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消防官 男便이 世上을 떠났다…백일된 딸을 남겨둔 채[히어로콘텐츠/酸化]|東亞日報

消防官 男便이 世上을 떠났다…백일된 딸을 남겨둔 채[히어로콘텐츠/酸化]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8月 8日 16時 00分


코멘트

[散花,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①
<1>참아냈다, 男便이 죽어도 울지 못했다


어린이날 하루 前 몸을 가누기도 힘든 强風이 불었다.
鐵製 構造物이 떨어져 道路에 나뒹구는 危險한 現場.
人命 被害를 막으려고 出動한 消防官 男便이 바람에 날아온 構造物에 머리를 다쳐 世上을 떠났다.
100日 된 딸과 아내 박현숙이 남겨졌다.
그女는 눈물을 참아냈다. 代身 발버둥 쳤다.
그저 平凡하게, 남들과 다르지 않게 딸을 키우고 싶다.
허승민 소방위의 6주기인 5월 12일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관 묘역을 찾은 아내 박현숙(위)과 딸 소윤.
허승민 消防尉의 6週期인 5月 12日 國立大前賢充員 消防官 墓域을 찾은 아내 박현숙(위)과 딸 소윤.
事故가 發生한 지 正確히 6年이 되는 날이었다. 박현숙은 原州 市內의 한 플라워카페에 到着했다. 粉紅色 스웨터에 하얀 運動靴, 밝은 古銅色의 斷髮머리. 밝고 환한 카페 雰圍氣와 賢淑의 모습은 妙하게 닮아 있었다.

“코로나19 백신도 다 맞았는데, 마스크 벗어도 괜찮죠?”

현숙이 마스크를 내리며 물었다. 粉紅빛의 입술 化粧과 옅은 볼 터치가 눈에 들어왔다.

“궁금한 거는 便하게 물어보세요. 다 물어보셔도 돼요.”

簡單한 紹介가 오가고 몇 個의 質問과 答이 이어졌다. 賢淑은 記者가 質問을 빙빙 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

“제가…. 뭔가 異常해 보이죠?”

沈默이 이어졌다. 記者는 對答할 單語를 고르지 못했다.

“普通 消防官의 遺家族이면 눈물 흘리고, 좀 어두울 것 같은데…. 그렇죠?”

현숙이 窓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건너便 公園에서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푸른 나뭇잎이 흔들렸다. 그女가 琉璃盞을 들어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모두 비워냈다. 粉紅 립스틱이 琉璃盞에 묻어났다. 粉紅色이 稀微해진 입술은 두어 番 달싹였다. 賢淑이 나지막이 말을 이어갔다.

“근데 그건 모르실 거예요. 이렇게 지낼 수 있을 때까지 眞짜 오랜 時間이 걸렸어요.”

거센 바람이 불어닥쳤다
허승민 소방위가 생전에 착용했던 시계(왼쪽)와 소방복에 붙어 있던 그의 명찰.
허승민 消防尉가 生前에 着用했던 時計(왼쪽)와 消防服에 붙어 있던 그의 名刹.
휘이이잉.

窓門 너머로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렸다. 寢臺에 누워 있던 현숙이 오른팔을 뻗어 옆자리를 쓸어보았다. 夜間 勤務를 나간 男便은 자리에 없었다.

아직 어두운 밤이었다. 瞥眼間 携帶電話 벨 소리가 울렸다. 잠이 든 少尹이 그 소리에 깰까 놀란 賢淑은 부리나케 電話를 받았다. 소윤 아빠였다.

“兄嫂님, 허승민 部長님이 크게 다치셨거든요. 只今 當場 病院에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分明 소윤 아빠 番號였는데 携帶電話에선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새벽 2時에 걸려온 電話에 多急한 말套. 賢淑은 不吉한 豫感이 들었다.

賢淑은 다시 携帶電話를 집어 들었다. 머리가 멍한 狀態였지만 奔走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오빠에게 먼저 病院에 가달라고 付託했다. 東西에겐 집으로 와서 小尹을 돌봐 달라고 했다.

媤同生이 모는 車를 타고 賢淑은 病院으로 向했다. 바깥은 如前히 强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빗방울도 떨어져 運轉席 視野를 가렸다. 집에서 太白病院까지는 15分이 걸렸다.

賢淑의 입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때 電話 벨 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먼저 病院에 가달라고 付託했던 오빠였다. 電話를 받자마자 오빠는 울먹였다. 賢淑은 狀況을 물어볼 勇氣를 내지 못했다. 電話機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

‘아, 큰일 났구나. 끝이구나.’

