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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人意識 가지니 成功 따라와… 이젠 企業 强點 살려주는 코칭에 熱情”[서영아의 100歲 카페]|東亞日報

“主人意識 가지니 成功 따라와… 이젠 企業 强點 살려주는 코칭에 熱情”[서영아의 100歲 카페]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6月 25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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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人生 2幕]이웅범 前 LG이노텍 社長
이노텍-化學 等 거친 37年 LG맨… 上司-後輩와 信賴關係가 버팀木
疏通으로 神話 일군 ‘野戰司令官’… 隱退後엔 著書 내고 노하우 傳授
企業 强點 100% 發揮하게 돕고… 유튜브로 젊은 職場人 對象 講義도

유비스 컨설팅 간판 앞에 선 이웅범 전 LG이노텍 사장. 애플 수주 7조 원 신화를 쓰고 2년 전 퇴직한 그는 오랜 경영자 생활의 노하우를 사회에 환원하는 일로 인생 2막을 펼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유비스 컨설팅 看板 앞에 선 이웅범 前 LG이노텍 社長. 애플 受注 7兆 원 神話를 쓰고 2年 前 退職한 그는 오랜 經營者 生活의 노하우를 社會에 還元하는 일로 人生 2幕을 펼치고 있다. 이훈구 記者 ufo@donga.com

한 會社 울타리 안에서 37年間 일했다. 26歲 靑年은 63歲 初老의 나이가 됐다. 이쯤 되면 그의 人生 全體가 會社였다 해도 過言이 아니지만, 會社란 때가 되면 반드시 떠나야 하는 곳. 退職으로부터 2年이 더 지난 只今, 그의 人生 2幕은 어떻게 展開되고 있을까.

17日 서울 衿川區 本人의 事務室에서 만난 이웅범 前 LG이노텍 社長(65)은 “떠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직 그때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事實 떠날 수 없죠. 제 人生 大部分이 거기 있었는데요. 如前히 프로野球에서 (LG 트윈스가) 지면 온終日 속상하고….”

그에게 會社는 故鄕 같은 곳이 돼 있다.
○“이르는 곳마다 主人이 되는 姿勢로”
그는 平社員에서 最高經營者(CEO)까지 올라간 立志傳的 人物이다. 1983年 半島上司(現 LX인터내셔널)에 入社해 LG電子, LG이노텍, LG化學 等을 거치며 17年을 職員, 18年은 任員으로 지냈다. LG이노텍 社長과 LG化學 電池事業本部長(社長)을 맡아 成功 神話를 썼다. 最終 履歷은 LG가 設立한 연암공대의 總長이었다.

―처음부터 ‘여기 내 人生 다 걸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시죠.


“當然하죠. 中間中間 그만둘 뻔한 일이 많았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과 잘 맞았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고, 特히 윗사람 運이 좋았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봐주신 분들이 있었어요. 그건 結局 信賴가 있느냐 없느냐의 問題라고 봅니다.”

組織은 팔로어十과 리더십의 相互作用을 통해 굴러간다. 賣出이 急增하는 生産 現場에서는 多少 無理한 計劃도 세우곤 했지만 이런 때 “해 봐, 믿으니까”라고 말해주는 上司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本人이 上司가 됐을 때도 後輩들에게 그런 存在가 되려 했다.

그는 職場 生活의 姿勢로 ‘數處酌酒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을 紹介한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찾던 聖地社 스님이 주신 扁額에 쓰인 金言으로, ‘이르는 곳마다 主人이 되면 서 있는 곳마다 모두 참되다’는 뜻이다.

“이 金言은 늘 저를 더 높은 觀點에서 바라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採根했습니다. 誘惑에도 흔들리지 않는 指針이 됐지요.”

LG이노텍 카메라모듈 事業은 그가 LG電子 部品素材事業 本部長으로 일하기 始作한 2010年을 起點으로 急成長했다. 애플의 受注額은 첫해 3000億 원, 2011年 9700億 원으로 急增했다. 2011年 末 그는 아예 LG이노텍 代表理事(副社長)로 就任했고 카메라모듈 賣出은 2012年 2兆 원, 이듬해 2兆5000億 원을 突破했다.
○萬年 野戰司令官
그에겐 ‘野戰司令官’이란 別名이 따라다녔다. 逸話 하나. 애플이 2012年 4分期(10~12月) 갑자기 發注 物量을 늘렸다. 危機와 機會가 함께 찾아온 셈.

“現場 人員 1000名을 새로 投入해야 할 物量인데, 新入社員 뽑을 時間도 없었죠. 며칠 窮理 끝에 勞組委員長을 만나 全國 工場의 人力을 最大限 끌어모아 龜尾 生産라인에서 일하도록 協助를 求했습니다.”

全社的 動員體制였다. 工場 人力뿐 아니라 事務技術職, 硏究所 職員, 社內 辯護士까지 龜尾 生産라인에 投入됐다.

“모두가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잘 알았죠. 손은 더뎠지만 品質이 높은 商品을 만들어 냈습니다. 漸次 生産性도 現場寺院 水準으로 올라갔죠. 그 많은 物量을 높은 品質을 維持하며 納期를 맞추자 애플의 信賴가 커졌고 注文 增加로 이어졌습니다.”

