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擊蒙要訣 -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李珥 手稿本 擊蒙要訣 (李珥 手稿本 擊蒙要訣)은 栗谷 李珥 (1536∼1584)先生이 42歲 때인 宣祖 10年(1577) 官職을 떠나 海州에 있을 때 처음 글을 배우는 兒童의 入門敎材로 쓰기 위해 著述한 것이다. 1976年 4月 23日 大韓民國의 寶物 第602號로 指定되었다. [1]

李珥 手稿本 擊蒙要訣
(李珥 手稿本 擊蒙要訣)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寶物
種目 寶物 第602號
( 1976年 4月 23日 指定)
數量 1冊
時代 朝鮮時代
所有 共有
住所 江原特別自治道 江陵市 율곡로3139番길 24
( 죽헌동 , 오죽헌 )
情報 國家遺産靑 國家遺産포털 情報

擊蒙은 主役 蒙卦 상구의 爻辭에 있는 말로, '몽매하여 따르지 않는 者를 깨우치거나 懲罰한다'는 뜻이다.

栗谷은 이 冊이 自身이 海州 석담에 있을 때 한두 학도가 追從하여 學問을 請해 왔을 때, '初學(初學)李 向方을 모를 뿐 아니라, 굳은 뜻이 없이 그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배우면 彼此에 도움이 없고 도리어 남의 嘲弄만 사게 될까 念慮하여, 簡略하게 한 冊을 써서 大略 마음을 세우는 것, 몸가짐을 團束하는 일, 父母를 奉養하는 法, 남을 接待하는 方法을 가르쳐, 마음을 씻고 뜻을 세워 卽時 工夫에 着手하게 하기 위하여 지었다'고 序文에 밝히고 있다. 이 冊은 그가 42歲 때 만들어졌고, 나중 正祖 12年에 正祖는 이 冊이 ' 小學 의 첫걸음'이라는 紹介를 적은 序文을 썼다.

槪要 編輯

李珥 手稿本 擊蒙要訣(李珥 手稿本 擊蒙要訣)은 栗谷 李珥(1536∼1584)先生이 42歲 때인 宣祖 10年(1577) 官職을 떠나 海州에 있을 때 처음 글을 배우는 兒童의 入門敎材로 쓰기 위해 著述한 것이다.

李珥는 朝鮮 中期의 學者이자 政治家로, 23歲 때 別試에서 壯元을 한 後 벼슬길에 올랐고, 戶曹佐郞, 禮曹佐郞, 右副承旨를 거쳐 47歲 때 吏曹判書에 任命되었다. 李珥의 性理學 思想은 近代에 이르기까지 歷史展開에 커다란 影響을 미쳤으며, 以外에도 <時務六曹>를 세우고 十萬養兵說을 主張했다. 그가 죽은 後 全國 20餘個 書院에 位牌가 모셔졌으며, 諡號는 문성이다. 著書로는 『擊蒙要訣』 外에 『聖學輯要』, 『기자실기』, 『漫言奉仕』 等이 있다.

이 冊은 栗谷이 直接 쓴 親筆 原本으로 韓紙에 행서체로 端雅하게 썼으며, 內容은 第1張 <立地>에서부터 <處世>의 項目으로 나누어 第10章으로 構成하여 敍述하였다. 特히 이 冊머리에는, 正祖 12年(1788)에 이 冊을 親히 閱覽하고 題目에 글을 지어 文身 이병모(1742∼1806)에게 明解 이를 冊머리에 붙이게 하였다. 『擊蒙要訣』은 朝鮮 中期以後 一般에게 널리 普及되어『동몽선습』과 함께 初學者의 入門書로 近世에까지 많이 읽혀져 왔다.

더욱이 이『擊蒙要訣』은 여러次例 木版本이나 活字本으로 出刊되어 왔으나, 唯一한 親筆本은 栗谷의 姨母가 시집간 權氏집안에 栗谷의 遺品과 함께 代代로 所藏되어 왔으며, 이것은 栗谷이 親히 쓴 親筆原本으로 그 價値가 크다고 評價된다.

構成 編輯

10個의 章으로 構成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立地(立志)
  2. 혁구습(革舊習)
  3. 支神(持身)
  4. 讀書(讀書)
  5. 私親(事親)
  6. 喪制(喪制)
  7. 祭禮(祭禮)
  8. 거가(居家)
  9. 접인(接人)
  10. 處世(處世)

같이 보기 編輯

갤러리 編輯

各州 編輯

  1. 文化公報部 長官 (1976年 5月 21日). “文化公報部考試制338號(文化財<國寶, 寶物>指定)” . (1976年 5月 31日 官報 第7359號). 14-15(4800-4801)쪽.  

參考 資料 編輯

外部 링크 編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