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의 刹那의 瞬間, 歷史的 記錄' 시리즈 모음 바로가기
▲ 1969年 6月 初 大邱 東區(現 壽城區) 범물동 1118番地(眞밭길 409) 지山國民學校 凡物分校. 藝能 時間에 全校生이 先生님과 함께 運動場을 맴돌며 律動을 배우고 있다. 凡物分校는 當時 강원채 大邱市長이 住民들의 잇따른 鎭靜을 받아들여 1963年 12月 開校했다. 寫眞=每日아카이빙센터
1969年 어느 봄날 大邱 범물동 1118番地(眞밭길 409) 芝山國民(初等)學校 凡物 分校.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山골 運動場에 언니 누나 동생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全校生이 함께 하는 藝能 時間.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며 예쁜 律動까지, 아이도 先生님도 빙글빙글 함께 돕니다.
▲ 1969年 6月 全校生이 함께하는 藝能時間에 先生님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律動을 배우는 芝山國交 凡物分校 어린이들. 寫眞= 每日아카이빙센터
오솔길로 오르는 海拔 450m, 25世代 1百40餘 名이 사는 옛 火田마을 眞밭골. 分校가 없던 6年 前까지만 해도 찬 이슬에 나서던 20里(8km) 登校길이 하도 險해 못 가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이제는 실컷 늦잠을 자고도 혼날 일이 없습니다.
▲ 1969年 6月 芝山國交 凡物分校 조경환(33) 先生님이 1,2,3學年을 한 敎室에서 가르치는 複式授業을 하고 있다. 寫眞=每日아카이빙센터
全校生은 32名. 조경환(33)·서정희(21) 先生님 두 분이 도맡았습니다. 敎室은 두 칸. 音樂·美術·體育은 다 같이, 나머지는 3個 學年씩 한 敎室에서 服飾으로 배웁니다. 4學年이 授業하면 5·6學年은 自習하는 돌림式 授業에 가르치고 배우는 게 例事일이 아닙니다.
▲ 1969年 6月 芝山國交 凡物分校 조경환(33) 先生님이 4,5,6學年이 함께 배우는 敎室에서 漆板을 나눠 山水와 國語 複式授業을 하고 있다. 왼쪽 壁에 1968年 12月 5日 發表된 國民敎育憲章이 붙어 있다 寫眞=每日아카이빙센터
더 큰 걱정은 視聽覺 敎育. 漆板에 自動車를 그려 놓고 "부르릉~ 부르릉~" 發動 소릴 흉내 내 보지만 고개만 갸우뚱. 大部分 山中에서 나고 자라 하늘을 나는 飛行機는 봤어도 自動車는 본 적이 없습니다. (每日新聞 1969年 6月 6日子)
▲ 1969年 6月 芝山國交 凡物分校 4,5,6學年이 함께 배우는 敎室에서 조경환(33) 先生님이 4學年을 指導하는 동안 5,6學年 어린이들이 自習하고 있다. 寫眞=每日아카이빙센터
2年 前 赴任한 조 先生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6學年인데 글을 모르다니…. "가갸 거겨~~下햐 虛혀…." 붙들어 두고 될 때까지 외우고 쓰게 했습니다. 꼬박 한 달 만에 冊을 읽더니 재미를 붙였습니다. 2學期부터는 오토바이 出退勤을 접고 分校 舍宅에 눌러 앉았습니다. 下宿하며 밤낮으로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薄俸을 떼 사준 首鍊匠으로 배우게 하고는 뒤돌아 試驗을 쳤습니다.
▲ 1969年 6月 고무신을 신고 해맑은 얼굴로 카메라 앞에선 芝山國交 凡物分校 어린이들. 뒤줄 왼쪽은 서정희(21), 오른쪽은 조경환(33) 先生님. 寫眞=每日아카이빙센터
先生님 말씀은 곧 法. 조 先生님은 더 특별했습니다. 카리스마가 펄펄 넘쳤습니다. 宿題를 안 해 간다는 건 想像도 못할 일. 마주칠 땐 그림자도 避해 다녔습니다. 山中 밤길은 거뜬해도 先生님 눈길은 그렇게도 무서웠습니다. 進學은 생각도 못했는데 可望이 보이자 欲心이 생겼습니다. 그해 中學 試驗에 6名 中 5名이 떡하니 붙었습니다. "이런 先生님이면 되겠다" 學父兄들이 先生님을 붙들기 始作했습니다. 1年만 勤務하면 市內로 돌아간다 했는데 다 틀렸습니다. 내친김에 先生님도 目標가 생겼습니다. 家畜을 치고 나무를 길러 敎材며 學用品까지 分校에서 解決한다는 自活學校.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젖 짜는 量을 키우고 벌桶度 들였습니다. 敎育廳에 때를 써 分校 맞은便 開墾하다 만 산 3,300㎡(1千坪)을 사들이고는 學父兄 손을 빌려 藥草를 심고 밤나무를 키웠습니다.
▲ 1969年 6月 當時 芝山國交 凡物分校生 32名을 책임졌던 조경환(33·왼쪽)·서정희(21) 先生님. 寫眞= 每日아카이빙센터
55年이 흐른 只今 그때 그 밤나무는 아름드리로, 分校 자리엔 靑少年 修鍊院이 섰습니다. 搜所聞 끝에 眞밭골 大學生 1號 장윤섭(69·韓國安全管理 代表)氏를 만났습니다. "6學年 때 조 先生님을 만난 게 제 人生의 幸運이었지요. 無知의 틀을 깨준 분이셨어요". 그는 그때 因緣을 只今껏 잇고 있었습니다.
▲ 校長으로 停年 退任 後 大邱 歌唱 故鄕집을 지키고 있는 조경환(88) 先生님이 1967年 3月 지山國民學校 凡物 分校(現 眞밭골)에 赴任해 4年 동안 勤務했던 當時를 說明하고 있다. 김태형 記者 thk@imaeil.com
"그래 맞아! 여기서 4年을 勤務했지…." 88歲 高齡에도 조 先生님은 옛 寫眞을 보자마자 어제처럼 떠올렸습니다. "신명으로 일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指導해야 좋은 學生이 나와…." 先生님은 "다시 태어나도 敎壇에 설 것" 이라 했습니다.
▲ 지山國民學校 凡物分校 廢校(1988年)後 그 자리에 2013年 들어선 壽城區 靑少年 修鍊園. 김태형 記者 thk@imaeil.com
1969年 大韓民國 敎育의 끝자락 山골 僻地(僻地) 分校. 모든 게 不足해서 더 切實했던 先生님. 試鍊이었지만 누군가엔 人生의 幸運으로 다가왔던 그 이름. 아! 先生님….
아! 先生님… 1969年 지山國民學校 凡物分校
김태형 每日아카이빙센터長 / 編輯 이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