草創期 (2005~2006)
編輯
2005年 4月
커리지 매치 入賞 以後 2005年 下半期 드래프트에서 POS(現
MBC게임 히어로
)의 1次 指名으로 入團한 김택용
[11]
은
2006年
10月,
新韓銀行 스타리그 2006 Season 2
를 통해서 메이저 個人리그에 正式 데뷔하였다.
[12]
. 當時 24强 풀리그를 3戰 全勝으로 通過하며 오영종以後 가을의 傳說을 이어갈 新銳 프로토스로 注目받았으나, 16强에서
이병민
(當時
KTF 매직엔스
)에게 1對 2로 逆轉敗하여 탈락하고 말았다.
3.3 革命家 김택용 1.0 (2007)
編輯
김택용의 選手人生이 뒤바뀐 것은 그 다음 해인
2007年
이었다. 그때 처음 出戰한
곰TV MSL 시즌1
4强에서 프로토스 最强者
강민
(當時 KTF 매직엔스)을 3:0으로 完破하며 決勝에 오르는 異變을 演出한 김택용은 自身의 決勝 相對로 當時 兩大 스타리그 天下統一을 눈앞에 둔 마재윤(當時
CJ 엔투스
所屬, 現在는 永久除名됨)을 만났다.
[13]
前無後無한 偉業인 MSL 5連續 決勝 進出 및 該當 시즌 兩大 個人리그 同時 決勝 進出 後 스타리그 優勝을 達成한 마재윤을 相對로 김택용이 이길 確率은 '2.69%'로 策定되었는데,
[14]
무엇보다 '프로토스의 災殃'이라고 불릴 程度로 저그 代 프로토스展에 能한 마재윤이었기에 모든
e스포츠
팬들과 關係者들이 그의 絶對的인 優勢를 점쳤다.
[15]
2007年
3月 3日
, 後에 '3.3 革命'이라고 불리게 되는 決勝戰 當日, 김택용은 旣存의 프로토스 臺 저그前 槪念 自體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運營을 펼치면서 마재윤을 3:0으로 制壓하면서 優勝을 차지하였고, e스포츠 歷史上 最大의 異變을 演出하였다. 當時 競技 內容과 結果는 現在까지 膾炙 될 程度로 꽤나 衝擊的이었으며 大多數의 豫想과 確率을 뛰어넘은 김택용에겐 '奇跡의 革命家'라는 別名이 뒤따르게 된다.
當時 滿 17歲의 나이에 個人리그 最年少 優勝,
[16]
單숨에 最强者 마재윤을 凌駕하는 '本座' 候補로 注目을 받게 된 김택용은 以後 自身이 반짝 優勝者가 아니라는 것을 立證하는 行步를 보이며 本格的인 프로토스 時代를 열었다. 더블 넥서스를 基盤으로 한 牽制와 運營認 '非水流(匕首流)'라 불린 그의 大抵그前 플레이는 많은 프로토스 유저들의 벤치마킹 對象이 되었는데,
[17]
그 날 以後로도 如前히 극강의 臺프로토스展 實力을 誇示하던 마재윤을 第5回 슈퍼파이트, 2007
블리자드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 等의 大會에서 만날 때마다 擊破, '마재윤 天敵', '저그 킬러'等의 이미지를 鞏固히 構築했다.
곰TV MSL 시즌2
4强에서
박태민
(當時
SK텔레콤 T1
)을 꺾고 다시 한番 저그를 넘어 2回 連續 MSL 決勝에 오른 김택용은 後日 '擇뱅'
[18]
으로 같이 묶여 불릴 라이벌
송병구
(
三星電子 칸
)를 決勝 相對로 만났는데, 專門家들은 當時 兩大 個人리그 4强 進出을 達成한 프로리그 最高의 選手이자 프로토스展 實力에서 斷然 優位로 꼽히는 송병구의 絶對 優勢를 豫想했다.
[19]
그리고
2007年
7月 14日
, MSL 歷史上 첫 프로토스 代 프로토스 決勝이 펼쳐진 곰TV MSL 시즌2 決勝戰에서 김택용은 熾烈한 3:2 接戰 끝에 송병구를 꺾고 MSL 2回 連續 優勝을 차지하였다. 이 勝利로 김택용은 프로토스 史上 첫 個人리그 2回 連續 優勝者이자 個人리그 歷史上 最年少 2回 優勝者로 登極하였다.
8月에 열린 國際 大會인 IEF 2007 스타크래프트 部門 決勝에서 마재윤을 相對로 또 다시 壓勝을 거둔 김택용은 2007年에만 無慮 4個의 個人展 優勝 트로피를 獲得하였다. 當時까지만 해도 프로리그 成績이 名聲에 비해 平易하다는 指摘을 받았으나,
[20]
個人리그에서 수많은 名勝負들을 製造하면서 實力에 對한 疑問을 拂拭시켰다.
마침내 김택용은
2007年 9月
KeSPA
랭킹에서 마재윤을 밀어내고 歷代 프로토스 史上 最初로 KeSPA 랭킹 1位에 오르는 氣焰을 吐했다.