病院에 到着하기 前 賢淑은 마음의 準備를 始作했다. 應急室에 누워 있는 男便. 눈은 감았지만 心臟은 쿵쿵거리며 뛰고 있었다. 醫師들에게 男便을 살려 달라고 哀願했다. 男便을 救急車와 헬기에 태우고 서울에 있는 大型 病院으로 向했다. 그곳에서도 醫師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腦死였다. 賢淑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太白으로 돌아왔다.

정신없는 하루가 지났다. 다음 날은 5月 5日, 어린이날이었다. 賢淑은 重患者室에 누워 있는 男便을 보며 빌었다.

“소윤 아빠, 오늘 어린이날이야. 當身이 오늘 떠나면 우리 소윤이는 어린이날이 없는 거잖아. 오늘만큼은 버텨 줘요. 제발.”

이런 생각을 하는 自身이 利己的인가 싶었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아니었으면 했다.

5월 12일 현충원 묘역에서 허승민 소방위 묘비 앞에 놓은 사진을 정돈하는 박현숙(오른쪽)과 가족들.
5月 12日 顯忠院 墓域에서 허승민 消防尉 墓碑 앞에 놓은 寫眞을 整頓하는 박현숙(오른쪽)과 家族들.
“저기, 황지동에 사는 消防官 있잖아. 再昨年에 結婚한…. 크게 다쳐서 入院했다던데?”

오정미는 洞네 사람들이 떠드는 얘기를 헛所聞으로 여겼다. 그런데 親舊 賢淑에게선 아무 連絡이 없었다. 不安했다.

정미는 아침 일찍 승민이 入院해 있다는 太白病院으로 向했다.

‘眞짜 소윤 아빠면 어떡하지. 賢淑을 만나면 뭐라 하지.’

信號 待機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정미의 눈앞에 낯익은 車輛이 보였다. 賢淑의 車였다. 平素 같았으면 警笛이라도 울렸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女의 뒤를 無心코 따랐다. 病院 駐車場에 들어온 현숙이 정미를 發見했다. 곧이어 눈물이 터졌다. 둘은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눈가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賢淑이 먼저 입을 뗐다.

“나 때문이야. 내 八字가 세서 소윤 아빠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거 아닐까?”

賢淑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쏟아냈다. 정미는 올라오는 感情을 억누르며 그女를 끌어안았다. 현숙이 정미 앞에서 흘린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었다.

승민을 데려간 건 바람이었다. 그날 太白에선 몸을 가누기도 쉽지 않을 程度로 剛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을 뚫고 승민과 同僚 消防官들이 出動했다. 3層 聯立住宅을 덮고 있던 鋼板 지붕이 强風 탓에 뜯겨 나갔다는 申告였다.

巨大한 構造物이 聯立住宅 周邊 道路를 나뒹굴었다. 나이가 지긋한 住民들이 不安해했다. 鋼板이 또 한 番 바람에 날려 住宅을 덮치면 사람이 다칠 수도 있었지만 現場을 收拾할 人員이 不足했다. 結局 救急車를 運轉하던 승민까지 나섰다. 그때 聯立住宅 지붕에 남아 있던 構造物 一部가 갑자기 날아왔다. 何必이면 승민의 머리 위였다. 헬멧도 그를 지켜주진 못했다. 不過 10秒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賢淑은 事故 場面이 담긴 映像을 보지 않았다. 한 住民이 “그저 感謝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어 가슴이 아프다”는 글을 消防署 홈페이지에 올렸지만, 賢淑은 읽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도 승민은 눈을 뜨지 못했다. 낮에 승민을 보러 病院에 갔다가, 밤에는 小尹을 재우러 집에 오는 生活이 이어졌다. 媤어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 아이의 生이 여기까지면, 延命治療高 뭐고 더 할 것 없이 여기서 끝내자. 긴 病에는 壯士가 없다.”

賢淑은 自身의 귀를 疑心했다. 媤어머니의 말은 異常하리만치 차분했다.

“어머니, 그래도…. 뭐라도 더 해야죠.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죠.”

賢淑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지만 媤어머니는 斷乎했다.

“繼續 이 아이가 누워 있으면… 네가 소윤이 데리고 어떻게 病院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갈 거냐. 結局 너희만 힘들어진다.”

