펼치지는 못했다.
1945年 8月 解放이 되면서 光復會 精神을 되살려 建國事業에 參與하고자 再建 組織을 結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