[21]
9月 13日에 開幕한
곰TV MSL 시즌3
에서 3回 連續 優勝을 闡明한 김택용은
EVER 스타리그 2007
開幕展에서 디펜딩 챔피언
김준영
(當時
한빛 스타즈
)을 壓倒하여 '眞正한 저그의 災殃'이라는 評價를 듣기 始作했다.
[22]
MSL에서 김택용의 첫 危機는 16强부터 찾아왔는데, 진영수(當時
STX SouL
, 現在는 永久除名됨)에게 1敗를 當한 김택용은 그 해 最高의 프로토스 臺 테란展
[23]
을 선보이며 逆轉勝, 以後 8强에서 CJ 엔투스 저그
한상봉
을 3:0으로 完破하며 저그前 5錢3先勝制 連勝을 이어나갔다.
11月 10日
,
서지훈
(當時 CJ 엔투스)을 꺾고 MSL 3回 連續 決勝 進出에 成功한 김택용은 프로토스 最初의 3連續 MSL 決勝 進出 記錄을 세우며 本座 登極을 눈앞에 두는 듯 했다.
[24]
決勝 相對로 新銳 테란
박성균
(
위메이드 폭스
)을 만난 김택용은 大多數 專門家와 프로게이머들에게 絶對 優勢라는 評價를 들으며 決勝에 入城했다.
[25]
[26]
[27]
2007年
11月 17日
, 김택용은 곰TV MSL 시즌3 決勝戰에서 박성균에게 古典 끝에 1:3 敗北를 當하며 첫 準優勝의 苦杯를 마셨다. 豫想치 못한 完敗에 心的으로 크게 흔들린 김택용은 以後 EVER 스타리그 2007 8强에서 마재윤에게 禪僧을 許容하며 周邊의 憂慮를 샀다. 그러나 2007年 最高의 明鏡機
[23]
를 펼치며 奇跡的으로 大逆轉, 生涯 첫 스타리그 4强에 올랐으나, 準決勝에서 라이벌 송병구에게 虛無하게 敗頹하고 3/4位戰에서 신희승(當時
이스트로
)을 꺾으며 3位를 차지하는데에 滿足해야 했다.
SK텔레콤 T1 利敵과 半年間의 沈滯 (2008 上半期)
編輯
'저그의 惡夢'
[28]
이라 불리던 김택용의 臺 저그前이 公式戰에서 처음 破毁된 것은
2008
年 1月 8日이었다. 前 시즌 準優勝者 身分으로 參加한
곰TV MSL 시즌4
에서 後日 저그 라이벌로 자리 잡게 될 EVER 스타리그 2007 優勝者
이제동
(當時
르까프 OZ
)을 自身의 相對로 指名한 김택용은, 블루스톰 맵에서 稀代의 名勝負 끝에 不運하게 惜敗하였다.
[29]
[30]
名競技의 被害者가 된 김택용은 다음 競技에서 初步的인 失手를 저지르며 敗北, 生涯 첫 32强 脫落이라는 大異變을 演出했다.
저그前 神話가 깨진 김택용이었으나,
2008年 2月
KeSPA 랭킹 1位를 차지하는 等 如前히 最高의 프로토스였고, 이로 因해 名家
SK텔레콤 T1
은 以後 가장 成功的인 移籍 事例로 꼽힐 트레이드를 決心하였다.
[31]
2008年
2月 18日
, 김택용은 e스포츠 歷代 史上 最高 移籍額인 現金 2億원에 MBC게임서 SK텔레콤 T1으로 現金 트레이드 되었다.
[32]
[33]
박용운
과 같이 T1으로 떠나게 된 김택용은 當時 히어로 센터에서 열린 MBC게임 히어로의 選手 및 任職員들이 參席한 告別行事에서 장근복 球團主에게 그동안 活躍한 功勞를 認定받아 感謝牌를 傳達받았다.
[34]
김택용은 移籍 直後인
2008年
2月 29日
,
박카스 스타리그 2008
8强에서
박영민
(CJ 엔투스)을 꺾으며 2連續 스타리그 4强 進出을 達成하였다. 스타리그 準決勝에서 後日 最高의 테란이 될
李泳鎬
(當時
KTF 매직엔스
)를 만난 김택용은 안티캐리어 빌드라는 李泳鎬의 戰略에 맞서 執拗한 리콜을 試圖하며 名勝負를 펼쳤으나 1:3으로 敗하며 糞瘻를 삼켰다.
[35]
以後 김택용은 移籍生으로서 새로운 팀의 環境에 適應하는데 힘겨움을 느꼈는데, 그로 인한 競技力 低下는
2008年
4月 12日
新韓銀行 프로리그 2008
이 開幕하면서 水面으로 드러났다.
[36]
팀의 確實한 個人展 카드로 期待를 모았던 김택용은 豫想 外로 들쑥날쑥한 成跡을 보이며 不振하기 始作했고, 雪上加霜으로 5月에는 오른쪽 손목 痛症을 呼訴하며 病院서 精密 診斷을 받는 等 코칭스태프와 팀 關係者들의 애를 태웠다.
