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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單獨]國內定着 아프간人 20% 職場 그만둬… “그래도 韓國은 希望의 나라”|東亞日報

[單獨]國內定着 아프간人 20% 職場 그만둬… “그래도 韓國은 希望의 나라”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8月 18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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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特別寄與者 入國 1年]
言語, 定着過程 가장 큰 어려움… 韓國語 서툴러 願하는 職業 못救해
大部分 經驗없는 製造業體서 勤務… 집에 홀로 남은 아내는 憂鬱感 呼訴
아이들, 어른보다 빨리 韓國 適應… 平和의 땅서 家族과 함께 未來 꿈꿔

자녀와 함께 한국어 공부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마수드 칸 씨(왼쪽)가 10일 경기 남양주시의 집에서 자녀와 함께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칸 씨는 “가족들과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한국이 정말 좋다”며 “계속 살면서 아이들이 한국에서 공부를 
마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프간에서는 한국 직업훈련원에서 몰딩과 냉장 기술을 가르쳤던 칸 씨는 최근 다니던 나사 제조 공장을 
그만둔 상태다. 남양주=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子女와 함께 韓國語 工夫 아프가니스탄 特別寄與者 마수드 칸 氏(왼쪽)가 10日 競技 남양주시의 집에서 子女와 함께 韓國語 工夫를 하고 있다. 칸 氏는 “家族들과 자유롭게 살 수 있는 韓國이 正말 좋다”며 “繼續 살면서 아이들이 韓國에서 工夫를 마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프간에서는 韓國 職業訓鍊院에서 몰딩과 冷藏 技術을 가르쳤던 칸 氏는 最近 다니던 螺絲 製造 工場을 그만둔 狀態다. 南楊州=송은석 記者 silverstone@donga.com
“30kg 넘는 物件을 繼續 나르다 보니 허리 디스크가 惡化돼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아프가니스탄 特別寄與者’로 지난해 8月 韓國에 入國한 타입 자마니 氏(31)는 5日 仁川 西區 自宅에서 동아일보 記者와 만나 “올 1月 韓國 政府의 도움으로 한 製造業體에 就職했는데 5個月 만에 그만뒀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現地 韓國 職業訓鍊院에서 일했던 經歷 德分에 特別寄與者로 分類돼 家族과 韓國에 왔다. 英語를 가르치고, 政府 部處에서도 일했던 자마니 氏는 工場 일에 適應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목숨을 救한 게 어디냐. 家族을 위해 익숙해져야 한다’고 다짐하며 이를 악물었지만 디스크로 인한 苦痛이 너무 甚했다고 했다. 그는 “醫師가 無理한 일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繼續 무거운 物件을 들다 보니 狀態가 漸漸 나빠졌다”며 “再就業을 準備 中인데 家族도 있고 해서 마음이 躁急하다”고 했다.

아프간 特別寄與者들은 韓國 政府의 아프간 再建 活動을 돕다가 탈레반이 掌握한 아프간을 떠나 지난해 8月 26日 韓國에 入國했다. 동아일보는 入國 1年을 맞아 當時 入國한 이들을 만났다.
○ 5名 中 1名꼴로 職場 그만둬
자마니 氏는 工場에서 主로 完製品을 包裝하거나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을 했다. 2交代로 晝夜間 勤務를 一週日씩 번갈아 했는데, 夜間組 때는 午後 7時에 出勤해 다음 날 午前 9時에 退勤했다. 자마니 氏는 “家族을 지키려면 韓國語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해 韓國語 授業을 듣는데 工夫할 時間이 不足해 試驗에서 2番이나 떨어졌다”고 했다.

17日 法務部에 따르면 韓國에 定着한 아프간 特別寄與者는 76家口 394名이다. 올 初부터 가장 76名이 일자리를 求했지만 8個月도 안 돼 이미 15名(19.7%)李 職場을 그만뒀다. 4名은 再就業에 成功했지만 如前히 11名이 일을 求하지 못한 狀態다.


特別寄與者 相當數는 元來 職業과 다른 일을 하면서 適應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把握됐다.

올 6月 大統領 執務室 以前 ‘집들이’에 招請돼 尹錫悅 大統領과 寫眞을 찍었던 압둘 마루크 카리미 氏(44) 亦是 일을 始作한 지 3個月 만에 韓國에서의 첫 職場을 그만뒀다. 그는 現地 大學에서 엔지니어링을 專攻하고 韓國人들과 國際機構에서 일했다. 京畿 남양주시에 定着한 카리미 氏는 “工場 일은 經驗이 없어 適應이 어려웠다”고 했다.

特別寄與者들은 韓國 定着의 가장 큰 어려움이 ‘言語’라고 입을 모았다. 韓國語가 서투른 탓에 願하는 일자리를 求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카리미 氏는 “우리가 아직 韓國語를 잘하지 못해 事務職으로 일하기 어려운 狀況이라는 건 알고 있다”면서도 “元來 職業, 專攻과 關聯 없는 일을 해야 하는 狀況이 多少 힘든 건 事實”이라고 했다.

자마니 氏와 같은 工場에 就職했던 特別寄與者 낭얄라이 하셰미 氏(33)는 아프간에서 大學을 卒業하고 高校 敎師로 일하다가 韓國 職業訓鍊院에서 電氣 分野를 指導했다. 하셰미 氏는 “일자리를 求할 때 ‘韓國語가 可能하냐’고 물어보더니 韓國語를 거의 못한다는 걸 알고선 採用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이웃 等과 意思疏通이 어려운 탓에 집에 머무는 時間이 길어지며 憂鬱感에 빠지는 境遇도 적지 않다. 하셰미 氏는 “내가 일을 찾아 나서고, 아이들도 幼稚園에 가고 나면 아내만 혼자 집에 남는다. 아내는 그 時間이 견디기 힘들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 “韓國은 希望의 나라, 繼續 살고 싶다”
아프간 特別寄與者들은 種種 어려운 現實에 부딪히지만 如前히 韓國 政府에 感謝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 韓國을 ‘希望의 나라’라고 부르며 이곳에서 家族들과 함께하는 未來를 꿈꾸고 있었다.

아내, 네 아이와 함께 韓國에 定着한 마수드 칸 氏(37)는 “韓國은 아프간과 달리 아이들이 繼續 敎育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며 “무엇보다 평화로운 나라이기 때문에 韓國에서 繼續 살고 싶다”고 했다.

特別寄與者들은 子女들이 成人이 될 때까지 繼續 敎育받을 수 있다는 것에 感謝해했다. 아이들의 適應이 빠른 것도 慰安이 된다. 칸 氏는 “아이들은 學校나 幼稚園을 다니다 보니 親舊들과 어울리며 어른보다 빨리 韓國 社會에 適應하는 것 같다”면서 웃었다.

자마니 氏는 “이웃들이 偏見 없이 잘 對해줘 差別 같은 건 겪지 않고 있다”며 “아이들이 우리와 같은 經驗을 하지 않도록 밝은 未來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法務部 關係者는 “特別寄與者 大部分은 잘 定着하고 있지만 一部가 言語와 經歷을 살리지 못하는 問題, 健康上의 問題 等으로 일을 그만둔 것으로 把握했다”며 “一對一 멘토링을 통해 繼續 살피면서 必要한 이들의 再就業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仁川=孔勝培 記者 ksb@donga.com
南楊州=김윤이 記者 yunik@donga.com


#國內定着 #아프간人 #特別寄與者 #職業 #希望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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