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民同志贊成回
(國民同志贊成會)는
大韓帝國
末期에
一進會
의
韓日 倂合
청원에 支持 意思를 表明하고 支持 輿論을 擴散시키기 위해 組織된 團體이다.
國民贊成回同志會
로도 불린다.
1910年
1月 23日
에 設立하고 發起會를 가졌다. 이 團體에는 비슷한 性格의 다른 團體에 비해 巨物級 人士들이 많이 包含되고 組織 體系도 어느 程度 갖추어져 있었다. 拷問 中에는 高官인
민영휘
와
이지용
, 實業人
李鶴宰
가 包含되었고, 會長은 鄭3品 前職 官僚인
이범찬
, 副會長은
서창보
, 總務는
조덕하
가 맡았다. 活動 經費는 一進會가 負擔한 것으로 알려졌다. 一進會 幹部들과는 따로 會同을 갖는 等 密接한 關係를 維持했다.
發起 直後부터 活潑한 活動을 펼쳐 贊成員 望帖과 趣旨書를 發刊하고 現識 大臣들에게 望帖을 發送했다. 그러나 韓日 倂合 反對 輿論에 負擔을 느낀 大臣들은 모두 이 望帖을 되돌려 보냈다. 本來 總裁로
김종한
이 推薦되었으나 거듭 辭讓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
皇城新聞
》은 "大韓國의 逆黨"인 一進會 道黨이라며 이들의 活動을 非難하는 論說을 揭載했고, 連이어 《
大韓民報
》도 "新胸懷(新凶會)"라 指稱하면서 國民同志贊成會를 猛非難했다.
會員 數는 結成 初期를 基準으로 100名이 채 되지 않았으나 立會者들에게 400~500名 線이라고 誇張 宣傳하여 들통이 난 바 있다. 이 團體와 아무 關係가 없는 사람이 이름을 盜用당했다는 主張이 提起되기도 했다. 國民贊成同志會는 1910年
2月 5日
과
2月 6日
早速한 "正合邦"을 懇曲히 바란다는 請願書를 各各 大韓帝國과
日本 帝國
의 內閣에 보냈다.
國民贊成同志會는 倂合 贊成 輿論몰이를 위해 討論會도 開催했는데, 이 자리에서 "父母도 賃金도 없는 한 마리 개돼지"라는 말을 들었을 만큼 反感을 많이 샀다. 檢階段이라는 團體가 副會長
서창보
의 罪狀을 적은 글을 事務所 門 앞에 걸어놓고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屈하지 않고
3月 12日
에 또다시 內閣과
統監府
에 藏書를 보내 韓日 倂合을 促求하는 等 活動을 繼續했다. 韓日 倂合 條約이 締結된 뒤 一進會와 같은 날인
9月 12日
에 解散되었다.
參考資料
編輯
- 친일인명사전編纂委員會 (2004年 12月 27日). 《日帝協力團體事前 - 國內 中央便》. 서울: 民族問題硏究所. 88~92쪽쪽.
ISBN
899533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