[37]
期待를 모았던 個人리그에서도
EVER 스타리그 2008
과
아레나 MSL
에서 同時에 上位 라운드 進出에 失敗하며 脫落, 스타리그 16强, MSL 32强이라는 초라한 成績表만 남긴 김택용의 不振 原因은 急激한 體力 低下로 인한 集中力 低下와 旣存의 競技 스타일 孤樹로 判明되었는데, 以後 지칠대로 지친 김택용은 프로리그에서의 형편없는 勝率 탓에 한동안 特別 管理를 받으며 競技에 出戰하지도 못하는 處地로 轉落하였다.
[38]
이윽고
2008年
7月 27日
,
하이트 스파키즈
(以後 CJ 엔투스에 吸收 合倂)와의 프로리그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에 出戰한 김택용은
이승훈
에게 狙擊을 當한 뒤 3:3 狀況에서 에이스 決定戰에 出戰,
박찬수
에게 痛恨의 敗北를 當하며 그와 함께 팀의 決勝行 亦是 물거품이 되었다. 旣存의 不振한 成跡과 더불어 이 하루 2敗로 인해 一部 SK텔레콤 T1 팬들에게 '逆賊', '먹튀'로 몰린 김택용은 팀 內의 애物단지가 되어버려 完全히 沒落하는 듯 하였다.
[36]
김택용 2.0 (2008 下半期)
編輯
半年 가까이 沈滯에 빠졌던 김택용은
2008年 10月
인크루트 스타리그
8强에 올라 라이벌
송병구
와의 對陣을 만들었다.
10月 10日
의 8强 2次戰, 송병구를 相對로 有利했던 雰圍氣를 살리지 못하고 結局 1:2로 무릎을 꿇은 이 熾烈한 血戰은 비록 結果的으로는 탈락했으나, 김택용에게는 跳躍의 契機가 되는 競技였다. 後日 김택용은 이 競技에서 깨달음을 얻은 以後 實力과 勝率이 飛躍的으로 上昇하였다고 回顧하였다.
[36]
스타리그 8强戰이 끝난 바로 다음 날인 10月 11日, 김택용은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 32强에서 프로토스만 두名을 꺾어내며 3시즌 만에 MSL 16强에 復歸에 成功하였다.
16强 相對로 진영수를 만난 김택용은
水痘
에 걸려 마스크를 着用하는 等 아픈 몸을 이끌고 出戰, 鬪魂을 불사른 完勝으로 8强 進出에 成功하였다.
[39]
以後 8强에서
理性은
(三星電子 칸)을 3:0, 4强에서
윤용태
(
熊進 스타즈
)를 3:1로 一蹴, 全盛期 以上의 技倆을 裝着한 '김택용 2.0'으로 돌아왔다는 評價 속에 自身의 通算 네 番째 MSL 決勝 進出을 達成하였다.
[36]
[40]
[41]
김택용의 MSL 決勝 相對는 最高의 氣勢를 달리던
허영무
(三星電子 칸)였는데, 伯仲勢 속에서 專門家들은 허영무의 僅少한 優勢를 점쳤다.
[36]
[42]
2008年 11月 22日, 김택용은 클럽데이 온라인 MSL 決勝戰에서 허영무에게 禪僧을 내준 後 내리 3連勝, 3:1 快勝을 거두며 自身의 세 番째 MSL 優勝을 達成하였다. 이를 通해 김택용은 프로토스 最初 個人리그 3回 優勝者 및 歷代 네 番째 金배지(MSL 3回 優勝의 象徵) 獲得者가 되었다.
이 맘 때 김택용은 인크루트 스타리그 優勝者 송병구와 함께 兩大 個人리그를 制霸한 프로토스로서 2007年에 이은 第 2의 '擇뱅 時代'를 열었다는 評을 들었는데, 12月 7日
中國
우한
에서 열린 IEF 2008 스타크래프트 部門 決勝에서 송병구를 2:1로 꺾으며 2007年에 이어 2連續 優勝을 達成, 絶頂에 達한 技倆을 선보였다.
[41]
[43]
兩大 個人리그 優勝者間의 對決에서 勝利한 김택용은,
新韓銀行 프로리그 08-09
開幕 後 5連勝을 달리는 等 데뷔 以後 最高의 프로리그 活躍을 선보이며 팀의 連勝行進을 牽引하는 渦中 波瀾萬丈했던 한 해를 마쳤다.
프로리그 最强者의 個人리그 殘酷史 시즌1 (2009)
編輯
KeSPA 랭킹 3位, MSL 디펜딩 챔피언으로 始作한 김택용의
2009年
은, 프로리그를 비롯해 全體的으로 壓倒的인 고승률과 그에 비해 主要 個人리그에서의 相對的인 不振을 겪은 것으로 記憶되었다.
