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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영 (프로게이머)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김준영 (프로게이머)

프로게이머

김준영 (金俊永, 1985年 12月 5日 ~ )은 大韓民國 의 前職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로, 아이디는 GGPlay 또는 KT.MGW)Never 이다.

김준영
(金俊永)
基本 情報
出生 大韓民國 大邱廣域市 達西區
性別 男性
國籍 大韓民國
活動 情報
種族 저그
아이디 GGPlay, KT.MGW)Never
別名 對人倍
所屬팀 한빛 스타즈(~2008.3)
CJ 엔투스(2008.3~2008.10)
熊進 스타즈 (2008.10~2009.8)
키보드 三星 키보드

점잖고 넉넉한 性品과 스케일이 큰 競技 運營으로 많은 게임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選手였으며, 對人倍 라는 別名으로 잘 알려져 있다.

略歷 編輯

2004年 下半期 한빛 스타즈(現 熊進 스타즈 )에 入團하며 프로게이머 生活을 始作했다.

2005年 SKY 프로리그 2005 前期리그 共同 多勝王을 차지했다. ( 강민 (當時 KTF 매직엔스 ), 박지호 (當時 POS ), 박성준 (當時 POS ), 송병구 (當時 三星電子 칸 ), 오영종 (當時 Plus 와 共同 記錄 保有)

2005年 10月 5日 부터 2006年 11月 25日 까지 프로리그 저그 臺 저그前 連勝 타이 記錄인 9連勝을 達成했다. ( 이제동 (當時 和承 오즈 ), 김윤환 (當時 STX SouL )과 共同 記錄 保有)

2007年 여름, Daum 스타리그 2007 決勝戰에서 변형태 (當時 CJ 엔투스 )에게 두 競技를 먼저 내주고도 나머지 세 競技를 連달아 勝利하며 優勝을 차지했다. 이는 " 스타리그 에서 처음 優勝한 選手의 本選 進出 回數는 4回 未滿"이라는 징크스를 깬 記錄이자(5회 進出만에 優勝), 스타리그 決勝戰 最初의 리버스 스윕이다.

2008年 3月 6日 CJ 엔투스로 電擊 移籍하였다. 移籍 以後 오랜 期間 슬럼프에 빠졌으나,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에서 4强에 오르며 不振을 끊었다.

2008年 10月 29日 , 親庭팀이었던 熊進 스타즈로 다시 移籍하였다. 그 以後 프로리그에서 자주 勝利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2009年부터 다시 조금씩 不振한 모습을 보이고 손목 負傷까지 생기며 거의 出戰 機會를 喪失하다시피 했다.

2009年 8月 손목 터널 症候群으로 인한 健康 惡化로 隱退의 뜻을 밝혔으며, 팀의 프로리그 09~10 시즌 첫 競技가 열린 2009年 10月 10日 龍山 e스포츠 스타디움에서 隱退式을 가졌다. [1]

大韓民國 空軍 士兵으로 服務한 그는 2010年 3月 8日 晋州 空軍敎育司令部 에 現役兵으로 入隊하여 2012年 3月 軍服務를 마쳤다.

個人리그 挑戰과 優勝 編輯

김준영은 데뷔 直後 온게임넷의 2004年 1次 챌린지 리그를 통해 最初로 個人리그에 登場했고, 김환중 (當時 G.O , 隱退)에게 2:0으로 敗北하였다. 세 次例의 챌린지 리그 挑戰 끝에 2005年 CYON 듀얼토너먼트 에 進出했고, 2勝을 거두면서 EVER 스타리그 2005 에 進出하며 最初로 메이저 舞臺에 自身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김준영의 스타리그 挑戰은 順坦치 않았다. EVER 스타리그 2005에선 박용욱 (當時 SK 텔레콤 T1 , 現 온게임넷 解說委員)과 전상욱 (當時 SK 텔레콤 T1 , 現 위메이드 폭스 )을 꺾고 2勝을 거두었음에도 不拘하고 3字 再競技에서 全敗하며 16强 탈락했다. 다음 大會인 So1 스타리그 에서는 當代 最强의 테란 최연성 (當時 SK 텔레콤 T1 , 現 SK 텔레콤 T1 코치)을 이겼지만 홍진호 (當時 KTF 매직엔스 ,隱退)와 오영종 (當時 Plus , 現 和承 오즈 )에게 敗北하며 亦是 16强 탈락했다.

