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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칸 韓屋을 垂直으로 쌓은듯한 空間[임형남·노은주의 革新을 짓다]|동아일보

99칸 韓屋을 垂直으로 쌓은듯한 空間[임형남·노은주의 革新을 짓다]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1月 18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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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한국 현대건축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구 공간사옥 내부. 건물 각층의 바닥을 반 층씩 엇갈리게 스킵플로어로 설계해 미로에 들어선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박영채 제공
最高의 韓國 現代建築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서울 鍾路區 원서동의 舊 空間社屋 內部. 建物 各層의 바닥을 半 層씩 엇갈리게 스킵플로어로 設計해 迷路에 들어선 듯한 氣分을 膳賜한다. 박영채 提供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임형남·노은주 가온建築 代表
가끔 言論社나 建築 團體에서 韓國建築에 對한 設問調査를 하곤 한다. 設問 內容은 主로 最高의 現代建築, 最高의 古典建築은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그러다 가끔은 가장 失敗한 建築에 關해 묻기도 한다. 結果는 設問調査를 施行하는 時期에 따라 조금씩 差異가 있긴 하지만, ‘失敗作’ 1位는 汝矣島 國會議事堂, 最高의 古典建築은 榮州 浮石寺, 最高의 現代建築은 원서동에 있는 舊 空間社屋(現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으로 選定되는 頻度가 높다.

좋은 建物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운 建物, 華麗한 建物 等 다양한 基準이 있겠지만 建築家의 立場에서 본 좋은 建物이란, 어떤 생각이나 槪念이 建物에 適切하게 녹아들어 그것이 建物의 部分을 이루고 空間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背景에 時代에 對한 생각이나 建物이 자리하는 땅의 特性이 배어 들어갈 때 最高의 建築이 되는 것이다. 그런 意味에서 空間社屋은 좋은 建築의 條件을 모두 갖추고 있다.

空間社屋은 韓國의 代表的인 現代建築家 金壽根이 이끌었던 設計事務所의 社屋이다. 1985年 55歲의 나이로 世上을 떠났지만, 그가 活動했던 25年의 歲月은 우리나라가 經濟的, 社會的으로 飛躍的으로 빠른 速度의 壓縮 成長을 거듭하던 時節이었다. 日本에서 建築을 工夫한 金壽根은 30代 初盤에 歸國하여 거의 쉬지 않고 活動하며 韓國 現代建築의 틀을 만드는 데 크게 寄與했다. 그리고 그가 이끌었던 ‘空間그룹’은 建築뿐 아니라 우리나라 文化 全般에 至大한 影響을 미쳤다.

中學校 通學을 할 때 나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명륜동과 안국동을 거치는 區間이 있었다. 그때 昌德宮을 지나 나오는 원서동 停留場에서 보면 보이는 검은 甓돌로 지은 建物이 恒常 눈에 들어왔다. 當時에는 그 建物이 어떤 用途인지 무슨 建物인지 알 수 없었지만 늘 그 建物에 對한 好奇心이 있었다. 한참 뒤에나 그 建物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空間사랑’이라는 地下에 있는 劇場에 演劇을 보러 가면서였다. 큰길에서 緩慢한 傾斜를 살짝 올라가면 建物 下部가 뻥 뚫려 있고, 그곳으로 스며들면 劇場으로 들어가는 작은 門이 나타난다. 신발을 벗어서 신발주머니에 넣어 들고 內部로 들어갔다. 뭔가 複雜한 生物의 배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컴컴하고 外場 材料로 主로 쓰는 甓돌이 內部까지 連結되어 있어, 작은 空間은 마치 좁은 골목 中間에 나타나는 空터와 같았다. 그런데 그 空間이 참 便安했다. 좁은 洞窟로 들어간 것 같기도 했고, 記憶에도 없는 胎中의 空間에 다시 들어간 것 같기도 했다.

