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학교
經營學
科 敎授로 在職 中
京畿道
200餘個 市民社會團體로 構成된 京畿希望敎育連帶의 候補 單一化 要求를 받았다. 김상곤은 豫備候補로 出馬한 권오일 候補와 單一化 作業에서 勝利해 "進步"側 單一 候補가 됐다. 選擧運動 期間에는
一齊考査
,
自立型私立高
擴大 等 이른바 'MB式 特權敎育 政策'에 反對하는 公約을 내걸었고, 敎育을 책임지는 學校, 保育까지 책임지는 學校, 無償 給食 等 庶民 有權者를 위한 敎育 政策을 集中 浮刻했다.
2009年
4月 8日
, 김진춘 前 敎育監 , 강원춘 候補, 김선일 候補, 한만용 候補로
京畿道
에서 치러진 첫 住民直選 敎育監 選擧에서 "保守"陣營의 集中 支援을 받은 選擧 當時 現職 敎育監 김진춘 候補를 누르고 當選됐다.
[1]
김상곤 敎育監 當選者는 42萬2千302票에 該當하는 40.81%로, 2位 김진춘 前 敎育監(34萬8千57票 = 33.63%)을 적지 않은 票差로 따돌렸다. 비록 投票率은 低調했지만, 17代 大統領 選擧 以後로 두 番째 地方選擧에서 'MB式 敎育政策'에 反對하며 나선 進步系 敎育監 候補인 김상곤 當選者가 當選되었다.
[
出處 必要
]
2014年
3月 4日
敎育監 任期 滿了를 세 달 앞두고,
京畿道知事
出馬를 위해 辭退하였으나,
새政治民主聯合
의
京畿道知事
候補 選出을 위한 黨內 競選에서 敗北하며 出馬가 挫折되었다.
[2]
[3]
2015年
5月 24日
再補選慘敗와 黨內葛藤으로 內訌을 겪던
새政治民主聯合
의 革新委員長으로 任命되었다.
[4]
2017年
6月 11日
文在寅 政府
의
社會副總理 兼 敎育部 長官
候補者로 指名되었다. 以後 김상곤이
서울大學校
에서 取得한
碩士
學位 및
博士
學位 論文에 對하여 剽竊 疑惑이 提起되었고, 論文 重複 揭載 疑惑도 提起되어서 論難이 있었으나, 國會에서 人事聽聞報告書가 採擇되었고,
7月 4日
敎育部 長官에 任命되었다.
[5]
그러나 敎育部長官으로 있으면서 大入과 高入을 비롯한 여러 敎育政策들에 對한 論難이 發生했으며 김상곤 責任論이 擡頭되었다. 그리고 2018年 8月 30日 更迭되었고 그 後任으로
兪銀惠
議員이 指名되었다.
2009年
4月 22日
, 김상곤 當選者의 就任準備팀에 業務報告를 해야 할 道敎育廳 企劃豫算擔當官室 職員들이 道敎育廳 幹部會議를 通한 '業務報告取消' 命令에 跛行을 빚었다.
[6]
道敎育廳의 한 幹部에 따르면 '民間人 身分의 準備팀에게 業務報告'는 不適切하다는 判斷이었다.
김상곤 敎育監이 내걸었던 核心 公約은 無償給食 擴大와 革新學校政策이었다. 島嶼 僻地, 農山漁村 地域學校, 300人 以下 小規模
京畿
地域 4百餘個의
初等學校
에 있는 給食도 먹지 못하는 貧困層 子女는 17%인데 支援 對象者는 10% 內外였기 때문에 김상곤 敎育監은
2009年
下半期부터 無償給食의 比率을 20%까지 追更豫算을 올려 策定하려 했으며, 革新學校政策으로는 새로운 類型의 學校를 만들기 爲해 한 學年을 5個 班 以下로 하여 學級當 學生數를 25名 以內로 줄이고, 校長에게 一定 比率의 敎師 選擇權을 保障해주며, 다양한 自律性을 附與하여 公敎育을 極大化 하고자 한 政策이다. 그런데
2009年
6月 23日
열린 豫算決算小委員會 會議에서 敎育委員들의 主導로 革新學校 豫算 28億 2700萬원을 全額削減하였고, 無償給食 擴大 豫算 171億원은 折半 85億 5000萬원을 削減하여 半토막낸 修正案을 통과시켰다. 이로 因해 300人 以下 小規模 學校에 들어가는 無償給食計劃은 豫算의 50%만 支援하게 되었다.
[7]
7月 7日
열렸던, 定例會 第1次 本會議에서 한나라당 敎育委員들의 막말에 가까운 말이 新聞社에 依해 公開되어 많은 非難이 일었다.