젊은 時節 男便을 여의고 胡떡 장사를 하며 三男妹를 홀로 키운 媤어머니. 그렇게 그女는 自身의 손으로 아들의 延命治療 中斷을 提案했다. 男便에 이어 長男까지 먼저 떠나보내는 媤어머니의 心情을 賢淑은 敢히 헤아릴 수 없었다.

“떠날 運命이면, 그냥 떠나도록 해주는 게 맞다.”

感情을 꾹꾹 누른 媤어머니에게 賢淑은 더는 대꾸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理解할 수 있었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딸이 태어난 지 100日 만에 男便을 떠나보내야 하는 自身의 運命이 참으로 苛酷하단 생각이 들었다.

허승민 소방위와 아내 박현숙이 푸껫 신혼여행에서 산 지갑. 현숙은 딸 소윤이 더 자라면 보여주려 남편의 신분증 등이 담긴 지갑을 간직하고 있다.
허승민 消防尉와 아내 박현숙이 푸껫 新婚旅行에서 산 紙匣. 賢淑은 딸 少尹이 더 자라면 보여주려 男便의 身分證 等이 담긴 紙匣을 간직하고 있다.
賢淑은 처음으로 아이를 안고 男便이 있는 重患者室에 들어갔다. 少尹에게 아픈 아빠의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딸아이가 이 瞬間을 記憶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슬픈 記憶을 남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이를 얻은 승민은 누구보다도 小尹을 사랑했다. 少尹의 出生 豫定日을 1月 19日로 通報받았을 때 ”亦是 消防官 딸“이라며 웃던 男便. 少尹이 침을 흘리면 웃으며 그것을 받아먹던 소윤 아빠. 딸아이의 첫 옹알이度, 첫 뒤집기도 모두 승민과 함께였다. 事故 前날에도 승민은 119센터로 出勤하기 直前까지 小尹을 품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賢淑은 눈을 감고 있는 승민을 바라보았다. 少尹은 그女의 품 안에서 입을 달싹거리며 옹알이를 했다. 賢淑은 지그시 승민의 손을 잡았다.

‘소윤 아빠, 날씨가 참 좋다? 소윤이 乳母車 태우고 當身이랑 公園 놀러 가고 싶은데. 이제는 眞짜 같이할 수가 없네….’

5月 12日 午前 8時 12分. 승민은 賢淑과 少尹의 곁을 永遠히 떠났다.

강원 태백시 순직 소방인 추모비에 새겨진 허승민 소방위의 이름.
江原 太白市 殉職 소방인 追慕碑에 새겨진 허승민 消防尉의 이름.


살기 위해 흘리지 않은 눈물

승민이 世上을 떠났다는 消息이 뉴스에서 나왔다. 승민과 賢淑 사이에 100日 된 딸이 있다는 事實도 알려졌다. 다른 이들이 小尹을 同情하는 게 賢淑은 싫었다. 殯所를 꾸리기 前, 賢淑은 어린이집 職場 同僚이자 親舊인 金晋榮에게 小尹을 付託했다.

“진영아, 葬禮式場에 소윤이 데리고 오지 말아 줘.”

현숙이 알리지 않았는데도 葬禮式場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카메라를 든 記者들은 殯所에 머물렀다. 賢淑과 다른 家族들이 울며 슬퍼하는 모습을 熱心히 담았다.

승민의 影幀 寫眞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賢淑의 귀에 記者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들은 小尹을 찾고 있었다.

“갓난아이가 있다고 들었는데, 왜 안 보이지?”

賢淑은 진영에게 다시 電話해 再次 當付했다.

“진영아, 소윤이 絶對로 葬禮式場에 데리고 오지 말아 줘.”

별다른 說明이 없어도 陣營은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아이를 同情하지 않았으면 하는 賢淑의 마음을. 진영은 ”알겠다“며 賢淑을 안심시켰다.

박현숙(오른쪽)이 묘비 앞에서 딸 소윤을 안고 남편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현숙(오른쪽)李 墓碑 앞에서 딸 小尹을 안고 男便을 이야기하고 있다.
검정 正服을 입은 승민의 同僚들도 다녀갔다. 그들은 殯所에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賢淑이 먼저 그들을 달래기 始作했다.

“울지 말자. 우리 울지 말아요. 나 너무 힘들다.”

다른 消防官들은 殯所 안에 三三五五 모여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職員들이 尙州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는 그女를 불렀다.

“弟嫂씨, 이리 오세요.“ ”兄嫂님, 한盞 드세요.”

賢淑이 그들 옆으로 가 麥酒 한 캔을 집었다. 麥酒 한 모금을 들이켜는 瞬間 同僚들 뒤로 같은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승민의 얼굴이 보였다.