附隨 效果도 있었다. 그때의 經驗이 自己 業務에 도움이 됐다는 職員이 많았다. 예컨대 硏究開發 部署 職員은 直接 만들어본 카메라 모듈을 떠올리면서 硏究開發을 할 수 있게 됐고, 管理部署 職員은 原價를 計算하고 切感하는 硏究를 더 생생하게 할 수 있었다.
○ “가야 할 때를 아는 아름다운 사람”
연암공대 總長 退任이 다가오면서 이런저런 提案들이 들어왔다. 가장 마음이 끌렸던 것은 技術力 있는 벤처企業을 經營해 달라는 要請이었지만 夫人의 灣流가 컸다.

“‘平生 일했으면 됐지, 이 나이에 돈을 번들 뭐하겠느냐. 子息들 좋은 일이나 시키는 거지. 그냥 쉬엄쉬엄 사람들이나 도와주라’고. 똑소리 나게 說得力이 있었습니다. 事實 새로 企業을 經營한다면 엄청난 에너지가 必要하죠. ‘가야 할 때를 아는 아름다운 사람’李 되기로 했습니다.”

그가 擇한 것은 코칭. 個人과 企業에 對한 코칭을 통해 오랜 經營者 生活에서 얻은 노하우와 知識을 社會에 還元하겠다고 생각했다. 退任과 同時에 갤럽사가 認證하는 ‘强點코치’ 資格證을 따고 自身의 이름을 건 ‘유비스(UB‘s) 컨설팅’을 만들었다.

“저는 平生 大企業에서 惠澤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둘러보니 제가 도와줄 中小企業이 많겠더군요. 實際로 벤처企業 코칭을 해보면 規模는 커졌어도 사람을 어떻게 管理할지 모르는 狀況이었습니다. 中小企業들도 組織 構成員의 强點과 弱點, 組織文化를 돌아볼 機會는 없죠. 그런 會社들을 위해 내가 奉仕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經營 컨설팅 같은 건가요
.

“‘코칭’은 뭔가를 가르치는 ‘티칭’과 다릅니다. 相對가 지닌 力量을 끄집어내는 活動이죠. 그中에서도 强點코칭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하는 코칭입니다. 흔히 强點과 短點이 있으면 먼저 短點을 補完할 생각을 하기 쉽지만 短點은 놔두고 强占을 더 키워 全體 力量을 强化하는 겁니다.”

그는 유비스 컨설팅의 唯一한 코치다. 會社 코칭은 에너지 消耗가 많고 集中力이 必要한 일. 한 달에 딱 한 군데만 해주는 걸 原則으로 한다. 또 組織文化를 바꾸는 일이다 보니 반드시 社長부터 코칭을 始作하도록 하고 있다. “社長이 안 오고 밑의 職員만 보내면 안 해 준다”고 한다.

最近 ‘LG가 社長을 만드는 法(세이코리아·작은 寫眞)’이란 著書를 내고 유튜브 放送에 出演하는 것도 自身의 노하우를 나눠주기 위해서다. 對象은 主로 젊은 職場人들. 冊에서는 LG가 寺院을 任員으로 拔擢해 事業家 候補로 集中 管理하며 社長으로 길러내는 方法, 職場의 頂點에 오르는 者가 지녀야 할 資質 ‘‘‘等을 詳細히 案內했다.

“讀者들에게는 제 모습이 모진 風波를 겪고 港口에 묶인 배의 殘骸처럼 보일 수도 있고, 꼰대 世代의 自己 자랑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는 걱정도 듭니다. 하지만 職場生活에서 意味를 찾아내고 싶다면 한番 參考해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서른 넘은 아들, 이제 철이 든 걸까”
잘나가는 배우가 된 아들 이이경(가운데)이 느닷없이 꽃다발을 사들고 부모님을 찾았다. 당시 화면을 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흔쾌히 승낙했다. 이이경TV 화면 캡처
잘나가는 俳優가 된 아들 이이경(가운데)李 느닷없이 꽃다발을 사들고 父母님을 찾았다. 當時 畵面을 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欣快히 承諾했다. 이이경TV 畵面 캡처
요즘 그는 엉뚱하게도 가끔 演藝界 뉴스에 登場한다. 아들 이경이 잘나가는 俳優가 됐기 때문이다. 아들이 有名해질수록 아버지의 身元과 年俸 等도 ‘엄친아’ ‘金수저’ 等의 表現과 함께 記事化 됐다.

이런 이경이 2年 前쯤 올린 유튜브 映像 “父母님께 ‘갑자기’ 꽃을 드려봤습니다”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 갑자기 꽃다발 2個를 산 이경이 집에 가서 父母님께 傳達하는 場面을 찍은 映像이다. 當時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들의 指摘에 ‘우는 거 아니다’라고 잡아뗐다.

이番에 그 理由를 물으니 “아이가 드디어 철이 들었나 하는 생각에”라고 말한다. 實際 유튜브에서 이경은 이런 세리머니를 하는 理由를 “父母님과 더 자주 寫眞을 찍어놓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머물 수 없는 歲月의 攝理를 30代가 된 아들이 느낀 걸까.

베이비붐 世代인 아버지는 어릴 적 꿈이 스포츠캐스터였다. 하지만 現實에서는 夜間高를 나와 工大에 進學했고 卒業과 同時에 就業했다. 會社에서 37年間 ‘數處酌酒’를 되뇌며 自身을 强制하고 責任을 다하는 삶을 꾸려 왔다. MZ世代 이이경은 自身의 꿈을 좇아 이것저것 해보고 自身의 일을 限껏 즐기는 해맑음을 보여준다. 各自 時代 背景에 따라 버전이 달라졌을 뿐, 熱心히 사는 대목은 꼭 닮은 富者의 모습이다.



서영아 記者 sya@donga.com
#野戰司令官 #經營者 #노하우 #서영아의 100歲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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