例年의 氣勢에 힘입어 프로리그와 이벤트前인 TG삼보-인텔 클래식 시즌2 等에서 猛活躍하던 김택용의 個人리그 惡靈은 1月
BATOO 스타리그
36强 脫落부터 따라붙었다. 以後
로스트社가 MSL
32强에서도 瞬間的인 컨디션 亂調로 早期 탈락하는 異變에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이는 김택용의 全體的인 氣勢를 꺾진 못 하였고,
손찬웅
(
和承 OZ
)의 負傷으로 인해 열린 BATOO 스타리그 와일드카드 決定戰을 全勝으로 突破하며 16强에 막車로 合流,
2009年 2月
次 KeSPA 랭킹에서 1位를 차지하며 1年 만에 高地를 奪還하였다.
以後 김택용은
2月 8日
TG삼보-인텔 클래식 시즌2 決勝에서 허영무를 3:1로 擊破하며 優勝, 프로토스 첫 公認리그 4回 優勝을 達成하였다. 한便
新韓銀行 위너스리그 08-09
에서는 올킬 2回가 包含된 最多勝(20勝)을 記錄하는 等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 自身 外에 李泳鎬, 이제동과 송병구로 이뤄진 4人의 最强者를 指稱하는 所謂 '택뱅리쌍'의 核으로 急浮上하였다.
最高의 氣勢를 보이던 김택용은 스타리그 決勝行이 有力視 되었으나,
BATOO 스타리그
4强에서 팀 同僚
정명훈
에게 0:3 完敗를 當하며 EVER 스타리그 2007 準決勝, 박카스 스타리그 2008 準決勝에 이어 다시 한番 決勝 門턱에서 挫折하였다.
6月에 열린
박카스 스타리그 2009
本選에서는
김명운
(웅진 스타즈)의 奇想天外한 戰略에 當해 16强에 그쳤고,
아발론 MSL
에서도 有力한 優勝候補로 注目받았으나 8强에서
변형태
(當時 CJ 엔투스)와의 血戰 끝에 惜敗하였다.
個人리그와 달리 프로리그에서 김택용의 氣勢는 식을 줄 몰랐고, 正規시즌 53勝(14敗, 勝率 79.1%)을 記錄하며 54勝으로 共同 多勝王인 李泳鎬와 이제동에 1勝 뒤지는 多勝 3位를 記錄, 팀의 正規시즌 1位와 프로리그 通算 여섯 番째 優勝을 이끈 一等功臣으로 評價받으며 新韓銀行 프로리그 08-09 MVP(共同)로 選定되었다.
8月에 열린
WCG 2009
國家代表 選拔戰에서는 윤용태, 李泳鎬, 박찬수 그리고 決勝에서 만난 송병구까지 次例로 擊破하고 優勝을 차지, 生涯 첫 WCG 國家代表 選手가 되었다.
프로리그 節戶曹의 氣勢를 타고
10月 14日
EVER 스타리그 2009
36强에 出戰한 김택용은 新銳
이영한
(위메이드 폭스)에게 덜미를 잡히며 16强 進出에 失敗, 스타리그와의 질긴 惡緣을 이어갔다.
以後
中國
청두
에서 열린 WCG 2009 그랜드 파이널에서 銅메달을 獲得하고 돌아온 김택용은 12月 3日
네이트 MSL
32强에서 마재윤을 잡아내는 等 最終戰까지 갔으나
이신형
의 올인 戰略에 當해 탈락하며 個人리그에서 唯獨 따르지 않는 運에 다시 한番 울고 말았다.
12月 9日
, 2009 大韓民國 e스포츠 對象에서 올해의 프로토스로 選定되며 榮辱의 한 해를 마감하였다.
잃어버린 1年 (2010)
編輯
2009年 11月
에 開幕한
新韓銀行 프로리그 09-10
에서 初盤까지만 해도 좋은 成跡을 거둔 김택용이었으나,
2010年
으로 해가 바뀌고 위너스리그가 開幕하자마자 競技力이 엄청난 速度로 急激하게 떨어지기 始作하였다.
新韓銀行 위너스리그 09-10
에서 3勝 7敗라는 MSL優勝者 답지 않은 結果에 고개를 떨군 김택용은 總體的인 技倆 亂調에 빠졌고, 個人리그인
大韓航空 스타리그 시즌1
36强과
하나대투증권 MSL
32强에서 無氣力한 모습을 보여주며 脫落하였다.
그 後로 프로리그에서 그 前까지 本人의 最多 連霸 記錄인 4連霸를 넘는 6連敗라는 最惡의 成績을 記錄하는 等, 6月 21日 新韓銀行 프로리그 09-10 5R 5週次 에이스 決定戰에서 新노열(위메이드 폭스)을 꺾은 것이 2個月 만의 프로리그 1乘馹 程度로 不振하였다.
