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年 9月 26日에 태어났고,
慶南
山淸
出身이다.
釜山商業高等學校
를 卒業하고
朝鮮銀行
에 勤務했으며, 會計 業務에서 뛰어난 能力을 보여 金融界에서 名聲을 떨쳤다.
이에 大富豪이자 金融人인
현준호
가 朝鮮銀行의 김신석을 拔擢해서 自身이 運營하던 湖南銀行으로 불러왔다. 김신석은 湖南銀行 木浦支店長을 거쳐 專務를 맡았다.
1935年
總督府가 編纂한 《朝鮮功勞者명감》에 朝鮮人 功勞者 353名 中 한 名으로 收錄되어 있다.
[1]
[2]
1936年
朝鮮總督府 中樞院의 參議에 任命되었다. 현준호는
1931年
부터 中樞院 參議職에 있었기에 김신석이 뒤이어 들어간 셈이며, 두 사람은 나란히 光復 時點까지 連任하며 中樞院 參議로 就任했다. 親日反民族行爲者 報告書에 依하면 3百餘 名의 下人을 所有했다고 記錄되어 있다. 日帝 强占期 末期에는
太平洋 戰爭
支援에 나서
對話同盟
에 加擔한 바 있다.
[3]
딸
김윤남
이
홍진기
와 結婚하여
홍라희
와
홍석현
等을 낳아 이들에게 김신석은 外祖父가 된다. 홍라희는
三星그룹
李秉喆
의 3男이자 三星의 後繼者가 된
李健熙
와 結婚하였고 현준호의 孫女
현정은
은
現代그룹
정몽헌
의 配偶者가 되어, 大韓民國의 代表的인 財閥 그룹인 三星과 現代家 김신석, 현준호의 日帝 强占期부터의 因緣으로 連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