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文書는 高麗 末 朝鮮 初의 武臣에 關한 것입니다. 全北 高敞郡의 鞠躬張에 對해서는
張師政 (全北)
文書를 參考하십시오.
張師政
(張思靖)은
高麗
말
朝鮮
初의 武臣이다.
義州만호 壯熱(張烈)의 아들이자, 火山府院君(花山府院君)
장사길
(張思吉)의 아우이다.
1392年
7月 17日
朝鮮 開國에 參與하였고, 같은 해 9月 27日에 追錄되는 形式으로 個國 3等功臣에 책록되었다.
1397年
中樞院副使와 造船節制使를 歷任하였고, 풍해도 西北沿海에서 倭寇를 掃蕩하였다.
1398年
相議中樞院使(商議中樞院事)로 지낼 時節,
第1次 王子의 亂
에 協力한 功勞를 認定받아
9月 17日
에 華城郡(花城君)이라는 軍號를 받고 情事 2等功臣에 책록되었다.
1411年
(太宗 11)에는 明나라에 聖節使(聖節使)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1399年
5月 21日 남궁서(南宮恕)의 아내를 붙잡아 귀를 자르고 때려 죽인 嫌疑로
淸州
에 安置되었는데, 같은 해 7月 1日 容恕받았다.
1417年
12月 4日에
회안대군
방간(芳幹)의 種 보배(寶背)를 거두어 妾으로 三高度 告하지 않은 嫌疑로, 錄券이 回收되고
尙州
에 安置되었다가 自身의 申請人
德川
으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