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人權活動의 經驗과 熱情… 새로운 敎育革新의 價値를 만든다|동아일보

[INTERVIEW]人權活動의 經驗과 熱情… 새로운 敎育革新의 價値를 만든다

  • 東亞日報
  • 入力 2020年 10月 29日 03時 00分


코멘트

아쇼카韓國 이혜영 代表에게 듣는 敎育의 未來
社會革新家 發掘하는 아쇼카, 새로운 길 찾는 李代表에 注目

15일 오후 아쇼카한국 사무실에서 만난 이혜영 대표는 창의성을 억압하는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15日 午後 아쇼카韓國 事務室에서 만난 이혜영 代表는 創意性을 抑壓하는 敎育은 바뀌어야 한다고 强調했다. 안철민 記者 acm08@donga.com
地下鐵 서울숲驛에서 徒步로 5, 6分 距離인 聖水洞 헤이그라운드 빌딩에 ‘아쇼카韓國’이 있다. 1980年 美國에서 始作된 아쇼카는 우리 社會를 좋은 方向으로 변화시킬 潛在力을 가진 社會革新家들을 찾아내 支援하는 글로벌 組織으로, 韓國支部는 2012年에 設立됐다. 只今까지 아쇼카가 찾아낸 社會革新家(아쇼카 펠로우라고 부름)들은 4000餘 名으로 이 中 韓國人은 15名이다.

15日 이 建物 地下 1層 아쇼카 커뮤니티 空間에서 이혜영 아쇼카韓國 代表(43)를 만났다. 그는 社會革新家들을 發掘하고 모두가 체인지메이커가 되는 世上을 志向하는 아쇼카의 活動이 韓國의 敎育革新을 加速化시킬 것이라고 强調했다.

“지난해 봄 10가지 未來敎育의 端緖들을 捕捉해 2時間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10가지 端緖는 國境 너머, 大學, 學校, 敎師, 팀 創業, 地域, 共同體, 테크롤로地, 經驗 그리고 協力입니다. 全國 17個 市道 敎育廳 中 折半 以上이 우리를 公式 招請해 敎育者들과 學父母들을 위한 上映會를 開催했을 程度로 宏壯한 反響이 있습니다. 敎育 패러다임의 轉換은 이미 始作됐죠.”

李 代表는 2013年 1月부터 아쇼카韓國의 初代 代表를 맡아 8年째 우리 社會의 變化와 敎育革新에 熱情을 쏟고 있다. 그는 20代 時節 다른 對象에 熱情을 느꼈다. 北韓人權 問題, 正確하게 말하면 中國에서 숨어 지내는 脫北 女性과 그 아이들의 人權 問題였다. 아쇼카와의 因緣도 이 熱情에서 비롯됐다. 李 代表는 “그때가 없었다면 只今의 내가 없었을 것이고 아쇼카度 만날 일이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正말 값지고 集約的인 經驗이었다”고 말했다.

熱情的이었던 20代


國際大學院 卒業을 앞둔 2001年, 그는 홍콩의 非政府 國際人權團體인 아시아人權委員會에서 인턴을 했다. 아버지를 따라 홍콩에서 高等學校 時節을 보내 홍콩이라는 都市가 익숙했고, 무엇보다 아시아 人權에 關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韓國에서 온 이 代表에게 北韓人權 問題와 脫北者 問題를 묻는 홍콩人들이 많았지만 제대로 對答할 수 없었다.

“2000年代 初盤 北韓 住民들의 大規模 脫北, 中國에서 벌어진 人身賣買와 人權侵害 그리고 强制送還…. 이런 모든 問題들에 對해 國際關係學을 專攻하는 學生인 제가 무엇인가 寄與하고 싶었어요. 過去를 바꾸는 것은 할 수 없지만 未來를 바꾸는 것은 可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理由로 大學院 卒業 後 北韓人權運動에 뛰어들었다. 2001年 12月 북한인권시민연합에 들어가 國際 캠페인을 擔當했다. 國際的인 經驗과 流暢한 英語 實力을 살려 海外를 돌며 北韓의 人權 彈壓 實態를 알렸다. 2002年 日本 도쿄에 이어 이듬해 체코 프라하에서 北韓人權國際會議가 열렸고, 체코 會議가 열렸던 2003年 유엔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北韓人權決議案을 史上 처음으로 採擇했다. 그는 제네바 現場에서 決議案이 採擇되는 歷史的인 瞬間을 지켜봤다.

國際舞臺에서 나름의 成果를 거뒀고 强烈한 經驗도 했지만 限界 亦是 느꼈다. 北韓人權 問題를 批判하고 暴露하는 게 必要했지만 非政府機構 主導의 人權運動으로는 問題를 解決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엔이 나선다고 해도 制約이 많았다.