홍진호와 펼친 最高의 저그 臺 저그 競技로 많은 이들에게 그 이름을 刻印시켰다는 것이 작은 慰安이었다. 以後 3시즌에 걸쳐 使用된 半섬맵 '815' 시리즈의 데뷔 競技였던 홍진호와 김준영의 對決은 長長 40分이 넘는 時間 동안 從來의 뮤脫리스크 저글링 爲主의 단조로운 저그前 樣相을 脫皮한 多樣한 유닛들의 角逐으로 이루어졌다. 디바우러, 디파일러, 퀸, 甚至於는 히드라리스크와 스탑 럴커까지 動員되는 血鬪가 벌어졌고, 김준영은 初盤 有利한 展開를 만들었으나 홍진호의 뒷심에 結局 敗北하고 말았다. 이 競技는 歷代 最長時間 저그 臺 저그 競技이자, 歷代 最高의 저그 臺 저그 名勝負로 記憶되고 있으며, 비록 김준영은 이 競技에서 지긴 했으나, 이 競技로 인해 아직 新銳級이었던 김준영의 이름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以後 두 시즌의 空白期 以後 김준영은 新韓銀行 스타리그 2006 시즌 2 로 個人리그에 復歸한다. 김준영은 차재욱 (當時 온게임넷 스파키즈 , 現 CJ 엔투스 코치), 박태민 (當時 SK 텔레콤 T1 , 現 온게임넷 解說委員), 변형태 (當時 CJ 엔투스 , 現 空軍 ACE )와 24强 F組에 編成되어 2勝 1敗로 16强에 進出했지만, 16强에서 1年餘만에 만난 오영종에게 2:1로 敗北하며 16强 탈락했다. 그 다음 大會였던 新韓銀行 스타리그 2006 시즌 3 에서도 김준영은 再競技와 와일드카드 決定戰을 통해 힘겹게 16强에 進出했지만, 理性은 (當時 三星電子 칸 , 現 空軍 ACE )에게 2:1로 敗北하며 16强 탈락했다. 훌륭한 技倆을 保有하고도 番番이 16强을 넘지 못하는 김준영에게 게임팬들은 '16强 저그'라는 불명예스러운 別名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2006年 9月 15日 변형태와 알카노이드에서 치른 日戰은 많은 게임팬들의 耳目을 집중시키며 온갖 話題를 낳았다. 이 競技에서 김준영은 테란으로 트리플 커맨드를 確保한 변형태를 相對로 前 맵에 걸쳐 멀티를 가져가면서 莫大한 資源 需給量을 確保했고(총 8個의 멀티 保有), 처음 擇한 攻擊이 아드레날린 업그레이드가 完了된 저글링 드臘이었을 程度로 엄청난 排布를 보였다. 以後 空中유닛에 매우 剛한 발키리, 골리앗 組合으로 進軍하는 테란 兵力을 所謂 새떼라 불리는 뮤脫리스크 大部隊로 無難히 擊破하고, 前맵에서 뿜어져 나오는 울트라리스크로 相對의 本陣을 싹쓸이하면서 最高의 觀光 競技를 演出했다. 이 競技가 펼쳐진 16分 동안 김준영은 40000이 넘는 미네랄을 採取했을 程度로 엄청난 物量을 뽐내며 當時 最高潮에 다다랐던 테란展 實力을 立證하였으며, 京畿 內的인 側面에서도 對人倍스러운 캐릭터를 定立하는 決定的 契機가 되는 競技였다. 또한 後날의 다음 스타리그 2007 에서의 好敵手, 以後에는 팀同僚로 繼續 이어진 변형태와의 因緣이 始作된 競技이기도 했다.

