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州廣域市
出生으로
崇義科學技術高等學校
와
全州大學校
를 거쳐 1997年 浦項 스틸러스 入團을 통해 프로에 本格的으로 뛰어든 以後 浦項의 主戰 골키퍼로 2시즌동안 猛活躍하며
1997年 K리그
4位,
1998年 K리그
3位,
FA컵
2시즌 連續 4强 進出,
AFC 챔피언스리그
2回 連續 制霸를 이끌었다.
그러나 1999 시즌
조준호
現
말레이시아 蹴球 國家代表팀
골키퍼 코치가 浦項에 入團한 直後 猛活躍을 펼치면서 2順位로 밀려난데 이어
蔚山 현대
에서 活躍하던
金秉址
現
江原 FC
代表理事까지 2001年 浦項으로 넘어온 뒤 主戰 자리에서 完全히 밀려나면서 結局 같은 해 8月 1日 自由契約選手로 풀린 以後 한동안 所屬팀을 찾지 못했다.
[1]
1年間 여러 프로팀의 入團 테스트를 받다가 2002 시즌 中盤 母校 大學 所在地인 全北 현대 모터스로 둥지를 튼 以後 2003 시즌까지 主로 백업 골키퍼로 活動하며
2003年 FA컵
優勝을 經驗했다.
2003 시즌 終了 後 FA 資格을 얻은 뒤 2004 시즌을 앞두고 新生팀 仁川 유나이티드의 創團 멤버로 들어간 以後 2010 시즌까지 백업과 主戰을 오고 가며
2005年 K리그
準優勝, FA컵 2回 連續 4强 突風의 主役으로 活動했고 2010 시즌을 마친 뒤 後輩인
윤기원
에게 主戰 자리를 넘겼으며 2011年
임중용
과 함께 隱退함으로서 13年間의 프로 選手 生活을 마무리했다.
신동아그룹
이 全州永生學院을 引受하면서 母校인 全州大學校 축구팀을 創團한 터라 신동아그룹을 母企業으로 둔 國內 프로出帆 1好팀인
할렐루야 蹴球團
(98 시즌 後 解體)李 全羅道 地域과 確固한 聯關 關係를 맺기도 했고
[2]
이로 因해
1985年 K리그
終了 後
10月 3日
부터
11月 9日
부터 홈 앤드 어웨이 形式으로 各 팀의 緣故地에서 열릴 뻔한 프로 蹴球 選手權 大會 實現설이 나돌던 當時 할렐루야 蹴球團이 本人의 故鄕인 光州와 母校의 緣故地인 全州에서의
[3]
홈 競技를 펼칠 豫定이었지만 할렐루야 蹴球團이 이 해를 끝으로 아마추어로 轉換한 데다가 景氣 日程이
1986年 FIFA 월드컵 아시아 地域 豫選
日程과 겹쳐 各 球團의 主戰 選手들이 代表팀에 差出됨에 따라 事實上 大會 出戰이 어려워지면서 結局 이 計劃은 霧散되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