‘소윤 아빠, 當身 왜 거기에 있어. 바보같이 왜 當身이 그 危險한 곳에 갔어.’

다들 승민더러 英雄이라고 불렀다. 賢淑은 그곳에 왜 승민이 있었는지 火가 날 뿐이었다. 虛無했다. 麥酒의 뒷맛은 시원하지 않고 씁쓸했다. 눈물이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러냈다. 그 누구도 自身을 同情하지 않았으면 했다.

승민의 발인 날. 진영은 小尹을 데리고 승민의 마지막 길을 따라갔다. 아빠가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소윤이가 제 눈으로 봤으면 했다. 진영은 車에서 내리지 않고 窓門을 통해 멀찌감치 運柩 行列을 지켜봤다. 少尹은 아무것도 모른 채 陣營의 품에 안겨 칭얼거리기만 했다.

이날 승민은 121番째 殉職 消防官으로 國立大前賢充員 墓域에 安葬됐다. 그 後로도 6年間 27名의 消防官이 世上을 떠나 이곳에 묻혔다.

허승민 소방위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많은 소방 공무원이 화재, 구조 현장 등에서 순직해 현충원 묘역에 안장됐다.
허승민 消防尉가 世上을 떠난 뒤에도 많은 消防 公務員이 火災, 構造 現場 等에서 殉職해 顯忠院 墓域에 安葬됐다.
冷靜하고 단단해 보였던 媤어머니는, 정작 아들을 떠나보낸 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數十 年 運營하던 胡떡 가게도 門을 닫았다. 가끔 賢淑을 代身해 小尹을 돌봐주는 것이 日常의 全部였다. 男便에 이어 아들을 보낸 媤어머니의 가슴은 타다 못해 아예 문드러졌다.

“어머님, 이제 밖에 좀 나가 보세요. 장사도 다시 始作하셔야죠.”

이番엔 賢淑이 먼저 말을 꺼냈다.

“바깥에서 다른 사람 마주치기 싫다. 장사도 이제 더는 안 하련다.”

“어머님, 우리가 허승민 消防官 家族이라는 事實은 이 太白 사람들이 다 아는데요. 平生 避하고만 살 수는 없잖아요. 於此彼 들을 이야기면 얼른 듣고 끝내도록 해요.”

생각보다 媤어머니는 頑强했다. 더는 말을 잇지 않고 품에 안은 少尹의 몸만 토닥였다. 그래도 賢淑은 固執을 꺾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어두운 옷을 입고 다니면 洞네 사람들이 아들 먼저 떠나보내서 그런 거라고 말할 거예요. 저희, 깔끔하고 밝게 하고 다녀요. 特히 前 소윤이한테 슬픈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요.”

7월 25일 강원 태백시에서 시어머니와 골목길을 걷고 있는 박현숙(오른쪽).
7月 25日 江原 太白市에서 媤어머니와 골목길을 걷고 있는 박현숙(오른쪽).
永訣式이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賢淑은 無酌定 밖으로 나왔다. 乳母車를 끌고 洞네를 다녔다. 賢淑을 알아본 이웃들이 말을 걸었다.

“아휴, 소윤 엄마 괜찮아요?“ ”소윤 아빠는 잘 보내드렸어요?”

豫想했던 質問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賢淑은 答했다.

“걱정해 주셔서 感謝해요. 이제 소윤이 씩씩하게 잘 키우려고요.”

하루는 小尹을 안고 아파트 앞 놀이터에 앉아 있었다. 꼬마 아이들이 다가와 賢淑에게 말을 걸었다.

“아줌마, 여기 사는 消防官 아저씨가 죽었다는데 或是 아줌마도 얘기 들으셨어요?”

‘아, 이건 豫想하지 못했다.’

暫時 머리가 멍해졌다. 賢淑은 작게 숨을 들이쉰 뒤 말했다.

“어어, 그래 알아. 나도 그 얘기 들은 것 같아.”

현숙이 씩씩하게 다니려 해도, 누군가는 뒤에서 쑥덕거렸다.

“男便 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네.” “年金, 補償金 받았으니 이제 媤宅이랑은 因緣 끊는 거 아냐?”

媤宅 食口들도 처음엔 그女를 조심스러워했다. 그럴 때마다 賢淑은 “少尹이 이 집 아이예요. 손주고 조카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속으로는 ‘내 딸도 이 집 핏줄이야’라고 되뇌었다. 少尹에겐 아빠가 없다는 傷處 外에 다른 큰 欠이나 구김이 없으면 했다. 그래서 賢淑은 승민이 世上을 떠나기 前보다 더 자주 媤宅에 들렀다.

