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만   중국   일본 
開城 경천사지 十層石塔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開城 경천사지 十層石塔

敬天寺에 세워졌던 十層石塔으로 大韓民國의 國寶 第86號
( 敬天寺 十層石塔 에서 넘어옴)

開城 경천사지 十層石塔 (開城 敬天寺址 十層石塔)은 高麗 충목왕 4年 ( 1348年 ) 時期에 京畿道 開豐郡 광덕면 扶蘇山에 있는 敬天寺 에 세워진 石塔 이며 現在 國立中央博物館 에되어 있다. 塔의 높이는 13.5 미터로 1962年 12月 20日 國寶 第86號로 指定되었다.

開城 경천사지 十層石塔
(開城 敬天寺址 十層石塔)
(Ten-story Stone Pagoda from Gyeongcheonsa Temple Site, Gaeseong)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國寶
種目 國寶 第86號
( 1962年 12月 20日 指定)
時代 高麗 時代 (1345年) 충목왕 4年
所有 國立中央博物館
住所 서울特別市 龍山區 西氷庫로 137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歷史 編輯

이 塔은 元나라 의 影響을 받은 것으로, 高麗 末期 親元 權門勢族들이 지었다. [1] 灰色의 大理石 으로 만들었으며, 造成 以後 迷信,半(反)宗敎的인 理由로 인해 3層 塔神父까지의 下層部 佛敎關聯 道上들의 破損이 많았다. 1902年 세키노 다다시 의 調査報告로 廢寺地에 있다고 알려졌고, 1907年 純宗 의 家禮式에 參席한 日本 宮內大臣 다나카 미쓰아키 에 依해 不法的으로 搬出되었다는 非難 輿論이 일자 1916年 朝鮮總督府 는 石塔 搬出 事實을 調査하고 1918年 11月 15日 韓半島 로 返還하였다. [2] 返還 後 景福宮 勤政殿 回廊에 放置돼 있다가, 1960年 에 修理해 景福宮에 세워졌고, 1962年 國寶 第86號로 指定되었다. 1995年 國立文化財硏究所 에 依해 保存處理되다가, 2005年 國立中央博物館 에 展示돼 現在에 이른다. [3]

形態 編輯

3段으로 된 基壇(基壇)은 위에서 보면 아(亞)자 模樣이고, 그 위로 올려진 10層의 높은 塔身(塔身) 亦是 3層까지는 基壇과 같은 아(亞)자 模樣이었다가, 4層에 이르러 正四角形 의 平面을 이루고 있다. 基壇과 塔身에는 華麗한 조각이 가득 차 있는데, 部處 , 菩薩 , 풀꽃무늬 等이 뛰어난 彫刻手法으로 새겨져 있다. 4層부터는 各 몸돌마다 欄干을 돌리고, 지붕돌은 옆에서 보아 여덟 팔(八)字 模樣인 八作지붕 形態의 기와골을 表現해 놓는 等 木造建築을 聯想케 하는 豐富한 彫刻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塔의 1層 몸돌에 高麗 충목왕 4年(1348)에 세웠다는 記錄이 있어 만들어진 年代를 正確히 알 수 있다. 새로운 樣式의 石塔이 많이 出現했던 高麗時代 에서도 특수한 形態를 자랑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石塔의 一般的 材料가 花崗巖 인데 비해 大理石 으로 만들어졌다는 點도 特異하다. 全體的인 均衡과 細部的인 彫刻手法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姿態로 눈길을 끌며, 지붕돌의 처마가 木造建築의 構造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當時의 建築樣式을 엿볼 수 있는 좋은 資料가 된다. 이러한 樣式은 以後 朝鮮時代 에 이르러 서울 원각사지 十層石塔 (國寶 第2號)에 影響을 주기도 하였다. [4]

裝飾 扶助 編輯

高麗時代 塔婆에 裝飾한 扶助로서 重要한 것이 이 塔의 浮彫이다. 基壇과 塔身의 各部에는 十二支像(十二之相)의 佛像·菩薩·天父(天部)·羅漢(羅漢)·非求刑(比丘形)의 各種 群像이 奬勵하게 彫刻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相輪部(相輪部)·屋蓋(屋蓋)·기둥 枓栱 等 木造建物의 細部를 變化있게 조각으로 展開시키고 있다. 여기 扶助는 원(元)의 表現 形式이 混入(混入)되어 있음을 보이는데 원工場(元工匠)李 直接 加擔하여 만든 典型的인 基準作(基準作)으로서 重要하다. [5]

寫眞 編輯

같이 보기 編輯

各州 編輯

  1. 元나라 皇帝 의 萬壽無疆과 元나라의 萬世不變을 祈願하며 지었다고 한다.
  2. 신은정, 〈敬天寺十層石塔의 造形 硏究〉 《佛敎美術史學》 (2006, 第4輯) 317쪽. “그러나 造成以後 迷信? · 反宗敎的인 理由로 인해 3層 塔神父까지의 下層部 佛敎關聯 道上들의 破損이 많았고, 1907年 日本 宮內大臣 田中光顯(다나카 미츠야키)의 政治的 目的에 依해 無斷解體되어 日本으로 搬出되는 等 受難을 겪어왔다. 1) ... 1) 1902年 세키노 타다시의 調査報告로 廢寺地에 있다고 알려진 敬天寺塔은 1907年 順從의 家禮式에 參席한 日本 宮內大臣 다나카 미츠야키(田中光顯)에 依해 不法解體되어 搬出되었다. 搬出 以後 많은 非難 輿論이 일자 1916年 朝鮮總督府에서는 石塔 搬出事實을 調査하고 1918年頃 다시 우리나라로 返還되었다.(당시의 狀況은 한영대, 『조선미의 探究者들』(학고재, 1997), pp.53~96. 이구열, 『韓國文化財 受難史』(돌배게, 1996), pp. 77~82. 신은정, 「敬天寺十層石塔의 綜合的 硏究」 東國大學校 美術史學科 碩士學位論文, 2003年, pp. 76~81 參照)”
  3. 敬天寺 十層石塔 國立中央博物館
  4. 開城 경천사지 十層石塔 文化財廳 國家文化遺産포털
  5. 塔式扶助 글로벌 世界 大百科事典

外部 링크 編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