人生의 轉換點이 된 中國 潛入


2年 만인 2003年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나와 國際辯護士가 되기로 하고 로스쿨 入學을 準備했다. 그러던 中 2004年 美國의 한 人權團體가 뜻밖의 提案을 했다. 눈에 잘 띄는 西洋人들이 中國에서 몰래 活動하기 어려우니 韓國人인 李 代表가 中國으로 들어가 脫北 女性들을 만나본 뒤 英語로 報告書를 써달라는 內容이었다. 北韓人權運動 經驗이 있고 英語를 能熟하게 驅使하는 그를 適任者로 생각한 것이었다.

“北韓人權團體를 나왔지만 北韓人權 問題를 떠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如前히 關心이 많았죠. 國際辯護士가 되려 했던 것도 專門性을 갖춘 뒤 北韓人權 問題를 다루기 위해서였습니다.”

苦悶 끝에 해보기로 했다. 2004年 11月 仁川에서 中國 랴오닝(遼寧)省 단둥(丹東)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만나본 적도 없는 朝鮮族 宣敎師 電話番號 하나만 들고 到着했다. 觀光客인 것처럼 해서 들어갔다. 中國 公安의 檢問에 對備해 會社員 名銜도 만들었다. 當初 日程은 사나흘이었다. 脫北 女性들이 많은 지린(吉林)省 옌볜(延邊)朝鮮族自治州에 들어가 狀況을 把握한 뒤 돌아올 計劃이었다.

脫北 女性들이 人身賣買 等을 통해 랴오닝省 지린省 헤이룽장(黑龍江)省 等 東北3星 全體로 팔려 갔다는 事實을 알게 되면서 訪問地가 크게 늘어났다. 어떨 때는 한 사람當 5時間씩 인터뷰했고 때로는 脫北 女性을 人身賣買로 산 中國人 男便과 함께 食事를 하면서 얘기를 들었다. 3, 4日로 豫定됐던 첫 訪中 日程은 2週日로 늘어났다. 李 代表는 “現地를 돌아다니면서 脫北女性 인터뷰를 體系的으로 計劃을 세워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0名, 20名 만나서 될 일은 아니라고 判斷했다”고 當時를 回想했다.

2006年까지 2年間 모두 7番 中國에 들어갔다. 多幸히 中國 公安과 맞닥뜨리는 일은 없었다. 7番의 訪中을 통해 中國에 숨어 지내는 脫北 女性 100餘 名을 만났고 그中 80名과는 深層 인터뷰를 했다. 美國의 人權團體는 그의 訪中 調査 內容과 現場 寫眞들, 自體 分析 情報를 合쳐 2009年 100餘 쪽 分量의 報告書를 發刊했다. 週(主) 著者는 이 代表였다.

아쇼카가 注目한 ‘새로운 視角’


그가 처음 단둥 땅을 밟았을 때는 人權에만 생각이 꽂혀 있었다. 그러나 脫北 女性들과 아이들을 만나면서 人權과 開發이 調和롭게 가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人身賣買나 强制結婚은 分明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中國 男性에게 팔려온 뒤 熱心히 살면서 빚을 갚고 一部 돈을 北韓의 家族에게 보내는 女性들도 적지 않았죠. 그 女性들의 삶이 北韓에서의 삶보다 나아 보였습니다. 脫北 女性들이 살고 있는 地域이 開發되도록 돕는 것이 必要하다고 생각했어요.”

두 番째 訪中 以後 ‘人權과 開發의 調和’라는 決心이 섰고 2005年 人權團體 ‘바스彼我(BASPIA)’를 設立했다. 北韓人權運動을 하면서 알게 됐고 그리고 訪中 調査에 同行했던 在日僑胞 靑年과 共同代表를 맡았다. 北韓만이 아니라 아시아를 바라보기로 目標를 세웠다. 이에 對해 李 代表는 “脫北者들이 東南亞 國家들을 거쳐 韓國에 들어오는 루트가 뚫려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 全體의 人權問題를 같이 協力해서 다뤄야 北韓人權 問題도 풀려갈 수 있다고 봤다”고 說明했다.

中國에서 많은 脫北女性을 인터뷰한 韓國과 日本의 20代가 ‘人權과 開發의 調和’라는 새로운 接近法을 내건 것이 言論의 注目을 받았다. 2006年 國內 한 英字新聞에 ‘人權運動家들이 새로운 길을 찾다’라는 題目의 記事가 실렸다. 李 代表는 自身이 大學院生 時節 인턴을 했던 홍콩의 人權團體 아시아人權委員會에 이 記事를 보냈다. 홍콩 人權團體는 自身의 인턴 出身이 韓國에서 有名해졌다며 事務室 壁에 이 記事를 걸어뒀다. 그러던 中 아시아人權委員會 바실 페르난도 代表(2001年 光州人權賞 受賞)가 아쇼카 펠로우로 選定되면서 이 團體 事務室을 찾아간 아쇼카 關係者의 눈에 띄었다.

아쇼카 關係者는 2006年 이 代表에게 이런 內容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아쇼카는 當身같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社會問題 解決을 위해 새로운 視角으로 接近하는 사람을 찾아서 도와주고 連結해주는 組織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社會革新家라고 부른다. 支部가 생겨야 韓國에서 社會革新家를 選定할 수 있다. 언젠가 進出할 수도 있으니 잘 버티고 熱心히 해라.’