이 무렵 김택용은 어쩌다가 한番씩 過去의 技倆이 發揮되는 競技가 있을 때마다 팬들에게 '擇新'(澤神)이라고 불렸는데,
[44]
大韓航空 스타리그 시즌2
에서 華麗한 競技力으로 3시즌 만에 스타리그 16强 進出에 成功,
빅파일 MSL
32强에서도 3저그 條를 2連勝으로 뚫으며 3시즌만에 MSL 16强 舞臺에 復歸하였다. 特히 現役 選手로서 最多인 11回 連續 MSL 進出(現在 最長期 連續進出 記錄은 김택용의 14回 連續)이라는 大記錄을 세우며 年初부터 繼續된 슬럼프를 얼추 걷어내는 듯 하였다.
個人리그에서 끌어올린 雰圍氣를 통해 7月 6日 新韓銀行 프로리그 09-10 5R 6駐車에서 和承 OZ의 이제동을 相對로 23勝을 거둠과 함께 팀의 포스트시즌 進出을 確定지었으나, 全 시즌(53勝)의 折半도 안되는 프로리그 承水路 팀內 3位의 成績表를 받아들였다.
以後 프로리그 포스트시즌에서 連勝을 이어나가며 6强 플레이오프와 準플레이오프 MVP를 獨食하며 SK텔레콤을 廣岸里 決勝戰까지 올려놓는데 一助, 復活에 近接했다는 坪이 돌 程度의 技倆을 보여주었다.
이 여름의 活躍을 基盤으로
2009年 11月
2位 以後로 2010年 7月 26位까지 持續的으로 下落했던
KeSPA
랭킹도 8月에만 14階段을 뛰어오르며 12位에 登載되었다. 그러나
8月 7日
廣岸里
에서 열린 09-10 프로리그 決勝戰에서 팀과 함께 敗하며 畫龍點睛을 찍지 못 하였고, 兩大 個人리그에서도 테란에 발목을 잡히며 8强 進出이 挫折되고 말았다.
8月에 열린 WCG 2010 韓國代表選拔戰에서는 8强, 10月에 參加한 IEF 2010에서는 송병구를 2:1로 꺾고 2007年, 2008年에 이은 3番째 優勝을 차지하였다.
漸漸 살아나기 始作한 김택용은 10月
新韓銀行 프로리그 10-11
이 開幕하자 프로리그 1라운드에서 10戰 全勝을 거두며 單一 라운드 勝數 新記錄을 세웠다. 그러나 11月
박카스 스타리그 2010
36强에서 이영한에게 0:2 敗北, 다시 한番 個人리그에서 苦杯를 마셨다.
프로리그 最强者의 個人리그 殘酷史 시즌2 (2011~2012年 4月)
編輯
김택용은
2011年 1月
開幕한
新韓銀行 위너스리그 10-11
에서 STX SouL, 위메이드 폭스 그리고
空軍 에이스
를 相對로 史上 類例없는 3競技 連續 올킬이라는 大記錄에 힘입어 위너스리그 15連勝을 達成, 프로리그 正規 시즌 個人展 最多連勝 新記錄을 樹立하였다.
[45]
28勝으로 歷代 위너스리그 한 시즌 最多勝 記錄
[46]
을 세운 김택용은 위너스리그 포스트시즌에서도 猛活躍을 멈추지 않았다. 4月 2日 위너스리그 플레이오프 7세트에 大將으로 出戰한 김택용은 和承 大將 이제동을 꺾고 팀을 決勝으로 牽引하며 플레이오프 MVP로 選定되었다.
[47]
2011年
4月 9日
, 디펜딩 챔피언
KT 롤스터
와의 위너스리그 決勝戰 5세트에 마무리로 起用된 김택용은 KT 大將 李泳鎬를 沮止하며 創團 以後 첫 위너스리그 優勝이라는 榮譽를 팀에 안겼다. 이 勝利로 김택용은 프로리그 포스트시즌 多勝 單獨 1位(15勝)로 올라서는 榮光을 누렸다.
[48]
以後 김택용은 全 시즌 李泳鎬가 세웠던 單一 正規시즌 最多勝(57勝) 記錄을 更新하는 63勝(15敗, 勝率 80.8%)을 記錄하며 팀을 프로리그 正規시즌 1位로 이끌었다. 이어진 KeSPA 施賞式에서 김택용은
新韓銀行 프로리그 10-11
正規시즌 多勝王과 MVP를 모두 거머쥐는 榮譽를 안았다.
[49]
이러한 프로리그에서의 面貌와는 달리, 같은 期間의 個人리그에서는 實績을 남기지 못했다.
1月
피디팝 MSL 2010
16强에서 라이벌 송병구에게 0:2으로 敗해 탈락한 것을 始作으로, 4月
ABC마트 MSL 2011
32强에서 李泳鎬에게만 두番 敗하며 16强 進出에 失敗했다. 김택용은 早期 脫落의 原因 中 하나로 팀의 練習時間 配分을 指摘했는데, 인터뷰에서 "팀에서는 너무 프로리그만 생각을 하니까 選手 立場에서는 섭섭하다. 프로리그에서 지면 팀이 打擊을 입듯이 選手도 個人리그에서 탈락하면 打擊이 큰데 그걸 잘 몰라주는 것 같다."라며 쓴소리를 남겼다.
