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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넘었어도 體力 自身… ‘激烈하게 뛰는 蹴球’가 祕訣”[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東亞日報

“일흔 넘었어도 體力 自身… ‘激烈하게 뛰는 蹴球’가 祕訣”[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7月 15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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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전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가운데)가 9일 경기 고양시 농협대 잔디구장에서 열린 60, 70대 실버축구단 친선 경기에서 상대
 수비를 피해 볼을 패스하고 있다. 축구국가대표 공격수 출신인 그는 은퇴한 뒤에도 계속 공을 차며 건강한 노년을 만들어 가고 
있다. 고양=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김진국 前 대한축구협회 專務理事(가운데)가 9日 京畿 高陽市 농협대 잔디球場에서 열린 60, 70代 실버蹴球團 親善 競技에서 相對 守備를 避해 볼을 패스하고 있다. 蹴球國家代表 攻擊手 出身인 그는 隱退한 뒤에도 繼續 공을 차며 健康한 老年을 만들어 가고 있다. 高陽=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양종구 기자
양종구 記者
1970年代 中盤 韓國蹴球의 代表 攻擊手였다. 키가 작아 ‘짤만이’로 불렸지만 뛰어난 발才幹과 페인트 技術로 팬들의 人氣를 獨차지했다. 그로부터 50年 가까운 歲月이 지난 只今도 60, 70代 실버蹴球界에서 鋼鐵 體力을 자랑하는 攻擊手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김진국 前 대한축구협회(KFA) 專務理事(71)는 실버蹴球團 ‘로얄 FC’에서 每週 공을 차며 ‘9988 234’(99歲까지 팔팔하게 살다 2, 3日 앓고 죽는다)라는 信念을 實踐하고 있다.

“前 한때 이름을 날리던 選手들이 나이 들어 빌빌거리는 게 보기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選手를 隱退하고 指導者 生活을 할 때, 銀行에서 勤務할 때도 繼續 蹴球를 했어요. 김진국이란 이름에 걸맞게 나이 들려고 只今도 努力하고 있습니다.”

金 前 專務는 1972年부터 1977年까지 6年 동안 國家代表 間 競技(A매치) 97競技에서 27골을 터뜨린 스타플레이어 出身이다. 1975年 3月부터 1977年 2月까지 A매치 42競技에 連續 出戰할 程度로 剛한 體力을 誇示했다. 只今도 25分씩 進行하는 親善競技에서 4, 5競技를 거뜬히 消化하고 있다. 그는 “周邊에서 미련하다 할 程度로 많이 뛴다. 하지만 이렇게 激烈하게 蹴球를 해야 온갖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다시 태어난 것 같은 氣分이 든다”고 했다.

1980年代 中盤까지 국민은행에서 플레잉 코치로 뛰었던 그는 1992年까지 코치와 指導者를 한 뒤 이듬해부터 本格的인 銀行 業務를 始作했다. 그는 “指導者 生活 當時 選手들 訓鍊 때 함께 運動했다. 銀行 일을 볼 때도 蹴球를 놓을 순 없었다. 그즈음 서울市 生活體育 女子蹴球團이 創團됐는데 나한테 指導해 달라고 해서 自願奉仕로 함께 運動하기도 했다. 1995年부턴 내가 사는 서울 陽川區에 ‘김진국 蹴球敎室’을 열어 週 2回씩 어린이들과 함께 공을 차고 있다”고 했다.

2001年부터 2011年까지 KFA에서 行政을 했다. 幼少年委員長과 企劃室長, 專務까지 하며 雨水 幼少年選手 海外留學 프로그램도 進行했다. 그 프로그램 德分에 孫興慜(30·토트넘)李 獨逸 함부르크 幼少年 클럽에서 留學하며 世界的인 選手로 跳躍할 機會를 잡았다.

金 前 專務는 KFA를 떠난 뒤 2012年부터 로얄 FC에 合流해 本格的으로 ‘실버蹴球 人生’을 始作했다. 로얄 FC는 2005年 이회택과 김재한 等 1960, 70年代 韓國 蹴球를 주름잡던 스타플레이어와 早起蹴球 會員들이 만든 팀이다. 每週 土曜日 全國의 실버蹴球團 1, 2個 팀을 招請해 4∼5時間 공을 찬다. 地方 訪問 景氣를 다니기도 하고 生活蹴球 全國大會에 出戰하기도 한다. 國家代表 出身들이 많아 日本과 中國, 泰國 等 海外에서 招請도 자주 받는다. 水原北中 1學年 때부터 本格的으로 공을 찼으니 近 60年 가까이 蹴球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무릎 等 關節은 괜찮을까.

“先天的으로 健康한 身體를 준 父母님 德分에 아직 關節엔 問題없습니다. 또 技術蹴球를 하면 힘도 안 들고 負傷 危險도 없죠. 前 키가 작아서 어려서부터 技術로 勝負手를 띄워야 했죠. 일흔이 넘은 只今도 가볍게 無理 없이 공을 차기 때문에 아직 어디가 不便하진 않습니다.”

金 前 專務는 경신고 在學 時節 키가 165cm에서 더는 크지 않는 短點을 克服하기 위해 技術蹴球를 驅使했다. 當時 아침부터 밤까지 多樣한 技術을 硏磨했고 結局 ‘援助 접기(페인팅)왕’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그때 익힌 技術 德에 大學, 實業팀, 國家代表는 勿論이고 選手生活 막판에 進出한 獨逸 프로蹴球팀에서 活躍하면서도 큰 負傷이 없었다. 只今도 힘들이지 않고 공을 차는 原動力에는 技術蹴球가 있다고 했다. “技術은 한番 익히면 平生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蹴球를 잘하기 위해 홈트레이닝으로 體力도 키우고 있다. 스쾃과 팔굽혀펴기는 基本이고 啞鈴 等 機構로 筋肉運動을 한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는 筋力이 急激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꾸준히 웨이트트레이닝을 해줘야 버틸 수 있다”고 했다.

“率直히 언제까지 공을 찰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죠. 하지만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진 공을 찰 생각입니다. 이 나이에도 蹴球를 한다는 것 自體가 健康하다는 意味 아닌가요. 前 공을 찰 때가 가장 幸福합니다.”

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激烈하게 뛰는 蹴球 #體力 #祕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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