다시 16强 體制로 回歸한 Daum 스타리그 2007 에서 김준영은 한동욱 (當時 온게임넷 스파키즈 , 隱退), 신희승 (當時 eSTRO , 永久除名), 송병구 ( 三星電子 칸 )와 함께 D組에 編成되었다. 줄곧 16强에 머물렀던 김준영은 3勝을 거두며 드디어 組 1位로 8强 進出에 成功하며 많은 이들의 豫想을 무너뜨렸다. 김준영의 8强 以後 토너먼트 對陣은 最高의 테란들과 連거푸 부딪치는 苦難의 旅程이었다. 그러나 김준영은 8强에서 當時 마재윤 (當時 CJ 엔투스 , 永久除名)의 몇 안 되는 對抗馬이자 저그前 最强者라는 評價를 받던 진영수 (當時 STX SouL , 永久除名)를 2:1로 물리쳤고, 4强에서는 데뷔 直後 바로 4强에 進出하면서 最高의 實力과 氣勢를 뽐내던 李泳鎬 (當時 KTF 매직엔스 , 現 KT 롤스터 )를 相對로 3:2 逆轉勝을 거뒀다. 決勝에선 변형태와 맞붙어, 2:0 狀況에서 세 競技를 연이어 따내며 스타리그 挑戰 다섯 番만에 첫 優勝을 達成하였다.

진영수와 李泳鎬와 펼쳤던 競技들도 한 세트 差異로 勝負가 決定된 名勝負였지만, 決勝戰에선 2:0으로 밀리고 있다가 3, 4, 5競技를 연이어 勝利하면서 전용준 캐스터의 表現대로 "天才도 못하고, 本座度 못하고, 누구도 못하고, 皇帝도 못했던" 리버스 스윕을 易象性 種族으로 達成하며 最高의 드라마를 完成시켰다. 特히 파이썬에서 펼쳐진 5競技는 終了 直前까지 勝敗의 向方을 豫測할 수 없었던 明鏡岐路, 김준영은 변형태의 바이오닉 兵力에 中原을 빼앗기며 狀況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연이은 멀티 牽制를 劇的으로 막아내며 신들린 스콜誌의 活用으로 사이언스 베슬을 持續的으로 줄여 주며 抗戰했고, 終局에는 가까스로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울트라리스크를 生産해 내는 데에 成功하며 生涯 最初 優勝의 感激을 누렸다. 競技 終了 後 김준영은 "2:0으로 뒤지고 있을 때 아버지의 祈禱하는 모습을 보고 精神을 차려 勝利할 수 있었다"는 所感을 말하며 感激의 눈물을 흘렸고, 변형태는 敗北를 깨끗이 認定하며 勝者와 敗者 모두 아낌없는 拍手를 받았다. 스타리그의 10年 歷史 속에서도 김준영과 변형태의 다음 스타리그 決勝戰은 그 스코어로나 競技 內容으로나 그 안에 얽힌 드라마로나 歷代 最高의 스타리그 決勝戰으로 손꼽히고 있다.

以後 김준영은 優勝者 징크스에 시달리며 EVER 스타리그 2007 에서 1勝 2敗로 16强 탈락하였고, 두 시즌의 空白과 移籍 以後 進出한 EVER 스타리그 2008 에서도 3敗로 16强 脫落하였다. 그러나 다음 大會인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에서는 2勝 1敗로 16强 그룹을 通過했으며, 8强에서 李泳鎬를 相對로 2:1로 勝利하는 當時로서는 異變을 演出하면서 4强에 올랐다. 4江에선 新銳 정명훈 ( SK 텔레콤 T1 )의 메카닉 戰略에 무너지며 1:3으로 憤敗했고, 같이 決勝 進出이 挫折된 도재욱 ( SK 텔레콤 T1 )보다 大會 勝率(인크루트 스타리그 16强부터 4强까지의 勝率)李 낮아 4番시드를 獲得하였다. 시드保有者로 參與한 바투 스타리그 에서는 1勝 2敗로 16强 脫落, 次期 大會 36强 시드를 附與받았으며, 다음 大會인 박카스 스타리그 2009 에서는 36强 2次戰에서 過去 팀同僚였던 한상봉 (當時 CJ 엔투스 , 現 SK 텔레콤 T1 )에게 2:0으로 敗北하였다. 이것은 그의 마지막 스타리그 參與가 되었고 以後 김준영은 隱退를 宣言하며 次期 豫選에 參加하지 않았다.