以後
6月 17日
스타리그 프로-癌 豫選 K組 4强에서
신대근
(STX SouL)에게 1:2로 惜敗, 2007年 곰TV MSL 시즌1 優勝 以後 처음으로 個人리그 豫選 脫落의 쓴 盞을 마셨다. 이로 因해 김택용의 스타리그 11回 連續 本選 進出 記錄은 終了되었다.
2011年
10月 9日
, 김택용은 IEF 2011에서 송병구를 3:2로 꺾고 2007, 2008, 2010年에 이은 4番째 優勝을 하게 된다.
2011年
末에 開幕한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1
에서 1라운드 前 競技에 出戰했으나 4勝 3敗로 前 시즌 多勝王 다운 成跡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2라운드에 들어서서는 5勝 2敗, 3라운드에서 2勝 2敗를 하여 都合 11勝 7敗를 記錄하였다.
또한 '2011年 올해의 프로토스'部門에서 허영무와 함께 2巴戰을 벌여 論難이 일기도 했는데 施賞式 當日, 김택용이 올해의 프로토스賞을 受賞했다.
6個月만에 다시 열린
2012年
3月 31日
에 2012 스타리그 豫選에서 決勝까지 進出하였으나, 相對戰績에서 壓倒的으로 優勢하던 新노열에게 1:2로 敗北해 또다시 스타리그 本選 進出에 失敗하였다.
하지만
2012年
4月 8日
에 열린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1 決勝戰에서 하루 2勝을 챙기며 팀의 목마른 優勝을 거머쥐게 되는데 큰 役割을 하며 2011年에 이어서 2年 連續으로 프로리그 最强者로 다시금 설 수 있었다.
스타크래프트Ⅱ에서의 不振, 끝나지 않은 스타리그와의 惡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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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용은 새로 開幕한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2에서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스타크래프트 Ⅱ를 竝行해서 出戰했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 實力은 如前히 健在하지만, 스타Ⅱ에서는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에서의 實力을 내지 못했다.
2012年 8月
까지 택뱅리쌍 一圓 中에서 김택용만 唯一하게 스타Ⅱ에서의 勝利를 하지 못했다. (0勝 6敗) 더군다나 2012年 봄까지만 해도 스타Ⅱ를 完全히 理解하지 못한듯한 플레이를 보이고 있었지만, 김택용은 2012年 여름이 되어서 스타Ⅱ를 徐徐히 實力을 쌓고 있었다. 旣存의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 스타리그가 스타크래프트 Ⅱ로 種目 轉換한 뒤에 열린 첫 豫選에 參加했으나, 스타Ⅱ의 不足한 實力을 如實히 들어내면서 1:2로 新銳選手에게 지며 豫選탈락하였다. 또한 GSL 選手들과 맞붙은 WCS 豫選에서 프나틱의
장재호
를 만나 無氣力하게 0:2로 敗北하여 탈락하였고, WCG 2012 豫選에서도 백동준에게 0:2로 敗北해 스타Ⅱ 種目으로 열린 競技에서 모두 敗北하였다. 김택용은 스타2리그 뿐만아니라 스타1리그에서도 2010年 여름부터 3年째 스타리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012年 8月 12日 마침내 염보성을 相對로 어렵게 프로리그 스타2 種目에서 처음으로 勝利를 거두었다(1승 6敗). 結局 不振을 克服하지 못한 채 2012年 8月 케스派 랭킹 22位로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後 2012年 8月 18日 김정우 마저 김택용의 스타2 勝利 祭物이 되었다. 엘리前까지 가는 血戰 끝에 스타Ⅱ에서 頭角을 돋보이는 김정우를 擊破하였고, 2012年 9月 2日 SK플래닛 스타 프로리그 시즌2 準플레이오프 2次戰에서 다시 한番 염보성을 스타Ⅱ로 擊破하면서 조금씩 氣勢를 올렸다.
포스트시즌 戰績을 包含해 3勝6敗의 低調한 記錄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12年 9月
MLG vs Proleague 大會(以下MvP)가 열렸다. 김택용은 처음 放送된 競技에서 Huk에게 2:0 完敗를 當했지만 以後 다른 選手들을 이기며 4連勝을 하는데 成功했다. 以後에 全勝을 하며 10勝 2敗라는 性的으로 協會所屬 共同3位에 올랐다. 初盤에 活躍이 대단해서 스타2에서 김택용의 實力이 뛰어나는가 싶었으나, 리그가 進行될수록 漸漸 牌가 늘어서 아직까지는 더 지켜봐야 될듯하다. 하지만 個人的인 事情으로 棄權하여 記錄은 無意味 해졌다. 大會를 棄權하게 된 以後에 素養敎育에서도 모습을 비추지 않고 SK텔레콤 T1과 年俸協商 再契約이 되지 않았다는 所聞이 떠돌면서 各種 커뮤니티에서 隱退說이 나돌았으나 SK가 모든 選手들과 再契約을 했다는 消息이 들리면서 김택용은 選手 生活을 이어나갈수 있었다.
