煮醬은 스스로 邊方에서 태어난 것을 恨歎하여 西쪽에서 佛敎의 敎化를 배우기를 바랐다. 仁平(仁平)
3年 病身(丙申)
곧 定款(貞觀)
10年이다.
에 勅命을 받아 門下의 中인 失(實) 等 10餘 名과 함께 西쪽으로 黨에 들어가 淸凉山(淸凉山)
을 찾아갔다. 山에 만수대性(曼殊大聖)
의 昭詳이 있는데, 그 나라에 서로 傳하여 말하기를 “帝釋天
이 石工을 이끌고 와서 彫刻한 것이다”라고 한다. 慈藏이 消詳의 앞에서 祈禱하며 銘感(冥感)
을 하고는, 昭詳이 頂수리를 쓰다듬고 범게(梵偈)를 주는 꿈을 꾸었다. 깨어나도 뜻을 알지 못했다. 아침이 되자 異常한 중이 와서 풀이해 주고
이미 皇龍寺塔篇에 나왔다.
또 말하기를 “비록 萬校(萬敎)를 배우더라도 아직 이를 뛰어넘는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또한 歌詞와 舍利 等을 주고 사라졌다.
煮醬은 처음에 그것을 숨겼기 때문에 ≪黨高僧傳≫에는 收錄되지 않았다.
煮醬은 自身이 成人의 奇別
을 꿈꾼 것을 알고, 이에 北帶(北臺)
를 내려가 太畫紙(太和池)로 갔다.
長安에 들어가니, 太宗이 勅使를 보내 慰勞하였고 승광別院(勝光別院)에 安置하고 寵愛하여 私與하는 것이 자못 後하였다. 煮醬은 그 煩雜함을 싫어하여 票를 올리고 終南山(終南山) 韻祭祀(雲際寺)의 東쪽 벼랑에 들어가 바위 사이에 집을 짓고 3年을 居하였다. 人身(人神)李 戒를 받고 神靈의 應함이 매양 많았는데 말이 번거로워 싣지 않는다. 이미 다시 長安으로 가니 또한 勅命으로 慰勞하고 犬(絹) 200疋을 주어 衣服과 費用으로 쓰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