스타크래프트1 最終 全的 編輯

通算戰績 (09.06.20 基準)
京畿 勝-牌 勝率
臺 테란 156 83 ?73 53.2%
臺 저그 112 59 ?53 52.7%
代 프로토스 115 72 ?43 62.6%
總合 383 214 ?169 55.9%

主要 記錄 編輯

메이저 個人리그 優勝 1回 [2]

  • 2004年 第5回 커리지 매치 立像
  • 2005年 EVER 스타리그 2005 16强
  • 2005年 SKY 프로리그 2005 前期리그 個人展 多勝王 (共同)
  • 2005年 SO1 스타리그 16强
  • 2006年 新韓銀行 스타리그 2006 시즌2 16强
  • 2006年 新韓銀行 스타리그 2006 시즌3 16强
  • 2007年 Daum 스타리그 2007 優勝 (3:2 변형태 )
  • 2007年 서울 國際 e스포츠 페스티벌 스타크래프트 256强戰 16强
  • 2007年 EVER 스타리그 2007 16强
  • 2008年 곰TV 스타 인비테이셔널 16强
  • 2008年 EVER 스타리그 2008 16强
  • 2008年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4强
  • 2008年 곰TV TG삼보-인텔 클래식 2008 시즌2 32强
  • 2008年 BATOO 스타리그 08~09 16强
  • 2009年 박카스 스타리그 2009 36强

일화 編輯

  • 김준영의 別名 '對人倍'는 2005年 11月 12日 김준영이 九龍爭霸 듀얼토너먼트 2라운드 勝者戰 臺 김근백 (當時 三星電子 칸 , 隱退) 戰에서 不利한 狀況에서 해處理 버그(해處理로 變態하다가 取消한 狀態의 저그 드론이 消失될 境遇 게임 自體가 멈춰 버리는 現象)가 發生하자 再競技가 可能한 狀況에서 기꺼이 敗北를 認定하는 스포츠맨십을 보여 준 것에서 由來하였다. '對人倍(大人輩)'라는 用語는 當時 네티즌들의 話題가 되었던 김성모 의 漫畫 中 登場한 '小人輩'와 反對의 意味를 가진 語彙로, 本來 標準語가 아니며 '輩'라는 어미가 '小人輩', '無賴輩', '暴力輩' 等의 單語에서 보이듯 否定的 意味를 內包하기 때문에, 一部 사람들은 김준영을 '大人'이라고만 稱하기도 했다.
  • MBC게임 에서의 放送競技 中 컴퓨터 技術팀이 自身의 PC를 손보는 동안 김준영은 경기석 뒤便에 차렷 姿勢로 서 있었는데, 이 모습이 찍힌 寫眞을 契機로 그에겐 '차렷저그'라는 別名이 붙었다. 以後 이 寫眞은 各 커뮤니티의 짤防 素材로 자주 使用되었다.
  • 過去 리그를 先導하던 저그 플레이어들의 이름을 줄여 부르는 게임팬들의 傳統에 맞춰, 2006~2007 시즌 저그를 이끌었던 마재윤, 김준영, 이제동 세 選手를 일컬어 '馬蠢動'이라 불렀다. 以前 世代에는 '조진락( 조용호 , 홍진호 , 朴慶洛 )', '변태준( 변은종 , 박태민 , 박성준 )'李 저그 陣營을 代表하는 플레이어였다.
  • 김준영이 줄곧 보여준, 京畿 後半 相對方이 堪當할 수 없을 만큼 쏟아내는 物量을 빗대어 그의 팬을 비롯한 스타크래프트 마니아들은 '개떼 (저글링 떼)', '새떼 (뮤脫리스크 떼)', '소떼 (울트라리스크 떼)' 等의 別稱을 지었고, 美國産 쇠고기 波動 以後로는 소(울트라리스크)를 愛用하는 그에게 '韓牛 저그', '狂牛病 저그'라는 別名도 붙였다.
  • 김준영은 學窓 時節 文學 科目에서 全校 最優秀賞을 受賞하는 等 學業 成跡도 優秀한 模範生이었으나, 어려운 家庭 形便으로 인해 大學에 入學할 수 없었고, 當場 돈을 벌 수 있었던 프로게이머 의 길을 選擇했다.
  • 김준영의 플레이에 가장 큰 影響을 준 選手는 '디파일러의 아버지' 조형근 (隱退)이라고 한다. 過去 한빛 스타즈 에서 김준영과 한솥밥을 먹었던 조형근은 레語 段階에 集中하던 저그 陣營에 '하이브 運營'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提示했던 選手였다. 김준영 亦是 디파일러와 울트라리스크 等의 하이브 테크 유닛을 使用하는 데에 能熟했다.
  • 데뷔 리그인 EVER 2005 스타리그부터 So1, 新韓銀行 시즌 2와 3 스타리그까지 16强에만 머물러 ‘16强 저그’라는 불명예스러운 別名이 붙은 적이 있었으나, 다음 스타리그에서 優勝을 차지한 以後에는 쓰이지 않게 되었다.
  • 김준영은 체리필터 의 〈느껴봐〉 뮤직비디오에 노 개런티로 出演한 적이 있다. 平素 김준영의 熱血팬이었던 그룹 멤버의 推薦으로 出演이 이뤄지게 되었다 [3] .