隱退 (2013年 9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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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團의 心臟으로 轉換되면서, 김택용은 自由의 날개 時節보다는 그나마 나아진 競技力으로 因해 김택용의 活躍을 期待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팀 後輩 정윤종의 너무나 뛰어난 實力과 聯盟에서 移籍한 원이삭 等의 活躍으로 김택용은 설 자리를 完全히 잃게 되었으며, 프로리그에 10錢도 채 나오지 못했다. 12-13시즌이 끝나고, 게임에 完全히 興味를 잃어 苦心하던 끝에 김택용은 結局
2013年
9月 9日
프로게이머 隱退를 發表했다.
以後 아프리카TV 個人 放送을 통해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를 다시 始作하면서 BJ로 轉業하게 되었다.
BJ 活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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個人 放送을 하다가 BJ소닉이 開催하는 스타 大會에 參加하였고 2014年 3月 15日, 廣韻大學校 大講堂에서 열린 第9次 픽스 소닉 스타리그 決勝에 올라 조일장을 3:2로 꺾고 優勝을 차지하였다. 工巧롭게도 광운대 大講堂은 김택용이 2008年 허영무를 꺾고 優勝했던 그 場所이기도 하다. 以後 2015年 第11次 스베누 소닉 스타리그 시즌2에도 參加하여 決勝까지 올랐으나 저그
조일장
에게 0:3으로 完敗하며 準優勝을 거뒀다.
그러다가 2016年부터 아프리카TV가 開催하는 반트 對國民 스타리그에 參加해 저그
김정우
에게 1:3으로 敗北하며 準優勝을 거뒀고, 以後 아프리카TV 스타리그로 名稱이 變更된 뒤 ASL 시즌2에 參加하였으나 8强에서 테란
염보성
에게 0:3으로 完敗하며 탈락하였다. 2017年 ASL 시즌3 4强에서는 저그
이영한
에게 1:3으로 敗北, ASL 시즌4 4强에서는 最强者로 君臨하는 테란
李泳鎬
에게 1:3으로 敗北하며 탈락하였고 以後 12月 入隊하였다.
2019年 8月 除隊 後에는 個人 放送에 復歸하였고, 2020年 ASL 시즌9에 參加하여 8强에 올랐으나 準프로 資格의 아마추어 出身 저그 박상현과의 맞對決에서 2:3으로 惜敗하며 탈락하였다. ASL 시즌10에서는 이영한에게 勝利하였지만, 테란
신상문
과
정영재
에게 敗北하며 24强 A組에서 早期 脫落하였다. 이듬해 ASL 시즌11에선 김정우에게 勝利했으나, 저그
임홍규
와 토스
장윤철
에게 敗北하며 16强에서 탈락했다.
3.3 革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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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年
3月 3日
, 곰TV MSL 시즌1 決勝에서 當時 最高의 저그였던
마재윤
을 3:0으로 꺾고 優勝한 事件을 指稱한다. 歷代 e스포츠 決勝戰에서 3:0 스코어가 적지 않게 나왔지만, 이날의 競技가 특별했던 理由는 몇 가지 狀況的인 背景이 存在했기 때문이었다.
當時 마재윤은
MSL
5回 連續 決勝 進出, 3回 優勝이라는 大記錄을 保有하고 있었다. 또한 競技가 있기 1週日 前,
新韓銀行 스타리그 2006 시즌3
決勝에서
이윤열
(當時
팬택 EX
)을 3:1로 完破하고
로열로더
로 登極하는 等 最高의 氣勢뿜고 있었다. 이 時期 마재윤의 競技力은 種族상성, 맵 밸런스와 殺人的인 스케줄을 모두 無視할 만큼 强力했으며, 팬들 및 專門家들로부터 "敵手가 없다"는 評價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마재윤이 優勝했던 스타리그人
新韓銀行 스타리그 2006 시즌3
에서는 當時 있었던 맵들이 거의 테란들이 좋다고 評價받는 맵들이었다. 特히 마재윤의 2006 시즌 프로토스展 成跡은 21勝 3敗, 勝率 87.5%에 達했다.
反面, 當時의 김택용은 MSL에 처음 進出한 新銳 프로토스였으며, 準決勝에서
강민
(當時
KTF 매직엔스
)을 3:0으로 꺾고도 "리그의 興行을 망쳤다"는 비아냥을 들을 程度로 네임밸류가 낮았던 選手였다. 決勝이 確定된 김택용은 아직 決勝 相對가 確定되지 않은 狀況에서 "마재윤 選手와 붙고 싶다"고 인터뷰를 하였으며
[50]
, 競技 直前 出師表에서는 "3代0 되지 않게 練習 熱心히 하시라", "마재윤度 저그 中 하나일 뿐이다"
[51]
라며 自信感을 드러냈다. 그러나 競技 前 大多數의 커뮤니티들은 마재윤의 優勝을 旣定事實化했고, 김택용의 事前 인터뷰는 '新人의 虛勢' 쯤으로 置簿했다.
