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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慈한 宋海 先生님, 舞臺엔 嚴格… 張允瀞度 늦었다가 야단맞아”[이진구 記者의 對話]|東亞日報

“仁慈한 宋海 先生님, 舞臺엔 嚴格… 張允瀞度 늦었다가 야단맞아”[이진구 記者의 對話]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6月 27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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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年間 宋海와 함께한
신재동 全國노래자랑 樂團場

21일 전국노래자랑 녹화 무대에서 고 송해 선생님과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는 신재동 악단장(왼쪽). 그는 “선생님은 늘 녹화 내내
 한 번도 앉지 않고 몸을 꼿꼿이 세우고 무대를 지켜봤다”며 “그 모습이 마치 스스로 강하게 살아가려고 버티는 것처럼 보여 짠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남해=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21日 全國노래자랑 錄畫 舞臺에서 고 宋海 先生님과의 追憶을 이야기하고 있는 신재동 樂團場(왼쪽). 그는 “先生님은 늘 錄畫 내내 한 番도 앉지 않고 몸을 꼿꼿이 세우고 舞臺를 지켜봤다”며 “그 모습이 마치 스스로 剛하게 살아가려고 버티는 것처럼 보여 짠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南海=박영철 記者 skyblue@donga.com
이진구 기자
李珍求 記者
《“전구∼욱 노래자랑! 빰빰빰 빰 빰 빰∼ 빰 ♬ 빠빠빠∼ 딩동댕! 全國에 계신 讀者 여러분, 한 週日 동안 安寧하셨습니까. 오늘도 地球村 곳곳에서 새로운 希望 속에 熱心히 살아가시는 海外 우리 同胞 여러분들, 海外 勤勞人 여러분들, 그리고 海外 自願奉仕員 여러분 安寧하셨습니까. 오늘은 宋海 先生님과 30年間 全國노래자랑을 함께한 신재동 樂團場을 모시고 故人에 對한 이야기를 나눠 보는 時間을 갖겠습니다.”》


―푸근한 印象과 달리 先生님께서 惹端도 많이 치셨다고요.

“일에는 0.0001%도 흐트러짐을 許容하지 않으셨거든요. 限없이 仁慈한 얼굴과 달리 가슴속에는 늘 넘치는 에너지가 있으셨어요. 그래서 當身이 보기에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이 벌어지면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지요. 招待歌手들이 리허설에 늦게 오거나, 건방을 떨거나 하면 된통 혼났으니까요.” (或是 누가….) “하하하, 歌手 장윤정 氏도 草創期 때 조금 늦었다가 호되게 야단맞은 적이 있고… 한두 名이 아니에요. 그런데 뒤끝은 全혀 없으세요. 5分도 안 지나서 바로 풀어지시니까. 全國노래자랑에는 先生님의 그런 생각과 愛情이 곳곳에 배어 있어요. 一旦 始作하면 거의 NG 없이 生放送처럼 錄畫하는 것도 그렇지요.”

―出演者가 一般人인데 可能합니까.

“先生님 持論인데… 몇千 名이 한창 흥겨워서 달아오르고 있는데 다시 찍자고 中間에 끊으면 김이 빠져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웬만하면 中間에 끊고 다시 찍는 일이 거의 없어요.” (豫測 못 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그럴 때 잘 타고 넘어가는 게 先生님 實力이죠. 예전에 한 養蜂業者가 온몸에 罰을 붙이고 舞臺에 선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분이 내려간 뒤에도 꽤 많은 벌들이 舞臺에 날아다니는 거예요. 宋 先生님은 防蟲網 같은 걸 쓰고 進行했고, 뒤이은 出演者는 罰이 입에 들어가서 本意 아니게 ‘땡’을 받았는데도 벌을 잡기 爲해 끊지 않았어요. 先生님은 錄畫가 始作되면 絶對 자리에 앉지도 않아요.”

―錄畫가 3時間 넘게 걸린다던데요.