김준영의 後裔 編輯

위에서 말했듯이 김준영의 플레이는 運營兄, 卽 뮤脫리스크와 저글링,럴커로 最大限 테란의 時間을 끌고 그 동안에 3가스 體制를 具備한 뒤 하이브테크를 올려 디파일러와 스커지를 活用해 테란의 攻勢를 效果的으로 막아내고(고도의 集中力과 멀티태스킹을 要求한다.) 그 동안 蓄積한 資源으로 울트라리스크 多數를 뽑아내 相對를 制壓하는, 一名 守備型 저그,運營兄 저그를 김준영은 具現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의 팀이었던 熊進 스타즈 에서 김명운 이 그의 스타일을 마치 複寫해놓은 듯한 플레이를 보이고(또한 김명운은 저그의 基本 素養이라 불리는 뮤脫리스크의 컨트롤 또한 뛰어나서, 守備型 저그의 具現에 아주 卓越한 選手였다.) 김민철 또한 强力한 守備力으로 '김민철壁'이라는 別名을 얻을 만큼의 明經기를 보이며 조형근과 김준영에 이은 얼마 안남은 運營兄 저그의 系譜를 이었다. 李泳鎬 또한 ' 이제동 보다 後半 運營은 熊進저그가 더 뛰어나다.'라고 말하고 있고, KT 롤스터 의 저그라인 또한 熊進저그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김명운과 김민철의 이런 競技 스타일은 김준영의 스타일에서 나왔었고, 이를 두고 사람들은 이들을 '김준영의 後裔'라고 부른다.

MSL 進出 0回 編輯

온게임넷 大會인 스타리그에서는 10回나 本選에 進出하기도 했고 優勝도 한 番 記錄하기도 한 김준영이었지만 唯獨 MBC게임의 MSL에서는 因緣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純粹 스타리그 優勝者 選手들 中에서는 한동욱 과 함께 MSL 進出 記錄이 全無하다. (서바이버 리그 및 서바이버 토너먼트 進出 記錄이 最高 記錄)

김준영은 데뷔 以來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豫選 13番,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本選에서 5番 挑戰했으나 結局에는 MSL 進出에 成功하지 못하며 選手 生活을 마감했다.

各州 編輯

  1. “김준영 "손목 터널 症候群 克服 못해 " . 데일리e스포츠. 2009年 8月 20日 . 2009年 8月 20日에 確認함 .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2. 스타리그 1回 優勝.
  3. “체리필터 年윤근, 프로게이머 김준영과 한판 勝負” . 조이뉴스24. 2007年 10月 2日.  

外部 링크 編輯

移轉
마재윤
第22代 스타리그 優勝者
Daum 스타리그 2007
다음
 이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