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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의 殘忍했던 5月[임용한의 戰爭史]〈212〉|東亞日報

高句麗의 殘忍했던 5月[임용한의 戰爭史]〈212〉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5月 17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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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年 陰曆 3月 唐나라 太宗은 親히 大軍을 이끌고 요동에 到着했다. 宿願이던 高句麗 侵攻을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乘勝長驅했다. 隋나라가 4番 侵攻하는 동안 單 한 番도 陷落된 적이 없던 遼東省이 한 番 攻擊에 떨어졌다. 蓋牟城, 백암성이 함락당하면서 高句麗 1線 防禦線을 突破하고, 2次 防禦線인 鴨綠江까지 浸透할 氣勢였다. 이때가 5, 6月 무렵이었다. 唐慌한 高句麗는 1線에서 唐軍을 擊滅하기 위해 大軍을 내보냈는데, 駐筆算 戰鬪에서 그만 大敗하고 말았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堡壘였던 安市城이 降伏을 拒否하고 끝까지 싸웠다. 陰曆 7月에 始作한 攻擊은 3個月을 끌었지만 安市城은 넘어가지 않았다. 그사이에 唐軍이 計劃했던 侵攻의 時間이 다 消耗돼 버렸다. 아무리 强大國이라도 이런 全面戰을 無限定 持續할 수는 없다. 太宗은 撤收할 수밖에 없었다.

少年 時節부터 參戰해서 平生 華麗한 勝利와 名聲을 쌓았던 太宗에게 高句麗 遠征의 失敗는 恥辱 中의 恥辱이었다. 敗北를 認定할 수 없었던 그는 2年 뒤에 全面侵攻에서 消耗戰爭으로 戰略을 바꾼다. 遠征軍 規模를 줄이고 高句麗 防禦線 全面을 攻擊하는 代身 特定 地域만 攻掠하고 빠지는 方式으로 괴롭혔다. 그렇게 高句麗의 體力을 消耗시킨 뒤 649年 5月 다시 大大的인 2次 侵攻을 準備하다가 갑자기 死亡했다.

죽기 直前에 太宗은 高句麗 侵攻을 中止하라는 敎書를 내렸지만, 唐나라는 戰爭을 繼續했다. 그 結果 668年에 高句麗는 滅亡하고 말았지만, 過度한 戰爭과 過度하게 키워놓은 軍閥 탓에 唐나라도 內戰으로 弱해진다.

푸틴은 唐 太宗만큼 名將도 아니고, 直接 一線에 나서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문득 우크라이나 戰爭이 聯想되는 理由는 무엇일까? 無謀한 戰爭, 獨裁者의 野望에 依한 戰爭은 모두를 파멸시킨다. 6月이 되면 러시아 社會도 體感苦痛이 커져갈 것이다. 푸틴이 戰爭을 抛棄한다고 해도 世界는 最小 來年까지 深刻한 食糧과 經濟 問題로 苦難의 時期를 겪게 될 것이다. 戰爭은 모두를 犧牲者로 만든다. 利己的인 獨裁者도 그 속에 包含된다. 6月은 누구에게 가장 殘忍한 한 달이 될까.


任用한 歷史學者
#高句麗 #安市城 #唐나라 #太宗 #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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