신재동 악단장이 10일 고 송해 노제에서 전국노래자랑 시그널 곡을 지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신재동 악단장이 10日 故 宋海 路祭에서 全國노래자랑 시그널 曲을 指揮하고 있다. 東亞日報DB
“리허설 때는 臺本을 整理해야 하니까 앉지만 一旦 錄畫가 始作되면 끝날 때까지 몸을 똑바로 세우고 舞臺를 지켜보세요. 비가 와도 다 맞고요.” (出演者가 노래할 때는 앉아도 되지 않습니까? 畵面에 나오는 것도 아닌데요.) “젊을 적 樂劇團 時節부터 몸에 밴 習慣인 것 같아요. 觀客에 對한 禮儀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事實 50, 60代도 서서 3時間 넘게 있기는 힘들어요. 리허설부터 하면 7∼8時間이나 걸리는데, 요즘 같은 무더위에 野外에서 進行하면 더 힘들지요. 그걸 90歲가 넘어서도 하셨으니…. 體力만 좋으신 게 아니에요. 正義感도 불타셨지요.”

―全國노래자랑에서도 不義한 일이 벌어질 때가 있습니까.

“예전에 忠淸道 어디였는데… 리허설이 한창인데 公務員들이 觀客席 맨 앞자리에 椅子를 놓고 있더라고요. 郡守, 郡議員들 앉을 자리라는 거예요. 그 소리를 듣자마자 先生님이 ‘只今 뭐 하는 짓인가. 當場 치워라. 앉고 싶으면 저 뒤에 아무 데나 앉아라. 全國노래자랑에는 特席이 없다’고 怒發大發 소리쳐서 뺐지요.”

―우리 情緖上 過去에는 그런 行態나 要求가 꽤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제가 1992年부터 參與했는데, 그때만 해도 公務員들이 맨 앞자리 가운데를 끈으로 쳐서 貴賓席을 만들었어요. 先生님은 그런 모습을 宏壯히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그게 쌓였다가 그날 터진 거죠. ‘只今이 어떤 世上인데 아직도 저런 짓을 하고 있느냐’면서…. 그 뒤로 전국노래자랑은 地自體長이든, 地域 國會議員이든, 維持든 別途의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아요. 地域 行事다 보니 地自體長들이 地域을 紹介하고 舞臺에서 노래 한 曲 부르게는 해줘요. 하지만 實際 放送에서 노래 부르는 場面은 編輯하고 내보내지 않지요. 先生님은 저희들이 못 받은 月給을 代身 나서서 받아주기도 했어요.”

―月給이 안 나오다니요.

“2014年 세월호 慘事 때 프로그램이 한 8週 程度 決放됐어요. 워낙 社會的으로 슬픔이 큰 事件이다 보니 흥겹게 노래 부르는 프로는 내보내기 어려웠던 거죠. 그래서 그 期間 동안 저를 包含해서 樂團 團員들 月給이 안 나왔는데 先生님이 代身 會社와 談判 짓고 받아주셨어요.”

―先生님이 中間에 暫時 下車하신 건 왜 그런 겁니까.

“1994年 4月經인가? 慶北 永川이었는데… 錄畫 날 아침에 그냥 짐 싸서 올라가셨어요. 擔當 PD와 프로그램을 놓고 意見 衝突이 잦았는데 先生님은 先生님의 생각이 있고, 또 PD는 너무 自己 固執이 强한 先生님이 마음에 안 들다 보니 錄畫 때마다 서로 쌓인 거죠. 錄畫 前날부터 ‘안 한다. 안 한다’ 하셨는데 ‘그럼 하지 말라고 해’ 뭐 이런 말까지 나오고…. 설마 眞짜 가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아요.”

―進行은 누가….