허승민 소방위가 사용하던 탁구채와 유니폼. 허 소방위와 아내 박현숙은 탁구 교실에서 처음 만나 연인이 됐다.
허승민 消防尉가 使用하던 탁구채와 유니폼. 虛 消防尉와 아내 박현숙은 卓球 敎室에서 처음 만나 戀人이 됐다.
가끔 憂鬱한 感情이 치밀어 올라오면 술이 생각났다. 그렇다고 外食을 하거나 밖에서 술을 마실 수는 없었다.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보고 “男便 떠나보내고도 잘 지낸다”고, “먹고살 만한가 보다”라고 손가락질을 할 것 같았다. 少尹과 둘이 있는 집에서 술을 마시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 賢淑은 술이 생각날 때마다 媤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님, 막걸리 한盞만 같이해 주시면 안 될까요?”

男便을 잃고 媤어머니에게 술을 勸하는 며느리라니. 賢淑은 스스로 생각해도 철이 없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그게 賢淑이 할 수 있는 最善이었다. 떠나간 男便이 떠오르고, 小尹을 키우며 아등바등 버텨내는 삶에서 暫時나마 脫出할 수 있는, 唯一한 구멍이었다. 複雜한 며느리의 마음을 알아챈 媤어머니는 賢淑의 付託에 應했다. 둘은 그렇게 種種 막걸리를 마셨다.

平素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잠을 설쳤던 賢淑度 술 몇 모금 마시다 보면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오면, 賢淑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少尹이 앞에선 絶對 弱한 모습이나 우는 얼굴은 보이지 않을 거야. 단단하게 살아갈 거야. 슬픔에 빠진 채로 지낼 수 없어. 보란 듯이 잘 살 거야.’

5월 12일 현충원 묘역에서 순직 소방관들의 묘비 앞에 하얀 국화를 놓고 있는 박현숙(오른쪽)과 딸 소윤.
5月 12日 顯忠院 墓域에서 殉職 消防官들의 墓碑 앞에 하얀 菊花를 놓고 있는 박현숙(오른쪽)과 딸 소윤.


外面했던 灰色빛 삶
플라워카페에 앉아 있는 賢淑의 뒤로는 色色의 꽃들이 놓여 있었다. 빨간 카네이션과 노란 튤립에 粉紅 카네이션까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앞두고 있던 5月 4日이라 많은 손님이 꽃을 사러 왔다. 꽃이 심긴 곳을 등지고 앉은 賢淑은 한 番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6年 前 이야기를 풀어내던 賢淑은 暫時 슬픈 눈을 보이다가 금세 웃어 보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對話를 이어갔다.

“소윤 아빠가 떠나고… 한 2年間 그랬네요. 괜찮은 척, 발버둥을 쳤어요. 事實 우리 집 壁紙, 그리고 내 房의 天障. 저를 둘러싼 모든 空間은 온통 灰色빛으로만 보였거든요.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거죠.”

賢淑이 텅 빈 琉璃盞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灰色빛 時節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始作했다.

현충원 묘역 순직 소방관들의 묘비 앞에 놓인 색색의 꽃들.
顯忠院 墓域 殉職 消防官들의 墓碑 앞에 놓인 色色의 꽃들.



▶프롤로그 보기

[散花]美, 殉職 619名 65分間 呼名…韓 “寫眞 좀 찍어줘, 一同 默念”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808/114850319/1






동아일보는 創刊 100周年을 맞은 2020年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價値와 디지털 技術을 融合한 差別化된 報道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空間에서만 經驗할 수 있는 斬新한 記事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殉職 消防官·警察·軍人들이 世上에 남기고 간 物件들을 모은 特別한 追慕 空間, ‘그들은 家族이었습니다(https://original.donga.com/2022/hero-memorial)’ 記事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히어로콘텐츠팀


▽팀長 : 지민구 記者 warum@donga.com
▽記事 取材 :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記者
▽프로젝트 企劃 : 位은지 記者
▽寫眞 取材 : 홍진환 송은석 記者
▽編輯 : 李承乾 記者
▽그래픽 : 김충민 記者
▽사이트 開發 :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
▽사이트 디자인 : 金素延 인턴



히어로콘텐츠팀
지민구 記者 warum@donga.com
김예윤 記者 yeah@donga.com
이소정 記者 sojee@donga.com
이기욱 記者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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