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중
(金喜中,
1947年
1月 21日
~)은
大韓民國
의
로마 가톨릭 敎會
聖職者이다. 洗禮名은
히지노
이다.
天主敎 光州大敎區
第9代 大敎區長을 맡고 있다. 이와 함께 韓國 天主敎 主敎會議 聖職主敎委員會와 民族和解主敎特別委員會 委員, 敎皇廳 宗敎間對話評議會 委員, 敎皇廳 그리스도人一致促進評議會 委員, 한국종교인평화회의 代表會長도 맡고 있다. 本貫은
鑛山
(光山)이다.
英語
,
프랑스語
,
이탈리아語
,
라틴語
,
그리스어
等 5個 國語를 能通하게 驅使하며, 작은 體軀와 內省的인 性格을 가졌음에도
跆拳道
有段者(2段)이다. 또한,
蹴球
와
卓球
等 各種 球技 種目을 涉獵했다.
1947年 2月
全羅南道
木浦市
에서 아버지 김용섭(베드로)과 어머니 박영님의 3男3女 中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兄弟로는 큰누나 김복순 修女와 兄 席中(프란치스코), 작은누나 德順(데레사), 女同生 정순(안나), 男동생 對中(요한)氏가 있다. 김희중 主敎가 牧者로서의 길을 걷는 데는 傳統的 交友 집안의 信仰背景이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6男妹 全部 다 聖職者와 修道者가 되길’ 바라는 父母와 함께 每日 미사에 參禮하면서 自然스레 司祭聖召의 싹을 키운 것이다. 김희중의 兄弟들은 “大主敎님은 洞네 親舊들이 흙장난을 하며 뛰어놀 때에도 집안에서 조용히 十字架와 聖像 앞에서 褓자기를 두르고 ‘미사놀이’를 즐기곤 했다.”라고 回想했다.
김희중 主敎는 當時 집안이 너무 가난해 언제나 緩行列車를 타고 다녔는데 恒常 冊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5分이 黃金 같은 時間”이라며 工夫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關心이 많아 神學校 放學 때면 公訴에서 궂은 일은 도맡아서 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工夫를 가르치곤 했다.
김희중 主敎는 木浦中學校와 光州 살레시오 高等學校를 거쳐 오늘날
光州 가톨릭 大學校
의 前身인 대건神學大學을 卒業했다. 1975年 當時 光州 大敎區長
윤공희
(빅토리노) 大主敎로부터 司祭品을 받은 그는 이듬해
로마
로 遊學,
敎皇廳立 그레고리오 大學
에서 ‘古代 敎會史’를 專攻했다. 김희중 主敎는 1983年부터 20年間 光州 가톨릭 大學校 敎授로 在職하였다. 在職 當時 學位論文을 作成하여 1986年 博士學位를 取得했다. 2003年 7月 9日 光州大敎區 補佐主敎로 任命되었으며, 그해 8月 主敎品을 받았다. 2009年 7月 10日에는 光州大敎區
不敎區長
大主敎로 任命되었다.
[1]
2010年 3月 25日 光州大敎區長
최창무
(안드레아) 大主敎가 敎區長職을 辭任함에 따라, 김희중 主敎가 敎區長職을 自動 承繼받아 제9대 光州 大敎區長이 되었다. 着座式은 4月 30日 午後 2時에
임동 主敎座 聖堂
에서 擧行되었다. 2010年 6月 29日
바티칸
聖 베드로 大聖殿
에서
敎皇 베네딕토 16歲
로부터
팔리움
을 받았다.
藍色 바탕의 文章 안에는 흰色 비둘기와 일곱 줄기 빛살, 세 줄기 波濤가 그려져 있다. 藍色은 天上의 色으로 永遠과 無限함을 뜻한다.
聖靈을 象徵하는 흰 비둘기는 날개와 꼬리를 사람의 손과 발로 形象化해 日常 안에서 함께하는 聖靈의 손발을 나타냈다. 弟子들의 발을 씻어준 그리스도의 섬김을 본받고 모든 이를 위한 착한 牧者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聖靈의 힘으로 敎區民 一致와 平和, 地域 福音化에 對한 意志이기도 하다.
일곱 줄기 빛살은 七聖事와 聖靈의 일곱 가지 恩師, 그리고 빛고을 光州大敎區를 비추는 빛이다. 特別히 가운데 긴 세 줄기 빛은 入門聖事人
洗禮聖事
,
堅振聖事
,
聖體聖事
를 나타낸다.
세 줄기의 波濤는 敎區 地域 特徵인
多島海
의 푸른 물결과 內陸을 흐르는
榮山江
,
蟾津江
,
耽津江
을 表象한다.
文章 위 二重 十字架는 光州大敎區와
使徒 바오로
의 칼을 象徵하며 文章 아래에는 司牧標語인 ‘主님 뜻대로(FIAT VOLUNTAS DOMINI)’가 적혀 있다. 司牧標語는 루카 福音書 1張 38節 말씀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모든 것을 내어 맡긴 聖母 마리아의 模範을 따르겠다는 意志다. 標語가 적힌 리본의 파란色은 聖母님 色깔을 意味한다.
가장 윗部分에 자리한 4個의 술을 달고 있는 갓은 韓國의 첫 司祭
聖 金大建 안드레아
를 象徵한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