“觀客이 몇千 名이 왔는데 안 할 수는 없잖아요. 急하게 招待歌手로 왔던 賢哲 氏가 다른 사람 한 名이랑 MC를 봤어요. 그렇게 대충 찍기는 했는데… 結局 實際 放送으로는 못 나갔어요.” (못 나가다니요?) “그 錄畫는 放送을 못 내보내고 나중에 다시 가서 제대로 찍어서 내보낸 거죠. 그 뒤로 金善東 아나운서가 進行을 했는데, 와… 眞짜 全國에서 ‘송해를 돌려 달라’는 抗議가 빗발쳤어요. 結局 그해 10月에 復歸하셨지요. 그 程度로 國民의 사랑을 받으셨지만 정작 先生님 自身은 외로워 보일 때가 많았어요. 저는 先生님이 술을 그렇게 드신 것도 스스로를 慰勞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요.”

―錄畫 前날 새벽까지 드신다는 얘기는 워낙 有名합니다만….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예요. 普通 버스 앞에서 세 番째 줄 程度에 앉으시는데 만남의 廣場쯤 오면 뒤를 슥 한番 보세요. 눈이 마주치면 말하나 마나 내리라는 뜻이죠. 그때 作曲家 이호섭(現 全國노래자랑 進行者)이 있으면 같이 내리고, 아니면 저만 내리는데 良才 쪽에 자주 가시는 돼지갈비 집에 가서 또 마셔요. 큰 컵에 20∼25度나 되는 빨간 뚜껑 燒酒를 부어 드시는데, 食事는 거의 안 하시고 按酒만 아주 조금 드셨지요. 그렇게 밤새 마시고 택시를 태워 보내드리는데 그 뒷모습이 너무 쓸쓸하고 안타까워 보일 때가 많았어요. 家族들 다 두고 홀로 내려 오신 데다 事故로 아들도 잃으셨으니….”

―늘 버스로 함께 다니셨다고요.

“버스가 錄畫 前날 午前 10時에 汝矣島에서 出發해요. 先生님은 늘 午前 7時쯤 먼저 오셔서 스태프와 함께 아침을 먹고 茶 한잔하고 얘기하다가 타셨지요. 宅이 京釜高速道路를 타는 良才洞 近處라 저희가 가는 길에 들르겠다고 해도 한 番도 그러신 적이 없어요.”

―先生님께서 돌아가시기 直前에 下車 問題를 많이 苦悶하셨습니까.

“最近 몇 달間 苦悶을 많이 하셨어요. 마음과 달리 몸이 힘드셨거든요. 全國노래자랑이 코로나19 때문에 現場 錄畫를 못 하고 過去 放送을 編輯해 내보내는 스페셜 篇으로 放送됐는데 힘드시면 스튜디오에 못 나오시祈禱 했으니까요.” (많이 안 좋으셨습니까.) “돌아가시기 2∼3週 前에는 살이 다 빠지셔서… 예전 모습이 거의 없으셨어요. 저보고 ‘新 團長 이거 봐봐. 배가 쑥 들어가서 옷이 이만큼이나 남아’ 하시더라고요. 몸을 만져 보니 正말 뼈만….”

―製作陣도 苦悶이 많았겠습니다.

“말을 꺼내기가 너무 어려웠을 거예요. 30年을 넘게 하신, 當身 分身 같은 프로그램인데 그런 말을 들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傷處가 되겠어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先生님이 結局 마음을 定하셨더라고요. 돌아가시기 全州쯤에 늘 다니시던 洋服店에 知人을 통해 洋服을 注文하셨거든요. 마지막으로 그 옷을 입고 舞臺에서 ‘이제 저는 이 프로그램을 놓습니다’라고 告別人事를 하려고 하신 거죠. 돌아가신 날(8日) 다음 날이 옷 찾는 날이었어요.” (先生님은 只今 하늘에서 뭘 하고 계실까요.) “하하하. 아마… 天國노래자랑 새로 만드시느라 바쁘시지 않을까요?”
신재동
1992年부터 全國노래자랑에 參與한 作曲家 兼 베이시스트. 송해의 ‘流浪靑春’, 南進의 ‘蜃氣樓 사랑’, 김국환의 ‘어쩌다 산다’ 等을 作曲했고, 2012年부터 樂團場을 맡고 있다.


李珍求 記者 sys1201@donga.com


#신재동 全國노래자랑 樂團場 #宋海 #李珍求 記者의 對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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