大地震으로 다시 아쇼카와 만나다


李 代表는 2009年 結婚과 妊娠을 하면서 큰 變化를 겪었다. 男便은 訪中 脫北女性 調査에 同行했던 在日僑胞 靑年이었다. 日本人 男便이 비자 問題로 韓國에 繼續 머물 수 없게 돼 2010年 人權團體 바스彼我를 접고 日本 오사카로 移住했다. 이듬해 3月 東日本大地震이 일어났다.

日本에서 繼續 살기 어렵다고 判斷해 韓國에 다시 들어왔다. 그러던 中 아쇼카가 韓國에 支部를 만들고 있다는 消息을 홍콩 人士로부터 들었다. 2012年 8月 아쇼카 關係者를 만났다. 社團法人 設立과 資金 確保 問題가 解決됐는데 代表할 사람이 없다며 紹介해달라는 付託이었다.

아쇼카에 對한 理解度가 높았던 李 代表는 自身이 해보겠다고 自願했다. 20代 때 自身이 했던 北韓人權 關聯 經驗이 아쇼카에서 잘 쓰일 수 있다고 確信했다. 또한 아쇼카가 選定한 社會革新家 數千 名의 智慧를 社會問題나 北韓問題 解決에 有用하게 活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를 妊娠한 몸으로 韓國과 美國에서 進行된 7, 8次例의 인터뷰에 應했다. 마지막 인터뷰는 워싱턴에서 아쇼카 設立者 빌 드레이턴과 만나 4時間 동안 進行됐다. 2012年 12月 合格 通報를 받았다.

敎育革新이 必要하다

아쇼카는 支部가 存在하는 나라에서만 社會革新家(아쇼카 펠로우)를 選定해 3年 동안 生活費를 支援한다. 檢證에 參與한 글로벌 專門家들과 現地 專門家들의 意見이 滿場一致가 돼야 뽑힐 수 있다. 李 代表는 “社會問題를 解決하겠다는 執念이 있고 앞으로 10年, 20年 抛棄하지 않을 사람인지 아닌지를 重要하게 본다”며 “무엇인가 板을 바꾸지 않으면 性이 차지 않는 사람들이 存在한다고 믿고 이들을 찾아내려는 것”이라고 說明했다.

아쇼카의 첫 任務가 숨어 있는 社會革新家들을 찾아내는 것이었다면 두 番째 任務는 ‘모두가 체인지메이커가 되는 世上’을 만드는 것이다.

“40年 동안 찾아낸 全 世界 93個國 4000餘 名의 社會革新家들을 통해 어떤 사람들이 變化를 잘 만들고 어떤 사람들이 變化에 對한 動機附與가 잘돼 있는지를 理解하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平生 變化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變化에 主導的으로 對應하면서 더 나은 世上을 만드는 데 寄與하는 存在로 살아가게 하려는 글로벌 캠페인입니다.”

李 代表는 特히 敎育制度가 아이들의 創意性과 挑戰精神을 抑壓하고 있다고 指摘했다. 敎育 패러다임 變化가 必要한 理由다. 敎育問題의 重要性은 아쇼카가 選定한 社會革新家 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全 世界 4000餘 名 中 1000名 안팎이 敎育 關聯 人士들이고 韓國은 15名 中 折半을 차지한다.

아쇼카韓國은 이를 爲해 2016年 ‘未來를 여는 時間’이라는 敎育革新家들의 네트워킹·協業 플랫폼을 만들어 敎育革新 트렌드와 솔루션을 共有하고 있다. 敎師·校長·學父母·學生뿐만 아니라 企業과 政策決定機關, 非政府機構 等에서 參與한다. 只今까지 國內外 敎育革新家들을 講師로 招聘해 9番의 오프라인 포럼을 開催하면서 敎育隔差 問題, 共感敎育 等의 未來敎育 話頭들을 다뤄왔다.

아쇼카韓國은 다음 달 末 初等學生 및 學父母들과 疏通하는 未來敎育 空間을 獨立門 附近 建物 1層에 開設할 計劃이다. 아쇼카가 選定한 93個國 4000餘 名의 社會革新家들의 스토리가 主된 展示 內容이다. 李 代表는 “이 空間을 찾은 아이들이 아쇼카 펠로우들의 스토리와 솔루션에서 靈感을 얻게 될 것”이라며 “靈感을 받은 아이들이 自身들의 想像力을 發揮해 作品으로 表現해내면 이를 미디어 技術로 再加工해 展示하는 것도 計劃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동기 記者 esprit@donga.com
#에듀플러스 #敎育 #인터뷰 #아쇼카韓國 #이혜영代表
  • 좋아요
    0
  • 슬퍼요
    0
  • 火나요
    0
  • 推薦해요

댓글 0

只今 뜨는 뉴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