[8]
以後 김상곤 敎育監과 京畿道民들, 민주당 敎育委員들이 豫算復舊를 要求했으나,
[9]
되려 한나라黨 敎育委員들 一角에서는 無料給食 全額削減을 熟考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10]
學校暴力 加害者 懲戒 內容의 學生部 記載 反對
編輯
學校暴力 加害者에 對해서 學生簿記載를 要請하는 敎育部 行政命令에 對해서 不服해 裁判으로 勝訴하였다. (勝訴 報道)
[11]
- 所長의 內容中 一部 拔萃
- 加害學生 措置事項에 對한 學校生活記錄簿 記載는 國民의 自由와 權利를 制限하는 것
- 學校暴力對策自治委員會의 加害學生 措置事項만을 學校生活記錄簿에 記載하는 것은 衡平의 原則에 御極난다는 點
- 敎科富의 指針은 어린 (加害) 學生들의 基本權을 侵害할 憂慮가 높고 敎育的으로 容納하기 어렵다는 點
6名의 敎育長級 人事를 하면서 全南大, 全州敎大 等 湖南地域 人士들을 起用. 이에 따라 京畿道敎育廳은 副敎育監, 企劃調整室長, 計劃豫算擔當官 等 行政要職과 敎育長 및 機關長 等 敎育要職도 特定地域이 掌握하게 됐다. (當時 김상곤이 敎育監職을 遂行한 곳은 湖南이 아니라 京畿道다.)
京畿道의 한 初等 校長은 “그동안 一般職에 對한 偏重人事 論難이 提起돼 왔었는데 이番에 專門職까지 擴大됐다” 고 地域 現場 敎育界 雰圍氣를 傳했다.
[12]
[13]
文在寅
大統領
이
6月 10日
김상곤을 敎育部 長官에 指名한 以後
剽竊
疑惑, 論文 重複揭載 疑惑, 硏究業績 不實 等 殼族 疑惑이 提起되고 있다.
아래는 聽聞會 當時
전희경
自由韓國黨
議員이 公開한 主要活動 團體와 發言 內容이다.
- 민교협(民主化를 위한 全國 敎授 協議會): 國家 保安法 廢止 籠城 / 한총련 合法化 主張 / 이라크戰 派兵 反對 및 韓美 FTA反對
- 全國 敎授 勞動組合: 駐韓 美軍 撤收 및 韓美 同盟 廢棄 宣言 / 韓美 FTA反對
-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勞動大學: 反帝國主義民族解放, 半 資本 社會變革 主張 / 社會主義 政黨 建設 主張 / 社會主義 體制로의 變化 主張
- "民族의 和合과 平和를 沮害하고 國民大衆의 諸般權利를 制限해 온 惡法中의 惡法, 國家保安法"
[14]
- "...資本의 足鎖를 拒否하고 社會主義를 想像하자."
[15]
- "... 不平等하고 從屬的인 對美 關係... 對美 從屬에서 벗어나 主權 國家다운 自主性을 確保하고..."
[16]
김상곤이
1992年
서울대학교에 提出한
經營學
博士學位 論文 '
社會主義
企業의 自主管理적 勞使關係 模型에 關한 硏究'에서 日本 學者 오쿠바야視 高地의 1983年 論文 '
蘇聯
에서의 勞動內容論'의 49-52쪽의 文章 22個를 飜譯하여서 그대로 실었는데, 引用 標示를 하지 않았다. 이 外에도, 州縣과 이윤의 '蘇聯의 産業生産 體制와 合作投資 制度'(1990), 신현준의 '
페레스트로이카
와 經濟改革'(1990), 메드베제프의 政治經濟學敎科書2(1988), 街이토 스스무의 '社會主義 經營學의 發展'(1983) 等 7個 文獻의 內容을 引用 標示를 하지 않고 自身의 論文에 옮겨 썼다. 또한, 김상곤이 서울대학교에 提出한 經營學 碩士學位 論文('技術變化와 勞使關係에 關한 硏究-
韓國
,
日本
,
美國
의 事例를 中心으로-')에서도 日本 學者 이시다 가즈오의 '現代技術과 企業勞動'의 原文을 그대로 飜譯해 실어서 剽竊 疑惑이 提起되었다.
[17]
[5]
[18]
韓國硏究業績統合情報시스템에서 김상곤의 硏究業績을 檢索한 結果 김상곤이 硏究所와
한신대학교
經營學科 敎授로 勤務한 30餘年 동안 發表한 論文이 碩士學位 論文, 博士學位 論文, 2008年에 學術誌에 提出한 論文 總 3個라는 疑惑이 提起되었다. 조선일보는 '一部 漏落된 實績이 있을 수는 있어도, 數十年 學術 活動을 한 學者가 맞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批判하였다.