그때가 1970年代 末이었는데 뭔가 이 空間은 特異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흔히 쓰는 一般 名士인 ‘공간’에 對해, 空間이라는 말의 意味에 對해 생각해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空間社屋은 세 次例에 걸쳐서 지어진, 一群의 마을이다. 1971年에 金洙根이 살았던 집 자리에 지은 작은 建物을 始作으로 1977年에 增築이 이루어졌다. 1997年에 金壽根의 뒤를 이어 空間그룹을 이끌었던 장세양의 主導下에 琉璃로 된 信管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002年 장세양 以後 空間그룹을 이끌던 이상림이 新官과 舊官 사이에 있었던 韓屋을 引受하고 고쳐서 마지막 ‘공간’의 領地가 完成된다.

담쟁이 넝쿨이 휘감고 있는 구 공간사옥 전경. 공간사옥은 1971년을 시작으로 1977년, 1997년 증축해 지금의 모습을 완성했다. 박영채 제공
담쟁이 넝쿨이 휘감고 있는 舊 空間社屋 前景. 空間社屋은 1971年을 始作으로 1977年, 1997年 增築해 只今의 모습을 完成했다. 박영채 提供
空間社屋이 처음 자리 잡던 1971年 무렵에 원서동은 周邊에 韓屋이 密集된 곳이었다. 只今의 現代建設 社屋 代身 낮은 建物과 휘문고, 그리고 잔잔한 韓屋들이 있는 典型的인 서울 四大門 안의 風景이었다. 金洙根이 設計事務室을 開設한 지 10年이 지나던 時期였고, 여러 가지 時代的인 運이 따라 當時로는 約款의 나이에 굵직굵직한 事業들의 設計를 맡았다. 大型 프로젝트였던 세운상가를 지었고 韓國日報 社屋, 워커힐, 南山 自由센터 等 쉴 틈 없이 많은 建物을 지었다. 日本에서 大學院을 갓 卒業한 新人 建築家가 갑자기 그렇게 많은 일을 消化했기에, 생각을 가다듬고 自身의 建築官을 定立한 틈도 없이 일만 했던 것이다.

그 渦中에 그가 設計하고 지은 扶餘博物館이 倭色 是非에 휘말리게 된다. 많은 攻擊을 받고 傷處를 입게 되는데, 오히려 그것이 그에게 韓國建築 或은 韓國性에 關해 工夫하는 契機를 만든다. 그와 더불어 韓國의 傳統 藝術家들과 活潑히 交流하고 文化的인 後援者 役割을 하게 된다.

그 무렵에 空間社屋을 짓게 된다. 기와로 뒤덮인 周邊의 色相과 어울리는 甎甓돌은 처음에는 構造材였는데, 增築 時에는 콘크리트 構造 위를 덮는 마감材로서 建物 안팎 大部分을 감싸고 있다. 같은 材料를 使用함으로써 內外附加 闖入하고 交流하는 空間이 만들어지고, 스킵 플로어로 層이 不明確한 內部 空間은 日本 建築家 이토 도요가 이야기했듯 “迷路와 같다”. 마치 99칸의 韓屋을 垂直으로 積層韓 듯한 空間感이다.

韓國의 空間은 흐른다. 空間社屋度 흐른다. 層을 넘나들고 內外部를 넘나든다. 金壽根의 韓國性에 對한 學習은 空間社屋으로 배어들고, 그의 생각이 녹아들고 이어진다. 장세양은 外部에서 보는 形態보다는 空間을 創造한 精神이 이어지도록 時間의 軸을 表現하고자 했다. 空間的 흐름은 그대로 維持하면서 琉璃로 된 매스는 昌德宮이 보이는 모습을 담는다.

空間社屋이 經營上의 理由로 賣却된 時點에서 文化藝術界 一角에서 많은 憂慮가 있었지만, 아라리오 뮤지엄 側이 元來의 空間과 槪念을 잘 保存하고 維持하면서 작지만 큰 意味를 품은 랜드마크로 如前히 원서동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임형남·노은주 가온建築 代表


#韓屋 #空間 #建築 #韓國建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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