더구나 決勝戰을 코앞에 둔 김택용이
MBC게임 히어로
의 푸켓 團體休暇에 參加했다는 消息이 알려지자, 많은 이들은 "優勝은 이미 抛棄하고 놀러다닌다"는 等 嘲弄을 서슴지 않았다. 甚至於 MBC게임이 製作한 決勝戰 廣告조차 김택용의 勝利 確率을 '2.69%'로 策定하는 等 모든 豫想과 데이터는 마재윤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決勝戰 當日, 김택용은 모든 이의 豫想을 뒤엎고 完璧한 저그前 運營을 통해 마재윤을 3:0으로 制壓하며 當時 基準으로 歷代 最年少
[52]
優勝을 차지하였다.
'프로토스의 災殃'이자, '天才테란' 이윤열을 制壓하고
스타리그
의 頂上까지 登極하여 그야말로 前無後無한 '本座' 稱號를 公認받은 마재윤의 帝國이 一週日 만에 프로토스에게 무너지는 모습은 많은 이들을 衝擊에 빠뜨렸고, 그만큼 奇跡的이며 革命과도 같은 勝利를 爭取한 김택용에겐
奇跡의 革命家
라는 別名이 붙었다.
當時 세운 메이저 個人리그 最年少 決勝 進出과 優勝 記錄은 後에 李泳鎬가 박카스 스타리그 2008에서 새로이 作成하였는데, 김택용의 프로토스 最年少 優勝 記錄은 아직 깨지지 않았으며 프로토스 最年少 決勝 進出 記錄은 곰TV MSL 시즌4에서
김구현
(
STX SouL
)이 更新하였다.
6.20 暴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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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年
6月 20日
空軍 ACE
所屬 '暴風 저그'
홍진호
가 프로리그에서 김택용에게 勝利한 事件을 일컫는다.
當時 홍진호는 入隊 以後 勝利 없이 5敗만을 記錄 中이었던 反面 김택용은 49勝을 쓸어담은 有力한 多勝王 候補였다. 홍진호는 바로 前 競技에서
김승현
(
熊進 스타즈
)에게 좋지 못한 競技力을 보이며 敗北했기 때문에 大部分의 팬들과 專門家들은 김택용의 樂勝을 豫想했다.
그러나 홍진호는 全盛期 時節을 聯想시키는 이른바 '暴風'을 선보이며 끊임 없는 드臘을 通해 김택용의 主要 建物들을 破壞하며 勝利를 거뒀다. 홍진호의 豫想 밖의 勝利에 수많은 스타크래프트 팬들이 놀라워하였다. 홍진호는 2時22分 頃에 2個의 오버로드에 2個의 히드라를 실어 2.22cm드臘하여 케스派랭킹 2位, 프로리그 多勝랭킹 2位인 김택용을 相對로 勝利하였는데, 그 날 競技는 同時間帶 視聽率 1位에 오르는 氣焰을 吐했고(지상파 包含), 當日 全國에는 장마前線의 影響으로 全國에 비가 내렸다. 當時 홍진호를 象徵하는 數字 2街 겹치는 時間 2時 20分부터 始作되어 29分에 끝났다고 알려져 이 時間代를 뜻하는 '황시'에서 着眼하여 '黃時代첩'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이 事件은 김택용이 以前에 空軍 ACE 所屬이었던
최인규
와
임요환
에게 하루 2敗를 했었던 逸話와 比較되어 膾炙되기도 한다.
以後 2010年 4月 11日 新韓銀行 09-10 4라운드 SK텔레콤 T1-空軍展 3세트에서 홍진호를 꺾으며 雪辱에 成功하였다.
김택용 入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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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月 20日 月曜日, 김택용은 本人의 個人放送에서 入隊 公知를 띄웠다. ASL 시즌4 背景音樂으로 '김광석-二等兵의 便紙'를 使用하기도 했고, 8强 勝者 인터뷰에서 直接 마지막일 수 있는 大會라고 言及하는 等 김택용은 軍 入隊에 對한 豫告를 持續的으로 해왔다. 11月 20日 10時 39分 김택용은 個人 放送을 통해 入隊事實을 傳했다. 김택용은 入隊 前 아프리카 티비 放送을 통해 李泳鎬, 염보성, 鐵具와 함께 削髮式을 直接 생중계하고 視聽者들에 對한 敬禮를 마지막으로 放送을 終了했다. 마지막 放送에서 김택용은 “부끄럽네요. 아 부끄럽다”라며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感謝드리고 SK 移籍할 때 눈물 났었는데 그 以後로 또 눈물이 날 것 같다. 마지막 가는 모습 다들 챙겨줘서 感謝드린다”라며 팬들에게 感謝 人事를 傳했다. 이어 “轉役日은 2019年 9月 4日이다. 돌아와서 새로운 모습으로 여러분을 만나겠다”라며 軍 入隊 覺悟를 傳했다.김택용은 2017年 12月 5日 世宗市에 位置한 白龍部隊로 入隊하여 2年餘間의 軍生活을 始作했고 只今은 除隊하여
아프리카 에서bj로 活動하고 있다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