[19]
김상곤은 1991年 12月 서울대 勞使關係硏究所 學術誌에‘
페레스트로이카
下衣 蘇聯企業의 自主管理模型에 對한 硏究’論文을 發表했고, 그에 즈음하여 學術誌 '現象과 認識’에 社會主義 企業組織의 性格과 管理模型’論文을 發表했다. 이들 論文 2個의 內容은 김상곤의 서울대 博士學位 論文‘
社會主義
企業의 自主管理적 勞使關係 模型에 關한 硏究: 페레스트로이카下의 蘇聯企業을 中心으로'과 內容이 거의 같고, 表와 各州까지 거의 一致했다. 한便, 김상곤은
1997年
10月
한신대학교
論文集 特別號에‘신경영전략과 雇傭不安'을 發表했는데,
1997年
9月
에 '新經營戰略과 雇傭不安'을 要約한 論文 '
新自由主義
와 雇傭問題'를 自身이 所長으로 있던 '勞動組合企業經營硏究所'의 氣管支 '民主勞動과 代案'에 揭載했다. 국민일보는 이에 對하여 論文 重複 揭載 疑惑을 提起하였다.
[20]
高入과 大入 等 여러 敎育制度들의 '發表→反撥→保留'가 反復되면서,
[21]
學父母와 學生들에게 混亂을 招來해 '김상곤 世代'라는 말도 登場했다.
[22]
같은 進步 陣營에서도 批判이 나왔다.
더불어民主黨
朴用鎭
議員은 "이 政府에서 가장 많은 失望과 論難을 일으키고 있는 곳이 敎育部"라며 "學父母로서, 進步 學父母로서 김상곤 敎育副總理에 火가 난다"고 批判했다. 또한
全敎組
는 "敎育部가 大入制度 改編 基本原則이나 方向도 提示하지 못했다"며 "政府가 社會的 論難에 휩싸이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大入制度 改革의 目標와 價値를 어디에 두고 相衝하는 價値 中 무엇을 優先할지 言及하지 않았다"는 聲明書를 냈다.
[22]
定時와 隨試 比重,
修能
絶對評價化 等
大學 入試 制度
를 둘러싼 葛藤이 發生하면서 金 副總理의 責任論이 提起되었다.
- 말 바꾸기 論難?: 2017年 8月에는 4科目 絶對評價와 全 科目 絶對評價만을 修能 改編案으로 提示했으나, 2018年 4月에는 絶對評價가 敎育部의 基本 立場인 적 없다고 發言했다. 또한 10年間의 隨試 擴大 基調를 維持했다가, 突然 박춘란 敎育部 次官이 各 大學들에 定試 擴大를 電話로 要求했다.
[23]
이로 因해
自由韓國黨
은 박춘란 借款을
職權濫用
嫌疑로 檢察에 告發했다.
[22]
- 政策 施行 미루기 論難?: 2017年 8月 10日에는 2021學年度 修能 改編 試案을 發表했으나, 31日에는 修能 改編 1年 猶豫 決定을 내렸다.
[23]
- 公論化를 통한 責任 떠넘기기 論難?: 2022學年度 大入 制度 改編案을 國家敎育會議로 떠넘겼는데, 정작 國家敎育會議에는 民間委員 12名 中 現職 敎師나 入試專門家가 거의 없었다.
[22]
[23]
그리고 責任을 맡게 된 國家敎育會議는 다시 公論化委員會에 일을 移管했다. 公論化委員會 活動에 豫算 20億 원을 썼지만, "支持度 調査 結果 1안(定時 比重 45% 以上)과 2안(修能 全 科目 絶對評價 轉換)이 各各 1位(52.5%)·2位(48.1%)였으나 統計的으로 有意味한 差異는 없었다"는 結果가 나오면서 確實한 結論 導出에 失敗했다.
[24]
以外에도 學生部 信賴를 높이는 方案도 無作爲로 뽑은 國民 100名에게 意見을 물어 結論을 내겠다는 '政策熟慮制'를 통해 解決하겠다고 하였다.
[23]
外國語高
·
自律型私立高
·
國際高
의 一般高 轉換을 推進했다. 이 過程에서 明確한 廢止 로드맵이나 副作用에 對한 代案 提示가 없어서 學父母와 學生들의 混亂이 加重되었다는 批判이 나온다. 結局 贊反 側 모두 反撥하자 敎育部는 이들 學校와 一般高의 入試를 同時에 치러 學生 于先選拔權을 없애는 水準으로 縫合을 한 狀態다.
[21]
幼稚園 · 어린이집 放課後 英語授業 禁止 論難
編輯
2017年 12月 幼稚園ㆍ어린이집에서 放課後 英語授業을 2018年 3月부터 禁止한다는 方針을 내놨다가, 3週 만에 施行 與否 自體를 1年 猶豫했다.
[23]
李洛淵
國務總理는 "지나간 얘기지만 敎育部에서 幼稚園 放課 後 英語敎育 禁止 政策을 가져왔길래 憂慮를 많이 했다"며 "敎育部는 政策豫告制를 얘기하지만 事前에 얘기를 들었으면 한다"고 하였다.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